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은 오래 사랑받는다. 솔직하고 덤덤한 이별을 담아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한지민, 남주혁의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던 한국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20)에 이어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국내 스크린을 찾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1984년에 발표된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소설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원작으로 한다. 애니메이션은 원작, 그를 바탕으로 한 실사 영화들보다 더 밝은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새로운 세상으로 유학을 꿈꾸며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는 츠네오와 답답한 방에 갇혀 그림으로 상상 속의 세상을 펼쳐나가는 조제. 영화는 두 캐릭터가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집중하며 로맨스와 성장, 두 장르를 고루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애니메이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연출한 타무라 코타로 감독.

작품을 연출한 타무라 코타로는 캐릭터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을 담아내며 서사를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재능을 인정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첫 장편 영화를 통해 제44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오른 능력자. “조제와 츠네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희망을 포착하려 노력했다”는 타무라 코타로 감독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세계로의 동경이 강해진 요즘, 지금 이 시기에 보면 좋을 작품”으로 소개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제44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의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오른 걸 축하한다. 장편 데뷔작을 내놓자마자 이름을 올린 셈인데, 소감이 어떤가.

우선 기뻤다. 첫 연출작인데, 여러 스태프가 한마음으로 작품에 임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필름에 묻어난 그들의 열의를 평가받은 게 아닐까. 개봉 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많은 평을 받았다. 대부분 꿈과 희망에 대해 언급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조제의 이야기에 삶을 연결하는 분들이 많더라.

원작이 된 소설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처음 읽고 난 후 감상이 어땠나.

가도카와(일본의 출판 회사) 내에서 문학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거기에 흥미를 느꼈다. 후보로 오른 많은 소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조제와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었다. 1984년에 쓰인 작품이지만 캐릭터가 여전히 매력적이고 생생했다. 단편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조제와 츠네오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오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 오묘한 매력이 이 소설을 첫 연출작으로 선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걸까?

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시대에 따라 보는 시각, 해석이 달라지는 작품이다.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물음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1984년 소설을 2020년 버전으로 각색하며, 현시대 관객의 마음에 와닿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애니메이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실사 영화와는 정반대 매력을 지녔다. 예를 들어 츠네오는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청년으로 바뀌었다. 같은 작품을 원작으로 한 다른 작품과의 비교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조제는 원작과 비슷하지만, 츠네오에겐 현실을 반영했다. 츠네오는 성실하게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시련을 맞기도 하는 보통의 청년이다. 이런 부분에서 10대에서 30대까지 많은 관객이 공감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사 영화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실사 영화가 명작이라 들어서,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자 일부러 영화를 보지 않고 각본을 완성했다. 덕분에 더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었다.

가장 공들여 연출한 장면이 궁금하다.

그림 상으로는 물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얼마나 리얼하게 묘사할지, 어디까지 이미지로, 혹은 후반 작업의 시각 효과로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가장 공들여 연출한 건 츠네오와 조제가 점점 가까워지는 전반부다. 컷마다 두 사람의 거리감을 세세하게 조정해나갔다. 후반부를 작업한 후 전반부를 다시 조정하기도 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의 방

아기자기한 조제의 방 디자인이 눈에 띄더라. 이 공간을 구상하며 가장 중요시 생각했던 부분은?

조제는 은둔형 외톨이로 상상력이 풍부한 캐릭터다. 휠체어를 탄 조제가 꿈속에서나마 자유를 얻는다면, 다리 부분이 물고기처럼 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원작도 어딘지 모르게 동화 <인어공주>를 상상하게 되는 분위기를 지니지 않았나. 바다와 물고기에 대한 동경은 극 중 츠네오(애니메이션 속 츠네오는 해양생물학을 전공하며 바다에 대한 동경, 사랑으로 유학을 준비하는 인물로 등장한다)와 거리를 좁히는 데에도 한몫했다.

2.35:1의 화면 비율을 선택했다. 애니메이션보단 실사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면 비율인데,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보다 실사적인 표현을 원해 스크린 사이즈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가로폭이 넓은 만큼 그림을 많이 그려야 했고, 특히 프레이밍이 어렵더라.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왜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제작되지 않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다. 하지만 고생한 만큼 몰입감 있는 작품이 탄생한 것 같다. 꼭 큰 스크린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캐릭터 디자인, 작화를 맡은 이이즈카 하루코(<테니스의 왕자> <나루토> 등 작화 담당)와의 작업은 어땠나.

독백이나 내레이션에 기대는 대신 스크린 위로 인물들의 심리가 바로 드러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그리길 원했다. 그렇게 되려면 관객은 조제나 츠네오의 사소한 움직임이나 표정만 보고도 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이즈카 씨의 섬세한 터치, 그림으로 짚어낸 캐릭터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분위기에 따른 총천연색의 색채 변화는 관객을 매료시키기 충분하다. 캐릭터의 심리를 바로바로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이즈카 씨의 그림이 있었기 때문에 섬세한 심리 묘사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일부 한국 관객은 <너의 이름은.>이나 <날씨의 아이> 등을 보고 일본 여행 코스를 짜기도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도 오사카의 실제 장소가 반영됐나.

몇몇 배경으로 오사카의 명소가 등장한다. 사쿠라노미야 공원은 오사카의 제일가는 벚꽃 명소다. 세계 최대급 규모의 수족관인 가이유칸도 추천하고 싶다.

애니메이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관람 포인트를 직접 짚어준다면?

실사 작품과 별개의 영화로 생각해 주시면 작품을 더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두 작품의 각색 컨셉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면서 보게 되면 몰입감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실사 영화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원작 소설의 리부트라는 점을 꼭 확인해달라.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