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윤유선, 안성기.

1980년 5월의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괴로움과 죄책감 속에 살아가던 오채근(안성기)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는 당시 책임자들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광주 출신의 식당 종업원 진희(윤유선)를 만나 결심을 굳힌다.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광주 시민들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의미 있는 작품이다. 역사의 주요한 장면에 선 인물을 유독 많이 연기해 온 배우 안성기와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진희의 단단한 마음을 세심하게 표현한 윤유선의 연기에 진심이 묻어난다.

올해 3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공수부대원이 희생자 유족을 만나 사죄했다. 41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4월 28일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언론배급시사회 후 만난 안성기, 윤유선 배우는 이게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며 놀라면서도 그분의 큰 용기에 반가움과 동시에 위로를 받았다 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반성 없는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릴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절대 잊지 않았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안성기 아주 좋아요.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올해만 벌써 두편의 개봉작을 내놨고, <러브씬넘버#>라는 드라마도 선보였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윤유선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원 없이 살림했어요. 가족들과 시간 많이 보내서 좋았던 것도 있고요.

<화려한 휴가>(2007) 이후 또 한번 광주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하셨습니다.

안성기 <화려한 휴가>에서는 시민군으로 나왔었죠. 이번 영화는 가해자면서 책임자에게 복수하는 인물 오채근을 연기했어요. <아들의 이름으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 읽었을 때 아주 좋게 봤어요. 주제는 무겁지만, 드라마가 확실히 보였고 영화적인 완성도도 뛰어나 주저 없이 선택했죠.

이정국 감독과는 이전에 <두 여자 이야기>(1994)로 함께 했습니다.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이 두 번째 인연이네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윤유선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어요. 이정국 감독님은 예전에 <편지>(1997) 같은 잘된 영화도 하셨죠. ‘내가 예전에 이렇게 큰 영화도 했었는데’ 이런 게 아니라 정말 영화가 좋아서 작은 다큐멘터리도 찍으시고 계속 뭔가 찍으시더라고요. (웃음) 감독님의 이런 열정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작품 제의가 왔고 대본도 좋았어요. 거기에 안성기 선생님이 같이하시기로 했다고 하셔서 더 말할 것도 없이 달려가 하겠다 했죠.

영화 제작 과정에 광주 시민들의 많은 협조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장소를 무료로 제공해주시고 단역 출연도 기꺼이 해주셨다면서요.

안성기 식당 아주머니 역할을 하기로 했던 연기자분이 갑자기 못하시게 됐어요. 당장 촬영을 해야 하는데 배우가 없다고 하니 모두들 황당했었죠. 그러다 정말 식당 주인께서 출연을 하시게 됐어요.

윤유선 민우(김희찬) 할머니로 나오신 분이에요. (기자를 보며) 연기 잘하시죠? 그분이 정말 그 한강식당 사장님이셔요. 전문연기자가 아니신데도 재미있게 잘 해내셨어요. 감독님께서 편집을 잘하시기도 했고요.

작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광주에서 특별시사회를 가졌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영화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안성기 다들 좋은 마음으로 보신 것 같아요. 많이들 우셨어요. 진행하시던 분도 내내 우셨고요.

지난 3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원(66세)이 희생자 유족을 만나 사죄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사살한 사망자의 유족을 만나 용서를 구한 것이 처음인데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며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안성기 ‘이게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영화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계획하는 영화라 부담 같은 것도 있었는데 이분이 이제라도 자기 잘못을 전부 고백하고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니까 우리 마음도 조금 편안했어요. 이 영화가 가해자들에게는 경종을 울리고, 이들의 수하에서 어쩔 수 없이 행한 악행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의미도 있고요.

윤유선 그분들이 분명 가해자지만 자신의 의지로 가해자가 된 것은 아니잖아요. 평생 그 잘못을 짐처럼 지고 살아가시는 것도 아픔이 클 것 같아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죄하는 것은 정말 큰 용기인데 그런 모습을 보고 너무 반가웠어요. 이런 분들의 진심이 광주 분들께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될 것 같아요.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화려한 휴가>처럼 역사의 한 순간에서 깊은 고뇌를 가진 인물을 자주 연기했습니다.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한 시대의 모습을 대신한다면 연기의 임하는 자세도 다를 것 같은데요.

