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걸리진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진정령 난백>은 3월 11일(목) 올레TV에서 ‘올레TV 초이스’ 서비스를 통해 국내 최초로 단독 공개됩니다.
중국 무협 판타지의 글로벌화를 이끈 드라마 <진정령>이 또 한 편의 외전으로 찾아왔다. <진정령 생혼>(링크)에 이어 영화로 찾아온 <진정령 난백>은 청하 섭씨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다. <진정령>의 수많은 매력적인 캐릭터 중 섭명결과 섭회상이 주인공으로 나선 <진정령 난백>의 매력 포인트를 하나하나 짚어보자.
오래된 유적에 수많은 문양들, 마치 <엑스맨: 아포칼립스>를 연상시키는 오프닝 크레딧을 지나면 무덤에 숨어든 웬 두 사내가 나온다. 두 사내는 보물을 찾을 수 있다며 신이 나지만 이내 한 사람이 무언가에 홀리듯 사라지고, 다른 한 사람의 비명을 뒤로 한 채 타이틀 <진정령 난백>이 화면에 떠오른다.
그 무덤은 알고 보니 청하 섭씨의 '칼령'을 봉인해둔 제도당이었던 것. 섭씨의 종주 섭명결(왕익주)은 동생 섭회상(기리)을 포함한 일행을 꾸려 칼령을 다시 억제하기 위해 제도당으로 향한다. 무술에 관심도 없고, 종주 자리에도 욕심이 없는 섭회상은 동행이 마뜩잖지만, 종종 이성을 잃는 명결을 진정시킬 요량으로 함께 출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제도당에 이르기 전부터 식인 덩굴이 습격하고 섭명결이 이성을 잃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나 간신히 제도당에 도착한다. 하지만 제도당은 이미 칼령의 기운으로 가득하고 섭씨 일행은 어떻게든 칼령을 제압해 가문과 지역의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때로는 공포까지 넘보는 고전 냄새 물씬 세트
앞서 요약한 스토리를 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진정령 난백>은 대부분 제도당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제도당은 종주가 사용하는 칼의 혼령을 억제하기 위해 만든 칼의 무덤 같은 곳. 영상으로만 봐도 퀴퀴한 냄새가 느껴질 만큼 오래된 무덤이다. 드라마 본편에 담긴 자연 풍경을 사랑한 팬이라면 아쉽겠지만, 대신 제도당이란 음울한 분위기를 영화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다소 모험 영화처럼 도굴을 그리던 영화 오프닝이 순식간에 공포 영화로 변할 때, 제도당이란 장소를 선택한 이유는 극명해진다. 제도당을 통해 영화 내내 공포와 미스터리가 공존하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때문.
무엇보다 제도당의 매력은 고전적인 중국 영화의 향기를 한껏 풍긴다는 점이다. 21세기에 무슨 고전 느낌이 좋냐고 할 수 있지만 무협영화만큼은 흔히 말하는 '옛날 느낌'을 어느 정도 버무려야 더 재밌는 장르 중 하나. <진정령 난백>의 제도당도 아주 현실적인 표현보다 적당히 인위적인 티가 나는데, 이 부분이 오히려 예전 중국 영화의 퇴마물, 강시물 느낌을 줘 영화를 더 깊이 있게 꾸며준다.
외전은 어렵다? 누구라도 이해 가능한 이야기
<진정령 난백>은 <진정령>의 연장선에서 나온 외전 영화다. 외전이라고 하면 거리가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번 영화는 섭회상과 섭명결의 관계와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어서 절대 어렵지 않다. 지난 외전 <진정령 생혼>은 온녕(우빈)과 남사추(정번성)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는데, 두 사람의 관계나 과거가 원작을 안 봤다면 쉽게 파악하기가 어려운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주인공 섭회상과 섭명결은 영화 초반부터 형제임을 언급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정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다.
종주 섭명결과 섭회상은 형제지간이나 영화 시점에선 서로를 탐탁지 않아 한다. 섭명결은 무술 수련을 게을리하고 학문과 예술에 빠져있는 회상이 마땅찮고, 회상은 자신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원하지도 않는 종주 자리를 넘기려는 명결의 태도가 불만이다. 그러나 영화의 사건을 겪으면서 두 사람은 과거를 다시 돌아보고, 진정한 형제의 우애를 확인한다. 형제라는 보편적인 관계를 그리기 때문에 기존의 <진정령> 시리즈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번 영화는 <진정령>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 본 시리즈를 안 본 관객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다만 본편과 완전히 무관한 시리즈는 아니고, 어쩌면 본편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요소가 있긴 하다. 이전부터 <진정령>에 관심이 있어서 본 시리즈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본편을 정주행하고 보는 것도 추천한다.
본편과 전편 못지않은 무협판타지 선물
<진정령> 시리즈는 여러 가문이 서로를 견제하는 무협의 틀을 가지고 있으나 판타지 요소도 적지 않다. 이번 작품에서도 칼과 칼을 맞대는 본격 무협 액션보다는 진법을 이용한 액션신이 좀 더 많은 편. 영화에서 상대하는 대상이 칼령이나 식인 덩굴 등 인간이 아닌 존재와 맞붙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모든 액션 역량을 때려 넣은 듯 쏟아지는 장면들은 섭명결의 실력과 그가 앓는 병의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진정령> 전체를 아우르면서 이번 외전 <진정령 난백>의 클라이맥스로서 손색없다.
<진정령 난백>은 유명한 원작에 빚지지 않고 독자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성공한다. 섭씨 형제의 울림이 있는 스토리는 관객마다 특정 기억이 떠오를 보편적인 정서로 채웠으며, 액션과 미스터리는 중국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원작 팬들을 잊지 않았다는 듯한 특별출연과 장면까지. 기존의 팬이든 이번 작품으로 관심이 생긴 관객이든 <진정령 난백>은 모두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