<빈센조>

그의 이름,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이탈리아 마피아 까사노 패밀리의 고문 변호사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빈센조는 또 하나의 치명적 무기를 장착했으니, ‘미모’(美貌)다. 실제로 빈센조가 존 윅에 빙의해 킬러들을 난도질하는 순간, 송중기가 자아내는 분위기로 인해 잔혹함은 멋스러운 영상미로 전환된다.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는 빈센조가 한숨을 몰아쉬는 순간에도 그의 피곤함에 탄식하기보다는, 수면 부족임에도 빛나는 물광피부에 더 감탄하게 된다.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는 빈센조는 위기 돌파를 위해 미남계도 쓸 줄 안다. 불법 철거를 막기 위해 파티를 여는 그는 사람들을 끌어모을 요량으로 SNS에 ‘인싸들을 위한 와인파티’를 제안하는데, 이때 미끼로 투척하는 게 셀프 사진이다. 그의 예상대로 SNS ‘좋아요’ 폭발. 이게 무슨 고속도로 전개인가 싶다가도 개연성을 뿜어내는 송중기의 외모로 인해 시치미 뚝 떼고 보게 되니, 맘마미아~!

<쌍화점>

그러니까, 잠시 잊고 있었다. 송중기가 꽃미남 호위 무사였고(<쌍화점>), 고운 자태를 지닌 구용화였고(<성균관 스캔들)>, 누나 팬들 마음에 불 질렀던 ‘늑대소년’이었단 것을. <퀴즈 대한민국>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팬카페가 생겼던 ‘성균관 얼짱’이었고, 뷰티북 <피부미남 프로젝트>를 낸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과거를. 그리고, 태양의 후예였단 사실을. 과장해서 쓰는 게 아니다. <빈센조>는 시청자가 이러한 사실을 시간차로 각성케 한다. 뭐랄까. 제작진들이 송중기라는 피사체의 매력을 어떻게 하면 더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를 신나게 궁리하며 써 내려가는 드라마 같달까. 그리고, 이 전략은 대개 통한다. 주지할 건, 아무에게나 쓸 수 있는 전략이 아니란 사실이다.

많은 경우 배우의 아름다운 외모는 연기적 자질보다 저평가되곤 하지만, 꼭 그럴까. 배우의 얼굴이 내뿜는 분위기가 연기력보다 더 강력한 파급력으로 대중에 가 닿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가령 우린 지난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입에 오르내린 연기를 뚜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1996)에 찍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화보 같은 이미지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며 환호한다. 대중의 감각에 스며들어 각인되는 건 드문 재능이며, 드문 소수만이 그런 재능을 타고난다. 송중기는 그것을 지닌 배우다. 대표적인 예가 <늑대소년>(2012)으로, 대사 한마디 없이 온몸의 감각만으로 늑대소년을 낭만적으로 소화한 그의 퍼포먼스는 영화를 돌연변이 히어로물이 아닌 동화로 변모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오해는 말길. 그렇다고 해서 송중기가 외모만을 앞세워 달려 온 배우, 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흥미로운 건 오히려 이 부분인데, 미모가 그의 연기력에 대한 편견으로 작용해 옭아맨 적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에겐 잘생긴 남자 배우들이 맞닥뜨리기 쉬운 연기 논란과 마주한 적이 없다. 이는 캐릭터를 맡으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근성, 그리고 강단 있는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인터뷰 등에서 감지할 수 있듯, 송중기의 생김새는 ‘서~울 우유♪’지만, 실제의 그는 외모가 안기는 이미지보다 훨씬 솔직하고 주관이 뚜렷하고 영특하며 신랄하기도 하다.

