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올해 방영될 <반지의 제왕> 프리퀄 시리즈를 자사 영화·TV 사업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후 얼마 전 인수한 MGM의 풍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넷플릭스에 대적할 만한 신작들을 줄줄이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반지의 제왕>은 천문학적인 제작 규모 및 배우 캐스팅의 일부를 제외하면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그러나 기존 드라마 히트작들이 영화에서 먼저 공개된 캐릭터 또는 세계관을 얼마나 잘 보강하거나 변화시켰는지 꼼꼼히 연구했다면,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시리즈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이렇게 <반지의 제왕>처럼 스크린을 넘어 브라운관에서 더욱 확장된 이야기를 하는 작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화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다섯 편의 드라마를 만나보자.


섀도우 헌터스: 더 모탈 인스트루먼트 (Shadowhunters: The Mortal Instruments)

<섀도우 헌터스: 더 모탈 인스트루먼트>(이하 ‘섀도우 헌터스’)는 악마를 사냥하는 혼혈 천사, 일명 ‘섀도우 헌터’들을 다룬 카산드라 클레어의 인기 판타지 시리즈를 각색한 작품이다. 사실 섀도우 헌터 세계관은 2013년 영화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를 통해 이미 영상화된 바 있다. 그러나 동시대에 큰 흥행을 기록한 <트와일라잇>·<헝거 게임> 시리즈와 달리 이 영화는 원작 팬과 평론가 모두에게 외면받았고, 당연히 속편 제작 계획도 무산됐다. 이후 약 3년 만인 2016년, 디즈니 계열 케이블 채널 프리폼(FreeForm)에서 처음으로 방영된 <섀도우 헌터스>는 원작 설정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캐릭터들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를 균형 있게 분산시키며 마니아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특히 극 중 동성 커플이자 섀도우 헌터+월록(악마와 인간의 혼혈) 커플인 알렉과 매그너스는 ‘말렉’이란 합성어로 불리며 주인공 클레리-제이스 커플 이상의 뜨거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비록 2019년 시즌 3(두 파트로 나뉨)로 아쉽게 종영했지만, 전 세계 SNS는 지금도 <섀도우 헌터스>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으로 넘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퍼니셔 (The Punisher)

마블의 가장 비극적인 히어로 중 한 명인 퍼니셔(본명: 프랭크 캐슬)는 2004년 라이온스게이트의 영화로 팬들을 찾아왔다. 잔혹하고 사실적인 액션은 눈에 띄었지만 매력은 그게 전부였는지, 영화 <퍼니셔>는 흥행과 비평 모두 캐슬의 가족사만큼 처절한 참패를 맛봤다. 주연과 연출을 교체한 뒤 2008년 개봉한 2편도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약 10년 후인 2017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부활하며 비로소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존 번탈의 묵직한 카리스마는 분노와 슬픔으로 피폐해진 프랭크 캐슬의 무자비한 폭력에 충분한 힘을 실어 주었다. 또한 과거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로 국내 팬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던 벤 반스는 캐슬의 숙적인 빌리 루소를 치가 떨릴 정도로 잘 소화하며 아역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버렸다. 전반적인 호평에도 <퍼니셔>는 두 시즌 만에 넷플릭스에서 캔슬됐다. 그래도 마블 스튜디오 드라마가 최근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연달아 공개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퍼니셔>의 새로운 시즌도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한나 (Hanna)

2011년 개봉한 액션 스릴러 <한나>는 북유럽의 야생에서 암살자로 길러진 15세 소녀가 출생의 비밀과 이에 얽힌 정부의 꿍꿍이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다소 엇갈렸지만, 당시 10대였던 시얼샤 로넌은 <어톤먼트>에서의 충격적인 호연 이후 어려운 변신을 또 한 번 해내며 스스로가 될성부른 나무의 떡잎임을 증명했다. 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소녀는 2019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시리즈 <한나>로 시청자들을 다시 찾아왔다. 한나 역의 에스메 크리드-마일스는 강도 높은 액션과 집밖의 삶에 대한 감정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하며, 영화에서 미처 완성되지 못한 한나의 성장에 더욱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한나의 아버지 겸 전직 CIA 요원 에릭을 맡은 조엘 킨나만 역시 <얼터드 카본> 이후 다시 한번 진중한 액션 연기를 보여주었다. <한나>의 세 번째 시즌은 2020년에 제작이 확정됐으나,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언제쯤 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한니발 (Hannibal)

여름이라면 귀신이나 괴물이 나오는 공포 영화에 슬슬 끌리기 마련이다. 귀신과 괴물보다 무서운 인간을 꼽으라면 한니발 렉터는 1~2위 정도는 가뿐히 차지하고도 남을 무시무시한 존재다. 소설 및 영화 사상 최악의 살인마이면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렉터는 1986년 개봉한 <맨헌터>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영화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안소니 홉킨스가 <양들의 침묵>, <한니발>, <레드 드래곤> 세 편에 걸쳐 열연한 렉터는 지성적인 악마형 범죄자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을 정도다. 2013년 시작해 2015년 종영한 NBC 시리즈 <한니발>은 거의 사골처럼 우려질 대로 우려진 이 캐릭터를 더욱 세련되고 치밀한 방식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매즈 미켈슨 특유의 선 굵은 우아함은 거슬리는 인간을 인육으로 요리해 버리는 한니발 렉터의 잔인성과 더없이 잘 어우러지며 안방극장에 또 다른 전율을 선사했다. 시청률이 떨어졌다곤 하지만 NBC가 높은 인기에 아랑곳없이 <한니발> 시즌 4를 캔슬한 것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수많은 팬들이 괜히 넷플릭스의 <한니발> 리뉴얼을 목 놓아 부르짖은 게 아니다.


고담 (Gotham)

슈퍼 히어로 중에서 가장 자주 영상화된 인물은 아마도 배트맨이 아닐까? 주로 팀 버튼의 영화 2편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으로 연상되는 배트맨은 DCEU에서 하차한 벤 에플렉을 이어 로버트 패틴슨에 의해 다시 극장가를 찾아올 예정이다. 하지만 그전에 배트맨과 그의 세계는 TV 시리즈에서도 매우 음습하고 우울한 매력을 뽐냈으니, 바로 젊은 형사 시절의 제임스 고든이 주인공인 <고담>이 그 작품이다. 드라마는 무법의 도시를 지키려는 고든 형사의 고뇌와 고아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성장을 동시에 다루면서도 영화에서 단편적으로 소개된 빌런들에게 개성과 몰입감을 불어넣으며 호평을 받았다. 독특하게도 고담 최악의 빌런이자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 조커는 극중 쌍둥이 형제 제롬 발레스카, 제러마이아 발레스카 2명으로 각각 속성이 나뉘어 묘사되었다. 특히 1인 2역을 소화한 캐머런 모나한의 광기 폭발 연기는 파편적인 조커의 정신 상태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이다.


에그테일 에디터 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