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 위도우>의 주요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주의해 주세요
코믹스 원작의 태스크마스터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블랙 위도우>의 메인 빌런으로 알려져 있었던 영화 속 태스크마스터에 조금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기대하는 바와는 많이 달랐고 캐릭터 비중도 크지 않았던 데다, 결정적으로 캐릭터의 특징이 그리 잘 살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당초 <앤트맨과 와스프>의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지 않겠느냐는 루머도 있었으나 결국 <블랙 위도우>에서 처음 등장했고, 사실 알고 보니 메인 빌런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피해자였다는 사실은 원작 팬들에게는 딱히 호평을 들을 만한 전개는 못 됐다.
영화 속 '태스크마스터', 그리고 원작의 '태스크마스터'
태스크마스터의 능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상대의 동작을 한 번 보기만 하면 그대로 카피해 쓸 수 있는 초월적인 기억력이다. 즉 전투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별도의 수련을 거칠 필요가 없으며 어떤 동작이든 시각으로 접한 것만으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능력은 육체적인 부분 전체에 작용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카피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기술을 사용하는-예를 들면, 마법이라든지-경우에는 물리적인 움직임 이상이기 때문에 복사가 불가능하다.
원작의 태스크마스터는 타고난 초능력을 어릴 때 깨닫고 이를 발전시킨 형태라면, 영화 속 태스크마스터는 정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으나 불의의 사고 이후 신체 개조와 특수 수트를 통해 기술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는 설정이다. 실제로 나타샤와의 전투 장면에서 나타샤(스칼렛 요한슨)의 다음 행동과 더불어 전투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벤져스의 적, 때로는 아군?
태스크마스터는 빌런 캐릭터로 알려져 있고 영화에서도 블랙 위도우의 적으로 등장했으나, 마블 코믹스의 팀이었던 썬더볼츠 소속으로 활약하거나 한시적으로 쉴드에 조력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너무도 빌런스러운(세계정복이라든지) 야욕이 숨겨져 있기는 했지만...
1980년에 '어벤져스' 이슈를 통해 처음 등장한 뒤 스파이더맨과 데드풀, 문나이트, 앤트맨, 퍼니셔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적으로 활약했으며 특히 데드풀과 퍼니셔, 문나이트 등과는 상당한 악연을 자랑하기도 한다.
퍼니셔의 경우에는 넷플릭스 실사화 시리즈 이후 향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치더라도, 디즈니의 20세기폭스 인수로 MCU 입성이 확정되다시피 한 데드풀, 제작을 확정 지은 문 나이트 등과는 어떻게든 만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아시다시피 <블랙 위도우>의 태스크마스터 안토니아(올가 쿠릴렌코)는 기존의 코믹스 캐릭터와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고, 스스로 빌런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더 큰 게 사실이다.
매력적인 빌런만큼 히어로 무비에서 관객을 사로잡는 요소도 없기에 현재 MCU의 태스크마스터는 그리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히어로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빌런인 듯 안티 히어로 같은 캐릭터로서 제2의 로키가 될 가능성도 있는데, 무게감 있는 빌런으로 보기엔 작중의 설정은 어쩐지 부족한 느낌을 준다.
더 많은 '블랙 위도우'들과 함께?
물론 MCU가 늘 그래왔듯이 어떤 요소들을 차용하여 새로운 캐릭터성을 전개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일단 레드 룸에서 세뇌되어 훈련받았던 여타의 블랙 위도우들과 마찬가지로 드레이코프(레이 윈스턴)에게 개조당한 피해자로 그려졌다는 점은 기정사실이지만 그가 이후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또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원작 캐릭터의 어떤 요소를 차용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매력을 이끌어내기에는 이번에 그려진 이야기들이 원작의 태스크마스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블랙 위도우들과 함께 떠난 '태스크마스터' 안토니아가 수트를 벗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형태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대신, '태스크마스터'의 이름을 다른 캐릭터가 이어받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 보게 된다. 작중에서 등장했듯 수트를 착용하면 원작의 태스크마스터와 흡사한 능력을 갖게 되니, 별개의 인물로 캐릭터를 재탄생시키는 것도 아주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유머러스한 태도와 독특한 능력으로 무장하고 어벤져스의 빌런으로 활약해 왔던 태스크마스터였기에, 좀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모습 그리고 화려한 전투씬을 기대했을 것이기 때문에. 물론 스토리 진행상으로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의 이야기에 있어서는 주요한 계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캐릭터의 첫 실사화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어쩐지 씁쓸하기도 하다.
더불어 제작을 확정 지은 <문나이트>나 <판타스틱 4>와도 접점이 있고, 후반부 스토리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추후에도 등장 가능성이 있으니 좀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재미있는 전개를 기대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기도 했고, 태스크마스터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특징점들도 잘 드러나지 않았으니…
하지만 MCU의 페이즈4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고, 펜데믹 사태로 인해 이전보다는 스크린의 비중이 적어졌지만 디즈니 플러스라는 자체 플랫폼도 보유한바 좀 더 다채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