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봉준호도? 2021 칸국제영화제와 역대 포스터 속 영화인들

칸이 활기를 찾았다. 매년 5월이면 크루아제트 거리를 영화인으로 붐비게 하던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였지만, 팬데믹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지난해 행사를 포기하고 공식 초청작을 선정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던 칸영화제가, 휴지기를 뒤로하고 돌아왔다. 2년 하고도 2개월 만이다. 지금 영화계는 칸에서 매일 새로 공개되고 있는 기대작에 대한 이런저런 반응으로 뜨겁다. 제74회 칸국제영화제의 주요 소식과 역대 포스터를 함께 정리했다.

제74회 칸국제영화제

2년 만에 칸을 찾은 봉준호와 송강호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가 달린 이후로 수백 년 동안 이 지구상에서 영화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지난 7월 6일(현지 시간) 제74회 칸영화제 개막식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봉준호 감독이 영화인들을 독려하며 말했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페도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조디 포스터에 명예 황금종려상을 시상했고. 송강호, 메기 질렌할, 타하르 라임 등이 경쟁부문 심사위원단으로 위촉되어 자리를 빛냈다.

뤼미에르 극장에서 담뱃불을? <홀리 모터스>(2012) 이후 9년 만에 돌아왔다. 개막작은 <나쁜 피>(1986), <퐁네프의 연인들>(1991)을 연출한 레오 카락스 감독의 신작 <아네트>(2021)다. 송스루 뮤지컬 영화 <아네트>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오페라 가수 앤(마리옹 꼬띠아르), 그리고 이들의 신비로운 딸 아네트에 대한 이야기로.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사이먼 헬버그 가 출연한다. 상영 후 5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고, 감독과 드라이버가 관객의 환호 속에 담뱃불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보여 화제를 모았다. 영화와 관련 있는 퍼포먼스로 보인다. 프리미어 성료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마리옹 꼬띠아르와 사이먼 헬버그는 라이브로 주제가 ‘So May We Start’를 부르기도 했다. 첫선 이후 쏟아져 나온 기사를 종합하면, 영화를 먼저 본 이들의 반응은 대략 “아담 드라이버가 다했다” 정도로 요약된다.

<베네데타> <프렌치 디스패치>… 기대작의 향연 둘째 날 레드 카펫도 붐볐다. 다이앤 크루거가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에브리씽 웬트 파인>(2021)으로 칸을 찾았고, 이자벨 위페르도 자리에 함께했다. 8일 밤은 <스틸워터>(2021)의 맷 데이먼과 카밀 코탄이 빛냈다. <원초적 본능>(1992)과 <엘르>(2016)로 유명한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2021)부터,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숀 베이커 감독의 <레드 로켓>(2021), 그리고 <엉클 분미>(2010)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메모리아>(2021)까지. 쟁쟁한 경쟁부문 초청작이 남은 기간을 채울 것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를 연출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2021)도 여러 차례의 개봉 연기 끝에 칸에서 공개됐고, 9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국영화 <비상선언> 초청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 막강한 출연진으로 크랭크인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비상선언>(2021)도 칸의 부름을 받았다. 15일 비경쟁부문 프리미어 상영을 앞두고 예고편이 공개된 바 있다. 영화는 유례없는 재난에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릴 것으로 알려졌다. 송강호와 함께, 한재림 감독, 이병헌, 임시완이 레드 카펫을 밟을 것이며, 이병헌은 한국배우 최초로 폐막식 시상자로 무대에 선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의 얼굴 앞에서>(2021)도 칸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됐다.

<그녀는 그것을 좋아해>와 스파이크 리 올해 칸영화제 공식 포스터는 <말콤 X>(1992), <블랙클랜스맨>(2018), <Da 5 블러드>(2020)를 연출한 스파이크 리 감독이 장식했다. 그는 첫 흑인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기도 하다. 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 <그녀는 그것을 좋아해>(1986)도 칸에서 첫선을 보인 바 있는데. 이 영화에서 리가 연기한 배달부 마스의 얼굴이 포스터에 쓰였다. 칸영화제 측은 “<그녀는 그것을 좋아해> 속 마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커뮤니티를 향한 편견 섞인 묘사를 거부하는 캐릭터다. 리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끝없이 인종 차별에 저항하고 질문을 제기해왔다”며, 그를 칸의 얼굴로 내세운 이유를 설명했다.

