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잭 니콜슨의 후기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가 23년 만에 재개봉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배우에 관한 사실들을 소개한다.


뉴저지에서 자란 잭 니콜슨은 캘리포니아로 와 <톰과 제리>, <스쿠비 두>, <고인돌 가족> 등을 만든 애니메이션 회사 ‘해나 바베라’(Hanna-Barbera)에서 근무했다. 우편물 담당 직원이었던 그를 마음에 들어 한 윌리엄 해나와 조셉 바베라가 애니메이터로 일해보는 것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배우를 꿈꿨던 니콜슨은 이를 거절했다.

연극과 TV드라마에서 단역을 맡던 잭 니콜슨은 저예산 영화 <크라이 베이비 킬러>(1958)의 주연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입성했다. 미국 B급영화의 제왕 로저 코먼 감독이 제작을 맡은 <크라이 베이비 킬러>는 개봉 당시 흥행에 완전히 실패했고 2006년에야 처음 DVD가 발매됐을 만큼 오랫동안 잊혀졌다. 코먼은 이후 여러 영화에 니콜슨을 크고 작은 역에 캐스팅하고, 니콜슨은 코먼이 연출한 <트립>(1967)의 시나리오를 쓰는 등 연을 이어갔다.

<크라이 베이비 킬러>

잭 니콜슨이 배우로서 두 배우로서 두각을 나타낸 작품은 <트립>의 주연이었던 데니스 호퍼와 피터 폰다가 각자 감독, 제작, 각본, 주연을 겸한 <이지 라이더>(1969)다. 뉴저지 토박이었던 니콜슨은 텍사스 출신의 조지 핸슨을 연기하기 위해 린든 B. 존슨 전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텍사스 말투를 연마했다. 니콜슨은 영화가 시작하고 47분 만에 처음 등장해 총 분량이 17분밖에 되지 않지만 두 주연를 뛰어넘는 인상을 남기면서 처음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지 라이더>

이탈리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팬이었던 데니스 호퍼와 잭 니콜슨은 미국에서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를 작업 중이던 안토니오니를 <이지 라이더>에 초대했고, 그는 <이지 라이더>의 니콜슨을 보고 다음 작품 <여행자>(1975)에 그를 캐스팅 했다. 니콜슨은 개봉하고 얼마 안 돼 영화 판권을 사서 작품을 보호할 정도로 <여행자>를 좋아했다.

<여행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친구였던 니콜슨은 그의 아내였던 샤론 테이트가 찰스 맨슨 패거리에게 살해당했을 때 베개 밑에 망치를 놓고 잠들었다. 훗날 그는 폴란스키의 영화 <차이나타운>에서 명연을 선보인다.

<차이나타운>

잭 니콜슨이 37세가 되고 <차이나타운>이 개봉한 1974년, 그가 지금까지 누이로 알고 자란 이가 어머니고, 어머니라 알고 자란 이가 외할머니였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결혼 전에 아이를 갖게 된 어머니와 이 사실을 감추려던 할머니가 꾸민 일이 두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야 밝혀진 것. 친부라고 예상되는 두 사람이 있지만 "굉장히 드라마틱한 사건이지만 내게 대단한 충격을 주지 않는다"고 밝힌 니콜슨은 친자 확인을 하지 않았다.

잭 니콜슨과 딸 제니퍼

<마지막 지령>

<마지막 지령>, <차이나타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연속 3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74년엔 <호랑이를 구하라>의 잭 레먼, 1975년엔 <해리와 톤토>의 아트 카니가 수상했고, 그 이듬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첫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드라이브, 히 세이드> 촬영 현장

연기 활동을 하는 틈틈이 시나리오를 써온 니콜슨은 장편영화 3편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첫 영화는 대학 농구 선수가 교수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드라이브, 히 세이드>(1971). 데뷔작에선 직접 연기는 하지 않았던 그는 서부극 코미디 <바람둥이 길들이기>(1978)에선 주연까지 맡았고, 이후 12년 만에 만든 <불륜의 방랑아>(1990)는 <차이나타운>(1971)의 속편이다.

<바람둥이 길들이기> / <불륜의 방랑아> 포스터

스탠리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다음 작품으로 나폴레옹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을 만들려고 계획했고, 나폴레옹 역에 <이지 라이더>에서 본 잭 니콜슨을 캐스팅했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 때문에 2년간의 준비 끝에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되고, 니콜슨과 큐브릭은 근 10년 후 <샤이닝>(1980)에서 재회했다.