안성기 영화가 주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더 진실되게, 그리고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죠. 이번 작품도 그런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진희는 공수부대원에게 어머니를 잃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마음의 병을 얻습니다. 하지만 슬픔에만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윤유선 진희는 약한 듯하지만 강한 사람이에요. 안 그러면 살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고요. 광주에서 만난 분 중 많은 분이 진희 같은 삶을 사셨더라고요.

촬영 기간 광주에 머물며 5·18 유가족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연기에도 표현되었을 것 같아요.

윤유선 그런데 직접 여쭤보기가 어렵죠. 죄송하기도 하고. 깊은 슬픔을 가지고 계셔도 겉으로 보이는 삶은 또 평범해 보이는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그분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려고 노력했어요.

<아들의 이름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덤덤하면서도 진실되게 자신의 과거를 속죄하는 장면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안성기 저는 그 부분도 좋았지만 의사에게 가서 상담받는 장면도 좋게 봤어요.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신이 감춰왔던 이야기를 드러내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심리적인 부분이 부각되었던 것 같아요.

윤유선 채근과 진희는 사실은 전혀 가까워질 수 없는 원수 같은 사이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채근의 양심선언을 듣고 미워할 수밖에 없지만 그의 고통에 또 공감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감정이 꽤 아프게 느껴졌어요.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손자 민우가 학교 폭력에 당할 때 채근이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하잖아요. 사실 그것은 채근 자신에게 하는 말이죠. 이 장면도 눈여겨 봐주셨으면 합니다.

1957년 6살에 데뷔, 연기 인생 64년의 안성기 배우님과 1974년 5살에 데뷔해 47년이라는 만만치 않은 연기 경력을 가진 윤유선 배우님. 이런 두 분이 처음으로 함께 한 작품이란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함께 연기하며 가까이서 지켜본 서로의 모습은 어땠나요.

안성기 너무 좋았죠. 윤유선 배우의 평소 어떤 모습은 진희 같기도 하고요. (웃음) 별로 꾸미지 않아도 모든 것을 표현해 낼 만큼 감성도 풍부해요.

윤유선 선생님이 아역 출신이라는 것을 잘 몰랐어요. 근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선생님도 아역 출신이라고 하시니까 막 나와 같은 마음일 것 같은 공감대가 있었어요. 영화제나 영화 외적인 곳에서 몇 번 뵙긴 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만나려고 여태 다른 작품 속에서 못 만났던 것 아닌가 해요. (웃음)

<아들의 이름으로>.

<테이큰>(2008)의 리암 니슨을 연상케 하는 액션신이 인상 깊었습니다.

안성기 무술감독이 잘 짜줬어요. 연습도 많이 했고. 근데 그 허리띠 액션은 이정국 감독 아이디어에요, 자기가 예전에 그렇게 했대요. (일동 웃음) 길지 않은 액션 장면이지만 아주 잘 나온 것 같아서 만족해요.

윤유선 맞아요. 감독님이 촬영하시면서 몇 번이나 말씀하셨어요. 안성기 선생님 몸이 너무 좋으시다고. (웃음)

슬쩍 몸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는데 아주 멋지셨습니다. 평소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안성기 운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해왔어요.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연극까지 활동 영역이 넓습니다.

윤유선 욕심이 많은 것은 아닌데 제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다 해보고 싶어요. <그와 그녀의 목요일>(2017)이라는 연극 공연을 했을 때 안성기 선생님이 보러 와 주셨어요. 오랜만에 하는 공연인 데다가 방백도 많아 낯설었는데 또 첫 공연에 오셔가시고. 아이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공부하듯 이런저런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요. 계속 익숙하고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면 자기복제하듯 매번 똑같잖아요. 역할도 장르도 다른 거 해보고 싶고, 무대도 다른 데 서보고 싶고 그래요.

