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춘은 싱그럽지만 위태롭다. 돈 한 푼 가진 것 없어도 가출은 해야 하고, 낯선 이부자리가 불편해도 억지로 잠을 청한다. 습관처럼 집을 떠나지만, 매번 돌아온다. 세 친구의 일탈과 좌절, 각자의 불안한 내면을 그린 <최선의 삶>은 강이(방민아)와 소영(한성민), 아람(심달기)을 통해 열여덟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열여덟의 순간>, <트웬티 트웬티>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한성민은 <최선의 삶>을 통해 다시 한번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사춘기 고등학생에 이어 스무살 새내기까지, 맡은 배역과 함께 나이 들며 성장한 이 배우는 새로운 도전에 목마른 스물하나가 되었다. 지난 8월 20일, 한성민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소영을 연기하기 위해 갈고 닦았을 날카로움은 찾아볼 수 없는, 수줍은 얼굴과 차분한 말씨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성민이 담아낸 열여덟 소영은, 끊임없는 고민과 치열한 노력을 거듭해 완성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시간.


데뷔 이후 극장에서 개봉하는 첫 영화가 <최선의 삶>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소감이 어떤가.

반응이 어떨지 기대되는 한편, 지금 시국이 시국인지라… ‘괜찮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타이틀이 <최선의 삶>인 만큼 이 영화가 우리 셋을 통해 그 시절의 자신을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각자 최선을 다했던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캐스팅 단계에서, 이우정 감독이 인스타그램 속 한성민 배우의 사진을 보고는 ‘소영이다!’ 하셨다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진을 보셨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것까진 말씀을 안 해주셔서… 그 당시에 모델 활동하면서 촬영한 사진을 자주 올렸었는데, 대부분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웃음) 그 모습을 보고 한번 미팅을 해보자고 하셨던 것 같다.

<최선의 삶>은 인물 간의 감정 변화가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이다. 갈등의 시발점에 소영이 있고. 캐릭터에 대한 본인의 해석도 연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소영은 어떤 아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나.

처음에 미팅했을 때부터 감독님이 ‘소영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나쁜 아이로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다. 나도 마찬가지로 소영이가 관객분들에게 너무 나쁘게만 비치지 않았으면 했고.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소영이의 최선은 약간 서툴렀던.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원작 소설 같은 경우는 수상작이기도 하고 팬도 많더라. 원작이 있는 작품을 연기한다는 것,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소영을 연기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한 부분이 있을까.

나도 원작 소설의 팬이어서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영이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를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고. 어쨌든 세 친구 중에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계층에 속해 있고 주변 아이들을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 내가 그걸 보여주지 못한다면 소영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미적지근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의 삶>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혹은 배우나 모델이 되기 위해 스스로 포기했던 것이 있다면.

중학교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이 길을 택한 대신 학창 시절의 추억을 조금… 포기하지 않았나 싶다. 현장학습을 가도 촬영 때문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굉장히 잘했다고 들었다.

맞다. 내 성적도 포기했다. (웃음)

혹시 학업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배워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나중에 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배움에 뜻이 있으면 나중에 나이를 먹어도 배울 수 있으니까 지금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라고' 요즘은 언어에 관심이 많다. 일본어나… 영어도 배우고 싶고. 영어를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지만, 회화가 쉽지 않으니까. 나중에 혹시 해외에서 활동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웃음) 배우고 싶다.

극 중 소영은 모델 지망생으로, 인생 계획이 뚜렷한 캐릭터다. 한성민이 그리고 있는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다면.

내가 걱정도 많고, 잘 불안해하는 편이라… 주변 분들이 ‘너 연기 1, 2년 하고 그만둘 거 아니잖아’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자주 해주신다. 그래서 한 마흔 정도 되었을 때, ‘한성민’ 하면 ‘아~ 믿고 캐스팅할 수 있지’, ‘믿고 보는 배우지’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선의 삶>

<최선의 삶> 주연 배우 중 가장 막내인데, 방민아, 심달기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거의 ‘언니~’ 이렇게 많이 부른다. ‘민아 언니’, ‘달기 언니’ 이렇게. 아니면 ‘아람아~, 강이야~’ (웃음) 가끔 장난칠 때 그렇게 많이 불렀던 것 같다.

두 배우 모두 같은 작품에서 만난 동료이자, 연기 선배이기도 하다.

맞다. 아주 짧은 순간에 집중해내는 모습, 디테일한 점까지 잡아내는… 그런 부분을 보면서 내가 아직 배울 점이 많다는 걸 느꼈다. 현장에서 임하는 자세나 태도만으로도 배울 점이 굉장히 많았다.

영화 속 2000년대 초반의 배경이 상당히 낯설었을 것 같다. 재미있는 일화나 기억에 남는 소품이 있을까.

우리 옷이 다 빈티지로 구한 것들이었다. 피팅하면서 ‘어, 이거 마음에 드는데 촬영 끝나고 가져가면 안 돼요?’ 이렇게 말하면서 장난도 치고. 내가 산 적 없는 시간을 이렇게 겪어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공중파 방영 드라마, 웹드라마, 독립영화까지 다양한 제작 환경을 경험해 봤다. 독립영화로서 <최선의 삶>의 촬영 현장은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어떻게 달랐나.

사실 독립영화는 예산이 한정적이니까 다른 영화에 비해 제작 환경이 조금 열악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더 돈독해졌던 것 같다. 원래 힘든 시간을 같이 보내면 서로 더 친해지고, 각별해진다고. 우리 팀이 약간 그랬던 것 같은데. (웃음) 다들 서로 으쌰으쌰 해주는 분위기여서. 그런 점이 다른 것 같다. 좀 더 친근한, 가족 같은 느낌? 서로를 많이 배려해주고, 연기하기 쉽게 맞춰주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트웬티 트웬티>

<트웬티 트웬티> 비하인드 영상을 봤다. 상대 배우가 대사를 하는 와중에 눈물을 감추지 못하더라. 연기할 때 감정 이입을 쉽게 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서 운다는 것 자체에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배역을 분석하고 캐릭터에 빠져들다 보니까 내가 울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그냥 눈물이 나더라. (웃음)

이입을 쉽게 하는 만큼, 촬영이 끝나면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맞다. (웃음) 내가 소영이를 끝내고 그런 후유증이 좀 크게 왔던 것 같다. 너무 소중한 촬영이었고, 아꼈던 캐릭터이기도 하고. 또 소영이의 내면이 굉장히 혼란스럽지 않나. 그렇게 여러 감정을 다 따라가려고 하다 보니까 막상 촬영이 끝났을 때, ‘나도 소영이 이제 안녕~’ 이라고 하기가 좀… 어려웠다. 내 삶의 일부였는데. 그런 소영이를 떠나보내는 게 좀 힘들더라. 시간이 좀 걸렸다.

영화 막바지에 굉장히 극적인 상황에서 소영의 컷이 끝난다. 소영은 이후로 어떤 삶을 살 것 같나.

사실 원작에는 결말이 나와 있지 않나. 그런데 나는, 소영이가 어떻게든 최선의 삶을 살아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소영이는 자신에게 있어 최선을 선택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뭐든 잘 해내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극적인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 엄청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어엿한 성인이 되지 않았을까?

한성민이 생각하는 '최선의 삶'이 궁금하다.

후회를 적게 하는 삶. 피할 수는 없으니까. 후회에 얽매여 살지 않는 것이 가장 최선의 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