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삶을 불필요하게 비난하거나 납작하게 압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 레이즈 미 업>

처음 내 몸이 정상 컨디션이 아니라고 느꼈던 건 올해 2월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스케줄 관리에 처절하게 실패해서 범에게 쫓기는 노루가 된 심경으로 밀린 마감을 해치우고 있었다. 14일 안에 원고를 15번 마감해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 나는 “내가 또다시 스케줄 관리를 이따위로 하면 정말 사람새끼가 아니다”라고 중얼거리며 이 악물고 글을 쓰곤 했다. 한참을 글을 쓰다 보면 창밖으로는 해가, 목구멍 너머에선 신물이 올라왔다.

15개의 원고 중 12번째 원고를 붙잡고 끙끙대던 새벽, 갑자기 호흡이 가빠오며 가슴에 묵직한 흉통이 오기 시작했다. 왼쪽 팔과 손이 저릿저릿했고, 뒷골이 당겼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기에는 온라인에서 본 적 있었던 ‘심근경색 초기 증상’과 지나치게 비슷했다. 깊은 새벽 겁에 질린 나는 결국 내 발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고, 3주에 걸쳐 피 같은 돈을 써가며 각종 테스트를 받았다. 다행히도 의사는 내 심장과 혈관이 동년배 한국 남성들에 비해 건강한 편이며,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의 징후도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면 그때 가슴은 왜 그렇게 아프고 왼쪽 팔과 손은 왜 그렇게 저렸던 걸까요? 그건 환자분이 그 무렵 2주 동안 마감을 15개를 하느라 과로해서 그러셨던 게 아닐까요? 병원을 나서면서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내가 또다시 스케줄 관리를 이따위로 하면 정말 사람새끼가 아니다.

민망한 마음에 널리 얘기하진 못했지만, 그 2주의 과로가 내게 남긴 게 흉통이 전부는 아니었다. 건강한 남자라면 아침마다 겪는 생리현상이, 그 2주를 거치면서 슬그머니 사라졌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 심근경색 의심증상을 경험한 것보다, 생리현상이 사라진 것이 더 당혹스러웠다. 물론 살면서 언젠가는 발기가 잘 안 되는 나이가 될 것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그건 마치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늙고 병든다’ 같은 문장이어서, 마흔도 안 된 나이에 경험할 거란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무슨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쓴 김영민 교수도 아니고, 이 나이에 ‘언젠가는 안 서는 날도 오겠지’ 같은 생각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평소에는 이래저래 번거롭다고 생각했던 생식기의 존재는, 막상 침묵에 빠지는 순간 사람을 패닉 상태로 몰아가는 힘이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다행히 과로에서 벗어나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식사, 적당한 운동과 휴식을 취하고 나니, 날 걱정하게 만들었던 증상들은 죄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더는 가슴이 아프거나 팔이 저린 일도 없었고,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던 아침의 루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증상들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경험은 내게 세 가지 깨달음을 남겼다. 첫째, 그렇게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이다간 죽을 수도 있다. 둘째, 발기가 안 된다는 건 생각보다 박탈감이 크다. 셋째, 알아보니 생각보다 30대에 발기부전을 경험하는 남자들이 많더라. 아, 정말이지, 아직 몸이 내 마음처럼 움직일 때 건강을 챙길 일이다.

