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마리 달마시안> 캐릭터 크루엘라의 전사를 그린 디즈니의 실사화 프로젝트 <크루엘라>가 절찬 상영 중이다. 2억 달러에 육박하는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답게 60, 70년대 명곡들을 물 쓰듯이 사용하면서 관객의 귀를 즐겁게 한다.

** 영화 내용이 일부 담겨 있으니 스포일러 주의!!!!


"Bloody Well Right"

Supertramp

흑백의 디즈니 오프닝에 이어지는 건 "이런, 여기서부터 시작해? 알았어. 난 태어날 때부터 내 주장이 뚜렷했어"라는 대사를 영국 발음으로 내뱉는 엠마 스톤의 목소리다. 귀를 간지럽히는 건반 소리가 스톤의 대사와 어우러지는데, 눈치 빠른 이들이라면 "영국 출신 밴드의 음악이겠지" 중얼거릴 것이다. 정답이다. 주인공 에스텔라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 <크루엘라> 오프닝의 'Bloody Well Right'은 영국 런던 출신의 밴드 슈퍼트램프의 노래다. 날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했던 에스텔라는 과연 보통 성격이 아님을 증명하면서 성장하고, 학교생활 역시 만만치 않다. 귀여운 윌리처 전자 피아노 소리가 거의 1분간 이어지다가 점점 고조되는 원곡의 구성에 맞게 영화도 에스텔라가 못된 남자애들과 치고받고 싸우고 교장 선생한테 불려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슈퍼트램프의 세 번째 앨범 <Crime of the Century>에 수록된 'Bloody Well Right'가 오프닝 트랙 'School'과 "너는 네 학교생활이 순 가짜라고 생각하지"라는 가사와 맞물리는 것도 영화 속 내용과 잘 들어맞는다. 에스텔라는 (퇴학당하기 직전에) 자퇴한다.


"Inside-Looking Out"

The Animals

엄마(에밀리 비첨), 반려견 버디와 함께 런던으로 향하던 에스텔라는 외딴 대저택에 들른다. 차에서 가만히 있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이 깨지는 데엔 불과 20초도 걸리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삶"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는 저택 안 풍경을 몰래 구경하던 에스텔라는 존(마크 스트롱)에게 붙잡힐 뻔하다가 자기한테 달려드는 달마시안 개들을 피해 성대한 패션쇼 현장을 종횡무진한다. 에스텔라와 버디 vs 달마시안 3인방의 추격전을 애니멀스의 노래 'Inside-Looking Out'과 함께 한다. 애니멀스는 1964년부터 근 5년간 활동하면서 10개의 앨범을 내놓았는데, 이 곡은 당시 싱글로만 발표됐다. 민속 음악학자 앨런 로맥스(Alan Lomax)가 발굴한 감옥에서 구전돼온 노래 'Rosie (Inside-Looking Out'에서 영감을 얻은 노래는, 건물을 빠져나와 저명한 디자이너 남작 부인(엠마 톰슨)과 대화하고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 그들을 향해 뛰어가면서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에릭 버든(Eric Burdon)의 샤우팅과 달마시안이 맹렬히 짖어대는 모습까지 절묘하게 붙여놓는 센스가 돋보인다.


"She's a Rainbow"

The Rolling Stones

엄마와 같이 오기로 했던 리젠트 공원의 분수대에서 잠든 에스텔라는 거기서 재스퍼와 호레이스를 만난다. 경찰을 피해 줄행랑을 친 그들은 함께 지내기로 한다. 두 친구와 먹고살기로 작정한 에스텔라는 바로 머리에 염색약을 붓고, 고개를 들면 10년이 훌쩍 지나 성인이 된 자주색 머리의 에스텔라(엠마 스톤)가 나타난다. 그리고 동시에 롤링 스톤즈의 노래 'She's a Rainbow' 도입부 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 어느새 오랜 세월이 흘러 제법 아늑하게 꾸며진 아지트에서 그들은 가족처럼 지낸다. 이 가족의 특기는 다름 아닌 도둑질. 온갖 범죄로 생계를 잇는 가운데, 에스텔라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고 의상을 만든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삶이지만 경쾌하게 짜여진 편집과 음악이 나름 유쾌함을 유지하게 한다. 'She's a Rainbow'는 평소 대개 롤링 스톤즈 노래답지 않게 피아노와 스트링을 전면에 내세운 아기자한 트랙인데, 이 곡은 롤링 스톤즈가 라이벌로 회자되던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자극 받고 만든, 가장 이질적인 스톤즈 앨범으로 손꼽히는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에 수록됐다. 물건으로 훔치러 들어온 호텔 방에서 저 멀리 바로네스의 광고판을 보며 "난 느꼈어. 더 할 일이 있다는 걸, 엄마도 그걸 원한 거라는 걸" 하는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음악은 서서히 잦아들고, <이브의 모든 것>(1950) 속 베티 데이비스의 웃음과 묻혀 사라진다. 한편, 롤링 스톤즈의 또 다른 걸작 'Symphathy for the Devil'이 <크루엘라>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Time of the Season"

