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의 계획은 꽤나 원대해 보인다. MCU에 버금가는 '소니 마블 유니버스'는 꽤 큰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구 귀속된 스파이더맨 판권을 가지고 다양한 실사화 프로젝트를 전개할 것이라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소니 마블 유니버스'의 첫 시작점이 바로 곧 개봉을 앞둔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전작 <베놈>이었다.
스파이더맨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소니의 지난날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는 창대했던 시작에 비해 끝맛이 씁쓸했고 앤드류 가필드를 기용했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더욱 안타까운 마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성공했더라면 아마도 MCU에서 톰 홀랜드 주연의, 어리고 어설프지만 히어로로 거듭나는 성장형 스파이더맨은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소니 픽처스의 계획에 대해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던 시절부터 계속해서 이어져 왔던 스파이더맨 실사화 프로젝트의 히스토리에는 꽤 재미있는 포인트들이 있기 때문이다.
2019년 가을, MCU 타이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강렬한 스타트를 끊으며 <스파이더맨: 홈커밍>까지 성공시키고 이제 시리즈를 이어가는 일만 남아 있을 것 같았던 MCU의 스파이더맨은 비보를 접하게 된다. 바로 소니와 마블 스튜디오의 판권 협상이 결렬되면서 MCU에서 더 이상 스파이더맨을 등장시킬 수도, 언급할 수도 없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스파이더맨 판권은 소니 픽쳐스에 영구 귀속되어 있는 상황이고,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 역시 더 이상 MCU에서 스파이더맨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게 되면서 점점 논란은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소니 픽처스에서 자체 제작한 영화 <베놈>은 2편을 확정한 상황이었고, 이대로라면 <베놈>으로 시작된 스파이더맨 캐릭터들을 소재로 한 실사화 프로젝트 '소니 마블 유니버스'에 기존의 스파이더맨이 편입되거나 아예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물론 소니로서도 이미 흥행에 성공한 MCU의 스파이더맨을 무시하고 새로운 스파이더맨을 제시하는 것은 상당히 리스크가 따르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의 쿠키 영상에서 앞으로의 피터 파커가 겪게 될 난관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 데다가 드디어 MJ와 마음을 확인하는 데 성공한 직후였기 때문에 그를 MCU에 잔류시키라는 일명 '스파이더맨: 홈리스(Homeless)' 청원 서명에 전세계적으로 12만 명의 팬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소니로서도 그리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소니와 마블은 재협상에 들어갔고 주연배우인 톰 홀랜드 역시 여기에 힘을 보태면서 무사히 세 번째 시리즈를 제작 확정하는 데 성공했다. 팬들과 관객들의 요구가 이른바 '어른의 사정'을 해결한 셈이라고 봐도 될지도 모른다.
물론 스파이더맨 판권은 여전히 소니 픽처스에 있는 상황이며, 이 판권에는 스파이더맨을 기반으로 한 관련 캐릭터의 판권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 스파이더맨의 대표적인 빌런은 물론이고 베놈, 카니지, MJ(메리 제인 왓슨), 그웬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전부 소니의 울타리 안에 있는 셈. 즉 MCU에 가장 주된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을 내주기는 했지만(판권 대여 개념의 계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실사화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소니 픽처스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진행 중일 때부터 스파이더맨을 괴롭히는 빌런들로 구성된 팀인 '시니스터 식스'의 실사화를 계획하고 있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여러모로 성공을 거두었더라면 이 '시니스터 식스' 영화화 역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나, 프로젝트 자체가 취소되면서 연달아 함께 취소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스파이더맨 빌런들로 이루어진 '수어사이드 스쿼드'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각자의 사정으로 피터 파커를 싫어하는 이들이 한데 모여 '영원히 고통받는 피터 파커'를 좀 더 괴롭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왠지 스파이더맨은 고난을 겪는 게 매력인 것처럼 보인다) 꽤 재미있는 그림이 되었을지도. 하지만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만 같았던 '시니스터 식스'도 지금이라면, 또 모를 일이다.
마블과 DC로 대표되는 히어로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화 프로젝트를 흔히 히어로무비라는 장르로 분류하고 있지만, 어벤져스의 전세계적인 성공을 시작으로 히어로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물론이고 빌런 캐릭터가 아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도 줄줄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TV 시리즈이기는 하나 대표적인 다크 히어로인 넷플릭스의 <퍼니셔>도 호평을 받은 바 있고,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는 말할 것도 없다.
소니 픽처스는 <베놈>을 공개하며 소니 마블 유니버스라는 새롭고도 장대한 계획의 청사진을 보여주었다. 스파이더맨에 필적하는 인기 있고 유명한 빌런 캐릭터를 내세워 강력한 안티 히어로 혹은 빌런 무비를 만들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즉 <베놈>을 필두로, <모비어스>에 이어 다양한 캐릭터들을 속속 실사화시키면서 종국에는 <시니스터 식스>라는 빌런 팀업 무비로 나아가는 빌드업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
<베놈>은 그래서 꽤 의미가 있는 시리즈가 됐다. 유구히 이어져 온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히스토리만큼이나 이 캐릭터 주위에는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캐릭터가 무수히 많고, 이들을 실사화하는 작업은 꽤 흥미진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니 마블 유니버스의 시작점이자 토대가 될 타이틀인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겠지만, 기대를 갖고 지켜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히어로무비의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수준급의 CG와 파워풀한 액션신을 이미 보여주었으므로 전작에서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스토리 개연성 등을 보강해 준다면 전작보다 나은 후속작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충분히 강력했던 베놈보다도 더 징그럽고(...!) 괴기스러운 비주얼의 카니지를 내세웠으니. 1차 예고편에서 보여준 카니지의 모습은 코믹스 일러스트를 영상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인데, 실제 스크린에서 어떻게 등장할지도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다.
베놈이 에디 브록(톰 하디)의 친구(거의 애인처럼 보이기까지 했다)가 되고 받아들이는 과정, 즉 베놈 심비오트가 에디 브록에게 들어가 서로를 인정하는 이야기를 1편에서 보여주었다면 2편은 또 다른 심비오트, 하지만 베놈보다 훨씬 기괴하고 공격적인 성향의 카니지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베놈> 1편의 쿠키 영상에서 등장했듯 카니지의 숙주인 클리터스 캐서디(우디 해럴슨)는 흉악범으로 이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정도이며, 원작에서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학살하는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비주얼만 봐도 그렇지만 이미 충분히 기괴한 베놈보다도 월등히 강한데 이 카니지를 어떻게 상대해 나갈 것인가가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작의 평가가 그리 좋지는 못했다. 수준급의 CG와 톰 하디라는 걸출한 배우를 가지고도 시나리오 완성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어딘지 아쉬운 듯한 개연성-이를테면 베놈이 에디 브록을 선택한 이유라든지-의 문제를 지적받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MCU의 스파이더맨이 이쪽 시리즈에 힘을 실어주기 어려운 이상 <베놈> 시리즈가 전작의 단점들을 상회하며 좋은 성과를 내지 않는 한 앞서 언급했던 이 빌드업은 그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10월로 개봉일을 확정한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소니 픽처스가 그리는 '소니 마블 유니버스(소니 픽처스 유니버스 오브 마블 캐릭터스)'를 <베놈> 시리즈가 탄탄하게 받쳐줄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