큐브릭의 <나폴레옹> 제작 과정을 담은 책

<샤이닝> 속 잭의 불안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 평소 싫어하는 치즈 샌드위치만 2주 동안 먹었다. 잭이 호텔에서 혼자 벽에 테니스공을 치는 건 니콜슨의 아이디어였다. 시나리오엔 그저 “잭은 일하지 않는다”라고만 적혀 있었다. 잭이 도끼로 화장실 문을 부수는 신, 소품팀은 일부러 잘 부서지는 소재로 문을 제작했는데, 소방대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니콜슨이 문을 지나치게 잘 부수는 바람에 다시 더 강력한 문을 준비해야 했다.

<샤이닝>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먼저 읽은 잭 니콜슨은 잭의 아내 웬디 역에 제시카 랭을 추천했다. 큐브릭 역시 랭이 원작의 웬디와 잘 맞는다고 동의했지만, 결국 셜리 듀발이 웬디의 연약한 모습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해 듀발을 캐스팅했다. 몇 년 후 니콜슨은 여태껏 본 가장 강인한 연기라며 듀발의 퍼포먼스에 극찬했다.

<샤이닝>

<배트맨>의 원작자 밥 케인은 직접 영화 <배트맨>(1989)의 조커 역에 잭 니콜슨을 추천했다. 그는 DC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슈퍼맨>(1978)의 렉스 루터 역에도 고려된 바 있다. 하지만 니콜슨의 캐스팅은 바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가 망설이는 사이, 워너 브러더스는 로빈 윌리엄스에게도 조커 역을 제안해 심지어 윌리엄스가 수락까지 했는데, 니콜슨이 역을 맡겠다고 결정하면서 윌리엄스는 방출되고 말았다. 한동안 윌리엄스는 <배트맨 포에버>의 (짐 캐리가 연기한) 리들러 역뿐만 아니라 워너 브러더스의 관여한 모든 작품을 거절했다.

<배트맨>의 조커

니콜슨은 조커가 마음에 드는 이유가 유머감각이 매우 천박하다는 데에 있다고 말했고, 조커를 벅스 바니의 싸이코 버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배트맨>이 성공하리라고 확신했던 걸까. 잭 니콜슨은 당시 그의 평균 개런티였던 1000만 달러 아닌 600만 달러만 받고, 영화 흥행과 머천다이즈 판매 수익의 1%를 받는 거로 계약을 맺었고, 결국 6천만 달러 이상을 받은 거로 알려졌다. 이는 2021년 기준으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인데, 상위권에 속한 배우들의 작품 가운데 80년대 영화는 <배트맨>이 유일하다. 20년 전 <이지 라이더> 출연 당시 니콜슨의 개런티는 주당 392달러였다.

조커 분장 과정

잭 니콜슨의 조커에 이어 <배트맨 2>(1992)에서 빌런 펭귄을 연기한 대니 드비토는 연출작 <호파>(1992)의 주인공 지미 호파 역에 니콜슨을 캐스팅했다. 한편, 니콜슨은 두 번째 연출작 <바람둥이 길들이기>에 드비토를 캐스팅한 바 있다.

<호파>

1994년 미팅을 위해 LA 도로를 운전하던 잭 니콜슨은 뒤차와의 시비 끝에 차에 있던 골프채를 꺼내 그 차의 유리창을 마구 부쉈다. 당시 그는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고, 숀 펜이 감독한 <크로싱 가드> 촬영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심해 있었다고 한다. 고소당한 니콜슨은 차주에게 50만 달러가 넘는 위자료를 지불했다고 알려졌다. 애덤 샌들러와 함께한 코미디 <성질 죽이기>(2003)에선 니콜슨이 연기한 버디 박사가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를 놓고 고민하다가 야구방망이를 택해 렉서스를 부수는 장면이 나온다.