나는 그나마 30대 후반이고 일시적인 증상으로 끝났으니 망정이지,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유 레이즈 미 업>(2021)의 주인공 도용식(윤시윤)은 상황이 무척 다르다. 9급 공무원 시험을 6년째 준비하고 있는 용식의 나이는 아직 서른하나다. 변변한 수입도 없고 사회적 성취도 없는 상태여서 온갖 자격지심으로 잔뜩 위축된 용식의 삶은, 그나마 건강한 편이던 성기능조차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서 비참의 끝을 찍는다. 건강한 편이었다고 해서 그 기능을 딱히 다른 누군가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자서라도 자신을 위무할 수 있지 않았나. 그것마저 안 될 상황이 되자, 용식은 절박한 마음으로 비뇨의학과를 찾았다. 그래, 그게 얼마나 절박한 심정인지 – 불행히도 – 나도 안다. 정말이지 본의 아니게 주인공과 ‘뜻하지 않은 공감대’를 가진 나는,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아까 용식이 ‘비참의 끝을 찍’었다고 했던가, 내가? 실언이다. 거기가 비참의 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더 비참해질 일들이 남았다. 진료실에서 얼굴도 보기 전에 전립선 마사지로 먼저 인사하게 된 비뇨의학과 의사가, 알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이루다(안희연)였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서로에게 애틋하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첫사랑을, 비뇨의학과 진료실에서 엉덩이를 깐 채로 재회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겠나. 거기에서 끝난다면 그나마 낫다. 이런저런 스트레스와 중압감에 치여 잘 안 선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구질구질하게 안 풀리고 있는 제 삶도 설명해야 하지 않나. 자신을 ‘진짜 멋있던 아이’로 기억하고 있던 루다에게 차마 진실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용식은, 또 잔뜩 부풀린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시도한다. 그리곤 당연한 수순처럼 그 거짓말을 들키고, 다시 비참해진다. 드라마를 보던 나는 공감성 수치로 얼굴을 두 손에 파묻은 채 비명을 질렀다. 아아, 용식아. 대체 어쩌려고 그래, 진짜.

<유 레이즈 미 업>은, 그렇게 망가진 용식의 자존감을 세워서 어떻게든 심인성 발기부전을 치료해보려는 루다와 용식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홍보는 섹시 코미디처럼 이루어졌지만, 결국 드라마는 용식의 얼굴 위에 지금의 2030 세대가 겪는 좌절과 고통을 투사하고는, 용식을 위로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청춘을 위로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괜찮아. 남들과 다른 속도로 걸어도, 지금의 자신이 초라해 보여도, 스펙이 화려하지 않아서 남들보다 성취가 늦어도, 괜찮아. 너에겐 너만이 간직한 빛나는 장점들이 있으니까, 괜찮아. 용식의 좌절을 뜻하지 않게 공감해버린 나 또한, 작품을 보는 내내 용식에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용식과 루다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완주했지만, 다 보고 나니 용식의 아픔에 대한 공감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아쉬움은 남는다. 분명 용식처럼 가망 없는 시험을 붙잡고 매일매일 자존감이 망가지는 것을 경험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젊은 여성도 많을 텐데, <유 레이즈 미 업>은 용식과 비슷한 처지에서 고군분투 중일 젊은 여성의 삶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용식의 여성 동창들은 용식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상태에서 용식의 처지를 슬그머니 비웃고, 용식의 옛 여자친구는 오랜 시간 취업을 못 한 상태로 공무원 시험만 준비 중인 용식을 기다리지 못해 떠나가며 좌절을 안겼다. 루다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학적 지식과 돈, 헌신적인 위로로 용식을 돕는다. 젊은 남자가 여자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다른 여자를 통해 치유하며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을 보면서 찝찝함을 안 느꼈다면 거짓말이다. 남자의 좌절은 입체적으로 묘사되는데, 여자는 성녀 혹은 마녀의 도상으로 평면적인 묘사를 벗어나지 못하니까 말이다.

오늘날을 살아갈 수많은 용식의 삶을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무너진 자존감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 끝없는 경쟁에서 자신이 밀려났다는 생각에 위축된 청춘에게 용기를 주려는 마음은 선량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삶을 불필요하게 비난하거나 납작하게 압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용식도 루다도 모두 다 한 마음으로 위로해줄 작품,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거나 단순한 캐리커처로 대상화하지 않고, 서로의 구체적인 아픔을 알아보고 손을 내밀어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난 ‘뜻하지 않은 공감대’ 없이도 조금 더 기꺼운 마음으로 작품을 추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