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크릿 세탁소>

<시크릿 세탁소>는 여주인공 엘렌(메릴 스트립)과 남편이 4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아 뉴욕 조지 호수로 향하는 유람선 관광을 하던 중에 유람선 전복사고를 당하고 탑승객 중 21명이 사망하는데, 유람선 사고에 따른 보험금을 받는 과정을 통해서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자금세탁 범죄를 폭로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입니다.


1. 부동산 현금매입은 불법일까요?

엘렌은 사고로 사망한 남편 조를 처음 만난 장소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를 사기로 했고 보험합의금으로 계약금을 지불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가 시세의 두배를 현금으로 내고 엘렌이 사려는 부동산을 포함하여 부동산 3채를 구입해버렸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부동산 중개인(샤론 스톤)으로부터 듣게 됩니다. 엘렌은 누가 부동산을 현금을 주고 사냐면서 절망하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법이 그렇다면서 프라이버시 때문에 누가 현금으로 사버렸는지 절대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현금으로 부동산 3채를 구입하는 게 불법일까요. 당연히 불법이 아닙니다. 현금이 넘쳐나서 시세의 두배 가격을 현금으로 한번에 지급하는 것도 역시 불법이 아닙니다(영화는 미국 배경이지만, 우리나라 민법에 의할 경우에도 상대방의 이행의 착수 전에는 해약금 해제가 가능한데, 엘렌은 합의금을 받지 못해 계약금조차 지급하지 못한 상황이므로 엘렌한테는 어떠한 계약상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부동산 현금구입이 자금세탁의 과정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엘렌의 남편을 사망케한 유람선 사고에 대해 최종적으로 보험금 지급 의무가 있는 재보험회사 유나이티드 재보험 그룹은 실체가 있는 회사가 아니라 페이퍼컴퍼니로 유령회사였습니다. 선주는 모나크라는 보험회사에 보험가입을 하였고 모나크가 유나이티드에 재보험가입을 한 것이죠. 그 과정에서 보험판매자 퍼서의 사기가 개입되어, 선주가 꼬박꼬박 내고 있던 보험료로는 유람선 사고를 커버하지 못하고 결국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렌은 보험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남편과의 추억을 기리고 싶은 아파트를 사려던 꿈도 갑부 러시아인들에 의해 좌절되자 유나이티드 재보험 그룹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종착지에는 파나마에 있는 모사크&폰세카라는 로펌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2. 자금세탁 용어는 정말 세탁소에서?

자금세탁이란, 말 그대로 자금을 세탁하는 것을 말해요. 더러운 돈(법률용어로 범죄수익이죠)을 세탁해서 깨끗한 돈(범죄와 단절된 합법적인 돈)으로 만드는 겁니다. 자금세탁이라는 용어도 표현처럼 세탁소에서 돈세탁을 하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알 카포네라는 마피아 조직들이 도박이나 불법주류 판매로 벌어들인 불법수익을 세탁소를 이용해서 세탁한 것이죠. 세탁소가 현금 유동성이 좋다는 것을 이용한 겁니다.

자금세탁도 과정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3단계 모델이론으로 설명을 하는데 미국 관세청에서 주장했다고 합니다. 즉, 자금세탁은 배치, 반복, 합법화의 3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먼저 배치단계는 1단계로 불법수익을 일단 금융제도권 안으로 유입하는 단계입니다. 사기로 취득한 불법수익이든 뇌물로 받은 돈이든 그 돈을 범죄로부터 분리시키는 거예요. 예를 들면 환전상을 통한 자금 교환, 무역서류 위조, 위장회사 등을 이용한 자금의 물리적 이동이 그 예시입니다. 영화에서 유람선 사고가 난 선박의 선주가 보험판매자한테 사기를 당해서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한 유나이티드라는 재보험 회사에 보험료를 납입하는 과정은 배치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부동산 현금매입은 자금세탁?

처음 질문으로 가서 부동산을 현금으로 매입하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 아니지만, 그것이 자금세탁의 과정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금세탁의 두 번째 단계인 반복단계는 배치단계를 통해 금융제도권 안으로 유입된 불법수익을 복잡한 금융거래를 여러 번 거치게 하여 자금추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 단계를 거치면 불법수익은 정상적인 금융거래와 유사하게 보이게 됩니다. 고가의 귀금속을 매입한 후 다시 매도하는 방법, 복잡한 전자이체를 통한 자금이전 등의 방법이 이용됩니다. 마지막 단계인 합법화 단계는 반복단계를 통해 불법수익과 합법수익의 구분이 어려워진 돈을 다시 경제 활동에 재유입하여 드디어 합법적인 돈으로 가장시키는 겁니다. 고가의 자산을 매입하거나 금융투자를 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엘렌이 사려던 아파트를 러시아인들이 소유한 회사가 시세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으로 사버린 것이나, 영화의 5번째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는 ‘살인의 과정’에 나오는 이야기로, 당시 중국의 권력층인 보시라이와 그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충칭에 플라스틱 공장을 세울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받은 뇌물을 가지고 프랑스 남부의 저택을 구입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금세탁의 수법입니다. 그래서 부동산 현금매입 그 자쳬에는 전혀 불법성이 없지만, 만약 그 구입자금인 현금이 뇌물, 도박, 인신매매, 테러범죄, 성매매업 등 불법적인 범죄로부터 벌어들인 수익이라서 불법수익을 은닉하기 위한 행위라면 처벌을 받습니다(우리나라 법에서도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금의 출처가 불법수익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부터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파나마 등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걸쳐서 자금세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국제적인 사법공조가 없다면 자금세탁 범죄를 밝혀내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영화 <시크릿 세탁소>를 통해 ‘자금세탁’의 과정을 쉽게 살펴보았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