마이클 케인은 90년대 중반에 <베이징 익스프레스>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완전히 실망하고 은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잭 니콜슨이 케인을 <블러드 앤 와인>(1996)에 출연하기를 설득했고, 그 촬영 현장의 좋은 경험에 힘입어 연기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니콜슨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알프레드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블러드 앤 와인>

주/조연상 통틀어 총 12번 오스카 후보에 올랐는데,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고루 퍼져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로 주연상, <애정의 조건>(1983)으로 조연상, 3번 오스카 트로피를 차지했다. 니콜슨이 오스카를 받았던 작품은 그와 호흡을 맞춘 여성 배우 루이스 플레처, 셜리 매클레인, 헬렌 헌트도 수상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1976년,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연기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맥머피, <배트맨>의 조커>, <호파>의 지미 호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멜빈을 손꼽았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어바웃 슈미트>(2002)로 골든골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때 “행복해야 할지 부끄러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분명 코미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라는 멘트를 던져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어바웃 슈미트>

1981년 작 <레즈>에서 연인을 연기했던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은 2003년 작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 다시 한번 로맨스를 선보였다.

다이앤 키튼과 잭 니콜슨

서부영화 <미주리 브레이크>(1976)의 공동 주연을 맡았던 잭 니콜슨과 말론 브란도는 할리우드 멀홀랜드 드라이브 근처에서 바로 옆집에 이웃하며 살았다. 2004년 7월 브란도가 세상을 떠난 뒤 니콜슨은 그의 집을 구입해 건물을 부수고 그곳에 푸루메리아 꽃을 심어 브란도를 추모했다.

<미주리 브레이크> 촬영 중의 잭 니콜슨과 말론 브란도

잭 니콜슨은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크래쉬>에 작품상을 수여했다. 그는 <브로크백 마운틴>에 투표했고, 수상까지 할 줄 알아서 수상 결과에 깜짝 놀랐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크래쉬>의 작품상 수상은 오스카 최악의 수상 결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어바웃 슈미트>, <성질 죽이기>,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등의 코미디를 연달아 작업한 잭 니콜슨은 다시 한번 악역을 맡고 싶어 <디파티드>의 프랭크 역을 수락했다. 그는 프랭크를 진정한 악의 화신이라고 소개했다.

<디파티드>

잭 니콜슨과 알 파치노는 단 한번도 호흡을 맞추지 않았지만 캐스팅과 관련한 연결고리가 여럿 있다. 니콜슨은 <대부>(1972)의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제안 받았지만 자기는 아일랜드계라 이탈리아 갱스터를 연기할 수 없다며 고사했고, 잘 알려져 있듯 마이클은 알 파치노가 연기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디파티드>에서 니콜슨이 연기한 프랭크 코스텔로는 본래 파치노에게 먼저 제안됐던 역할이었다. 다른 영화에서 같은 인물을 연기한 경우도 있다. 니콜슨은 대니 드비토의 <호파>에서, 파치노는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2019)에서 실존인물 지미 호파를 연기했다.

<대부> / <아이리시맨>

<스팅>(1973)은 너무 상업적인 영화라는 이유로, <미지와의 조우>(1977)는 특수효과가 배우를 제압할 거라고 생각해 캐스팅을 거절했다. 그 밖에 <칼리굴라>(1979)의 말컴 맥도웰, <사관과 신사>(1982)의 루이스 고셋 주니어, <미저리>(1990)의 제임스 칸, <닉슨>(1995)의 안소니 홉킨스, <스토커>(2002)의 로빈 윌리엄스, <배드 산타>(2003)의 빌리 밥 손튼 등이 연기한 캐릭터를 고사했다.

<스팅>

<미저리>

미술품 콜렉터로 명성이 자자하다. 60년대부터 수집을 시작해 피카소, 로댕, 마티스, 워홀 등 20세기를 수놓은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이 모인 니콜슨의 콜렉션은 1억5천만 달러의 값어치를 훌쩍 넘길 뿐만 아니라, 전문가 사이에서도 작품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하진 않았지만, 세 작품을 함께 해 두 개의 오스카를 안겨준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에브리씽 유브 갓>(2010) 이후 10년 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2017년엔 <토니 에드만>(2016)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에서 아버지 역할로 계약까지 했으나 결국 이듬해 하차하고 말았다.

LA 레이커스의 열렬한 팬이다. 레이커스의 홈경기는 거의 놓치는 법이 없고, 영화 계약 시에도 레이커스 경기 일정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기도 했다. 작년 코비 브라이언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니콜슨은 브라이언트에게 바치는 공개 서한을 띄웠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