<복면가왕>에 출연한 윤유선 (사진 MBC 방송화면 캡처).

그래서 복면가왕도 나오지 않았나요.

윤유선 제가 좀 용감하죠. (웃음)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강연도 했어요. 제가 강연을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가진 경험을 나눠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했죠.

윤여정 배우가 윤유선 배우에게 혼난 적 있다고 들었어요. 물론 서로 솔직하고 막역한 사이라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카데미 수상 축하 인사를 드렸나요.

윤유선 제가 그냥 막 너무 솔직하게 말하니까 선생님이 그렇게 받아주신 거죠. 지금 미국에 계시니까 건강 관리 잘하시라고 인사드렸어요. 선생님과 2년 동안 같은 드라마(1998년 1월부터 2000년 3월까지 방영한 MBC 드라마 <사랑밖에 난 몰라>-편집자)를 하며 많이 봬서 오히려 제가 선생님께 좋은 영향을 받고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아역배우 출신으로 하이틴 스타였습니다. 연기 외에 노래도 또 진행도 뭐든 잘하는 배우고요. 어떤 변신을 더 해보고 싶나요.

윤유선 선생님도 그러실 것 같지만 저는 어릴 때 별다른 일탈이 없이 자란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기회가 되는 모험을 마다하고 싶지 않아요. (웃음) 기대해 주세요.

(왼쪽부터) 안성기, 조용필 (사진 YPC 프로덕션).

가왕 조용필에게 기타를 가르쳐줬다는 에피소드를 들었습니다. 조용필의 예술적 영감에 방아쇠를 당긴 분이시네요.

안성기 그냥 하는 얘기죠. 중학교 때 같은 반도 했고.

윤유선 두 분이 친구세요? 중학교?

안성기 서로 집에 놀러 다니고 그랬어요. 내가 그때 기타를 배웠는데 아마 내가 조용필 씨 앞에서 치기도 했을 겁니다. 기타를. 그걸 보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르치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웃음)

윤유선 선생님 그 당시에 기타 많이 치셨나 봐요?

안성기 아니 그… 저… 돈암동 로터리에 ‘쟈니 기타학원’이라고 올라가면 삐걱삐걱한 목조건물 2층에 있는. 거기서 한 6개월인가 배웠지. (일동 웃음)

‘국민배우’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누구나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아오고 계십니다. 이런 시선이 부담되시지는 않나요.

안성기 전혀 부담되지 않았어요. 그냥 나랑 자연스럽게 맞아 가지고… (일동 웃음)

윤유선 저도 그런 궁금함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까이서 뵈니까 정말 그게 선생님 자체이신 것 같아요.

원래 자신의 삶이 그래서 남들이 그걸 발견해 준 건가요. 아니면 그냥 적당히 살아왔는데 자꾸 좋은 면만 보고 얘기해 줘서 더 좋은 모습으로 바뀐 건가요.

안성기 (웃음) 그런 면도 조금 있지요. ‘잘한다 잘한다’ 그러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있잖아요.

윤유선 성품이 워낙 좋으신 것 같아요. 제가 “선생님은 화나시면 어떻게 하세요?” 여쭸더니 그냥 화를 못 내신데요. 어떨 때 되게 화가 나신 것 같아서 보면 눈만 이만해지셔요. (웃음)

정보석 배우도 깜짝 등장합니다.

안성기 이정국 감독과 학교 선후배예요. 이정국 감독은 하여튼 관계가 있다 싶으면 다 불러. (일동 웃음)

차기작은 무엇인가요.

안성기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의 촬영을 마쳤고 <디멘시아>라는 작품이 하나 있어요. 치매에 걸린 딸에 대한 이야기에요.

윤유선 <둠둠> 이라고 젊은 신인

정원희 감독님이 준비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글 · 씨네플레이 심규한 기자

사진 · 엣나인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