The Zombies

에스텔라는 재스퍼 덕분에 70년대 영국 패션의 중심지인 '리버티 백화점'에 취직한다. <크루엘라>의 장점 중 하나는 명곡들을 꽤나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대목에선 좀비스의 'Time of the Season'를 실컷 들을 수 있다. 리버티 백화점 앞에 서 있는 모습부터 천장에서부터 공간 구석구석을 소상히 훑고 결국 지하 화장실에서 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 에스텔라를 보여주는 꽤나 긴 호흡에도 'Time of the Season'는 계속된다. 보통 영화에 쓰인 음악들이 노래 멜로디가 담긴 부분을 간략하게 쓰이는 것과 달리, <크루엘라>는 키보디스트 로드 아젠트(Rod Argent)의 솔로 연주 부분까지 온전히 담아낸다. 이쯤 되면 거의 작정하고 음악을 썼다고 봐야 한다. 그 사이 에스텔라는 백화점 지배인에게 끊임없이 자기의 디자인을 선보이려고 애쓰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Five to One"

The Doors

에스텔라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쇼윈도를 자기 스타일로 꾸민 채 잠들고, 결국 다음날 아침 해고당한다. 바로 그때 남작 부인이 나타난다. 호화로운 장신구를 휘감은 채 차에서 내리는 순간, '미국' 밴드 도어즈의 'Five to One'이 흐른다. 아주 육중한 이펙터를 머금은 베이스와 드럼 연주가 공격적으로 펼쳐지는 노래와 함께, 남작 부인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제대로 강조된다. 백화점에 들어선 남작 부인은 쇼윈도의 디스플레이가 누구 솜씨냐며 묻고 금방 해고됐다고 하는 에스텔라에게 찾아오라고 명함을 건넨다. 명함을 받고 잽싸게 도망치는 에스텔라 무리를 따라가면서는, 훗날 헤비메탈의 원형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의 기타 솔로 연주가 이어진다. 록 팬뿐만 아니라, 힙합 팬에게도 'Five to One'은 꽤 익숙하게 들릴 텐데, 제이지(Jay-Z)가 라이벌 나스(Nas)를 살벌하게 터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 프로듀싱의 디스 트랙 'Takeover'가 바로 'Five to One'을 샘플링했다.


"Hush"

Deep Purple

엄마에게 받았던 목걸이가 남작 부인에게 있다는 걸 안 에스텔라는 그걸 되찾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재스퍼와 호레이스가 가까스로 건물에 잠입하고, 드디어 다시 흑과 백으로 머리를 염색한 에스텔라가 파티에 나타난다. 와인 잔을 깨서 흥겨운 분위기를 깨버리고는 새하얀 외투를 불태우고 새빨간 드레스가 나타나자마자 딥 퍼플의 'Hush'가 시작된다. 에스텔라가 남작 부인에게 대척해 난장판을 벌이고, 재스퍼와 호레이스가 우당탕탕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까지 동시에 수식한다. 아직 딥 퍼플이 하드록의 거센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이전 시기를 대표하는 'Hush'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최근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에서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가 차를 타고 플레이보이 맨션을 향해 질주하는 신에서 사용된 바 있다. 난리통을 벌이면서 찾으려고 했던 목걸이가 남작 부인에게 걸린 걸 보고는 음악도 뚝 멈춘다.


"One Way or Another"

Blondie

에스텔라는 엄마를 죽게 만든 남작 부인에게 복수의 칼을 갈면서 그가 사랑하는 걸 빼앗기로 마음먹는다. 사업, 지위, 그리고 자신감. 그래서 직접적으로 남작 부인에게 해를 가하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감을 뽐냈던 크루엘라로서 부인이 주목받는 장소마다 나타나 그 스포트라이트를 빼앗는 방식을 취한다. 레드 카펫 현장에 오토바이를 몰고 '미래'(THe FuTuRe)라는 쓴 메이크업을 하고 나타나는 등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학창시절 친구인 기자 아니타의 도움을 받아 언론에 남작 부인의 왕좌를 정조준하는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한다. 이 쾌활한 시퀀스와 함께 하는 음악은 70년대 말 전성기를 보낸 펑크 밴드 블론디(Blondie)의 대표곡 'One Way or Another'다. 흥겨운 사운드도 사운드지만, 블론디의 프론트우먼인 데비 해리(Debby Harry)가 대중을 단숨에 사로잡는 미모와 카리스마로 당시 최고의 여성 로커로 자리매김하는 역사적인 맥락과 같이 보면 더 흥미로운 활용이다.


"I Wanna Be Your Dog"

The Stooges

에스텔라가 만들어 남작 부인이 자기 브랜드의 새로운 시그니처로 삼으려는 그 드레스의 정체가 드러나자 다시 한번 패션쇼장은 발칵 뒤집힌다. 사람들은 모두 바깥으로 피하고, 크루엘라 일당은 도망치는 사람들의 동선에 딱 맞는 곳에 무대를 만들어 스투지스의 'I Wanna Be Your Dog' 커버 무대와 함께 크루엘라의 패션쇼를 선보인다. 'I Wanna Be Your Dog' 이 수록된 1969년에 발표된 스투지스의 데뷔 앨범은 흔히 70년대 중후반 록 음악계를 장악한 펑크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이 노래가 연주되는 런웨이를 채운 크루엘라의 의상들 역시 펑크 문화의 영향이 강력하게 드러내는 룩이다. "난 너의 개가 되고 싶어" 라는 도발적인 노랫말이 런던 한복판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크루엘라는 납치한 달마시안의 무늬를 딴 옷을 입고 등장해 또 한번 남작 부인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과연 크루엘라의 복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