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영화계 총아에서 이젠 상업 작품의 중심에 서게 됐다. 변화를 맞이하는 시기인데, 앞으로 심달기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따랐으면 하나.
사실 잘 모르겠다. 스스로 과분한 평가를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너무 안주하게 되고, 발전이 없을 것 같아서다. 또 내가 느끼기엔 이미 너무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은 것 같다. 그게 나한테는 위험한 것 같아서,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못 들을 말을 듣고 싶은 건 아니고. (웃음) 적당한 채찍과 당근이 필요한 것 같다.
본인의 개성으로 캐릭터를 물들이는 능력이 뛰어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는 다소 색이 강한 캐릭터들을 주로 만나왔다. 이제는 그 개성을 어떻게 빚어 나갈지에 대해 고민이 많을 시점일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없지 않다. 그래도, 강한 스타일의 연기를 보여줬어도, 다른 자리에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오히려 스펙트럼이 넓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선 더 유리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다.
꼭 물어봐야 할 것만 같았다. 심달기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 최선의 삶은 무엇인가.
나한테는 진짜 제일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최선을 다했냐는 물음엔 항상 자신이 없다. 최선을 다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다, 단 한 번도. 뭐랄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내가 원치 않아도 내 한계를 몇 번이고 깨면서 성취를 했냐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것이 기준이라면 나는 한 번도 '최선을 다해서' 무언가를 얻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한테 최선을 다했냐는 말은 약간 겁이 나는 말인 것 같다.
'최선'의 기준점이 높은 것 같다.
음, 그냥 정말 많은 노력을 해서 얻어 낸 성과는 있을 수 있겠지만, 진짜 죽어도 싫은 것들을 몇 번이고 견뎌낸 적은 없는 것 같다. 늘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최선을 다해왔다.
만약 10대의 심달기를 만날 수 있다면, 혹은 각자의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1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어른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어른이더라도… 모르겠다. '감히?'라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어른이 나한테 개입을 한다면 무조건 거부 반응이 있었던 것 같아서. 감히 말을 못 하겠다.
그렇다면 심달기에게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
수용적인 것? 변화에 가장 수용적인 사람이 좋은 어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