<성균관 스캔들>

작품 선택에서도 강단이 있었다. 안방의 스캔들이 된 <성균관 스캔들>(2010) 이후 밀려드는 주연 제안들 속에서 그가 선택한 건 <뿌리깊은 나무>(2011)의 젊은 세종(이도)이었다. 극 초반 4회 출연이 전부인 아역 캐릭터. 그래서 주위에서 만류했다는 캐릭터. 그러나 그가 고집스럽게 선택했다는 캐릭터. “제안받은 다른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어린 이도가 내겐 더 주인공처럼 보였다”는 이 영리한 배우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뜨겁고도 차갑게 폭발하며 ‘그저 잘생긴 꽃미남 배우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이후 알다시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2012)에서 착한 남자와 나쁜 남자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연기 보폭을 넓혔고, 영화 <늑대소년>으로 스크린에서의 스타성을 입증했고, 잘 나간다 싶을 때 군대에 가서 아쉬움을 남겼는데, 그런 아쉬움이 무안하게도 군대 제대와 함께 <태양의 후예>(2016)로 그야말로 활활 타올랐다. ‘군대는 스타의 무덤’이라는 속설을 폐기 처분하며.

물론 항상 좋았던 건 아니었다. 특히나 지난 몇 년간의 송중기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러모로 헤매는 느낌을 안겼다. 540억이라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아스달 연대기>(2019)가 기대와 달리 부침을 겪었고, 촬영 중인 작품이 팬데믹으로 중단됐고, 극장가 최대 기대작이었던 <승리호>도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에 차질을 빚었다. 그리고 아시아를 떠들썩하게 했던 결혼과 그에 못지않게 떠들썩했던 이혼과, 그사이에 숨어든 여러 할퀴는 말들이 ‘인간 송중기’만이 아닌 ‘스타이자 배우 송중기’에게도 많은 부분 전이돼 이미지에 큰 흔적을 남겼기에 없었던 일처럼 모른 척하기도 힘들게 됐다.

그래서 사실 그에겐 흥행작이 필요했다. 스타라는 수식어에 합당한 존재감을 입증할. 가라앉은 컨디션을 다시 확 끌어올릴. 이건 단순히 연기의 영역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영역이기도 하다. 맞다, 조금 냉혹한 이야기다. 유행 빠른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스타가 그 지위를 유지하려면 그에 합당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빈센조> 안에서의 송중기를 지켜보게 되는 건 이 작품이 그에게 그런 역할을 해 주고 있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아직 방영 초기(4회까지 보고 이 글을 쓴다)이기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여러 상황이 나쁘지 않다.

<태양의 후예>

빈센조에게선 종종 <태양의 후예> 유시진의 환영이 보이기도 하는데, 둘은 물론 다르다. <태양은 후예>의 유시진이 할리우드 히어로를 수혈한 한국형 ‘캡틴 코리아’였다면,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에 물을 댄 ‘한국형 다크 히어로’다. 캐릭터 출신성분은 송중기로 하여금 운신의 폭을 넓게 한다. ‘마피아의 본고장’ 이탈리아인들의 특징을 입은 빈센조가 법도 총기 사용도, 커피 타는 방법마저도 너무 다른 대한민국 서울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누아르부터 코미디까지 다양한 장르가 섭렵 가능하기 때문이다. 라이터를 폼나게 지니고 다니면서도 ‘담배는 노답’이라는 듯 금연자를 고집하는 빈센조의 외면과 내면 낙차의 폭은 이에 대한 자그마한 힌트다.

과거 송중기가 했던 말 중에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초심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 그릇이 커졌는데 초심에 머물러 있으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다는 ‘책임감’과 관련된 의미의 발언이었는데, 익히 많이 들어 온 답들과 달라서 신선하기도 했지만, 초심에 담긴 의미와 무게를 고민해 본 자의 대답 같아서 공감했었다. 그때의 발언을 상기해 볼 때, 지금의 송중기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나 <태양은 후예>를 통과한 직후의 마음과는 또 다를 것이다. <빈센조>는 그에 대한 그의 대답일 텐데, <대부>의 돈 꼴레리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제시했듯, 송중기는 <빈센조>로 대중에게 또 어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질까.


글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