칸영화제 포스터 속 영화인들

스파이크 리 전에는 어떤 영화인이 칸영화제의 포스터를 장식했을까. 2000년대 이전의 포스터에는 주로 일러스트가 쓰였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1940, 50년대의 그림부터, 몽환적이면서 초현실주의적인 1970년대의 그림, 그리고 페데리코 펠리니와 같은 거장 감독에 헌사를 바치는 1980, 90년대의 그림까지.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일러스트를 그려왔다. 그리고 2006년을 기점으로 칸 포스터에 변화가 있었다.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때 이후 영화 속 한 장면이나 영화인을 앞세운 포스터가 주를 이뤘다. 한국영화의 한 장면, 혹은 봉준호와 같은 자랑스러운 국내 영화인도 언젠가 담기길 바라며. 인상적인 최근 칸영화제 포스터를 몇 모아본다.

2006, 59th 실루엣만 있을 뿐 얼굴도 보이지 않지만, 좁은 계단을 지나가고 있는 이 포스터 속 인물이 <화양연화>(2000)의 수 리첸(장만옥)이란 걸 우리는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이 포스터가 세상에 나오기 불과 6년 전에 개봉한 <화양연화>는, 머지않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상징적인 영화로 자리 잡았고 칸영화제의 얼굴이 되었다.

2007, 60th 영화인 여러 명이 한 번에 출연한 적도 있다. 60주년 기념 점프샷으로 구성된 제60회 포스터다. 위에서부터, 슐레이만 시세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 왕가위 감독, 줄리엣 비노쉬, 제인 캠피온 감독, 제라르 드파르디유, 브루스 윌리스, 사무엘 L. 잭슨,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포스터를 채우고 있다. 이들의 점프는 도약, 그리고 수많은 감독과 배우에게 도약의 발판이 되었던 칸영화제의 역사를 함의한다.

​

2011, 64th <백색 공포>(1971), <허수아비>(1973)를 연출한 제리 샤츠버그 감독이 1970년에 찍은 사진을 재구성했다. 포스터 속 인물은 감독과 <퍼즐 오브 다운폴 차일드>(1970)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 페이 더너웨이.

​

2012, 65th 마릴린 먼로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 칸은 영원히 지지 않는 불변의 아이콘, 먼로를 다시 데려다 놨다. 사진은 1956년 6월 1일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그가 리무진에서 초를 부는 모습이다. 먼로처럼 칸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영화계의 상징이다.

​

2014, 67th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과 1/2>(1963) 속 한 장면을 가져왔다. 극중 영화감독 귀도(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는 끊임없이 관습적이지 않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찾는다. 선글라스 위로 앞을 응시하는 세피아 톤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를 통해, 칸은 이탈리아와 유럽 시네마에 헌사를 바치는 한편 세계 영화사의 미래를 낙관했다.

2015, 68th 2015년 칸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했다. 스웨덴 출신의 할리우드 대표 배우 버그만은 <카사블랑카>(1942), <가스등>(1944), <스펠바운드>(1945), <아나스타샤>(1956),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1974), <가을 소나타>(1978) 등에 출연하며 아카데미 연기상만 세 번을 받았다. 그는 1973년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

2016, 69th 한 남자가 하늘로, 바다로 뻗은 듯한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사랑과 경멸>(1963)의 한 장면이다. 제69회 칸영화제의 포스터는 장 뤽 고다르 감독에 헌정됐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각색한 <사랑과 경멸>은 영화 현장에 대한 이야기다. 제작자와 감독 시나리오 작가 사이의 마찰과 자본에 무너져내리는 여러 관계를 다뤘으며, 영화문법에 대한 실험이 깃든 고다르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다.

2018, 71st 칸은 2년 만에 고다르를 다시 불러들였다. <미치광이 피에로>(1965) 속, 일상을 벗어나 계획 없는 로드 트립에 떠난 페르디낭(장 폴 벨몽도)과 미리안(안나 카리나)이 차창 너머로 입을 맞추는 장면이다. 역시 고다르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로, 영화학도 필람 영화로 꼽히는 공부하기 좋은 작품이다.

2019, 72th 2019년에는 그해 3월 세상을 떠난 아그네스 바르다 감독을 기렸다. 그의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5)의 세트장을 담은 사진이다. 붉은색의 배경과, 반짝이는 불빛이 포스터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