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 <리코리쉬 피자> 예고편이 최근 공개됐다. 감독 최초의 청춘영화라 그 자체로 에너지가 상당한데, BGM으로 데이비드 보위의 'Life on Mars'까지 흘러,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기대치가 한껏 치솟았다. 보위의 음악을 사용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아래 링크는 이전에 쓴 보위의 음악들이 포함된 원고다.)


“Magic Dance”

<라비린스>

Labyrinth, 1986

70년대부터 간간이 영화에 출연한 데이비드 보위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등 80년대부터는 필모그래피를 한껏 확장해갔다. 조지 루카스가 제작하고 <머펫> 시리즈의 짐 헨슨이 연출한 뮤지컬 판타지 <라비린스>(1986)에서 보위는 주인공 사라(제니퍼 코넬리)의 이복동생을 데려간 마왕 자레드를 연기하고, 음악감독 트레버 존스와 함께 사운드트랙까지 담당했다. 뮤지컬 영화를 표방하는 만큼 음악의 비중이 상당한데, 자레드가 부하인 고블린들과 아이를 달래고자 가무를 선보이는 대목의 'Magic Dance'는 단연 그 백미다. 록과 소울을 아우르는 명프로듀서 아리프 마르딘과 합작해 만든 이 흥겨운 노래는 우는 아이는 물론 수많은 고블린들까지 웃고 춤추게 만든다.


“Life on Mars”

<브레이킹 더 웨이브>

Breaking the Waes, 1996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2004

보위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Hunky Dory>의 네 번째 트랙 'Life on Mars'는 수많은 영화에 인용되면서 명곡의 위용을 빛냈다. 이번 기획에서 소개하는 영화는 두 편이다. 우선, 라스 폰 트리에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 온갖 고난을 버텨낸 주인공 베스(에밀리 왓슨)가 결국 죽음을 맞은 후, 영화는 마지막장 '장례식'을 시작하기 전에 시냇물과 다리의 한적한 풍경을 'Life on Mars'와 함께 1분 30초 동안 비춘다. 고정된 이미지에서 변화하는 건 잔잔한 물살과 하늘의 빛 뿐이다. 점점 고조되는 곡 구조 덕분에 동적인 벅찬 감정을 나타내는 효과를 톡톡히 보여줬던 'Life on Mars'이지만, 폰 트리에는 그걸 완전히 정적인 풍경과 붙여놓음으로써 여태껏 몰랐던 'Life on Mars'의 힘을 일깨워준다. 폰 트리에는 2000년대 들어 만든 'USA 연작'(<도그빌>과 <만덜레이>)의 엔딩 크레딧에 보위의 'Young Americans'를 배치하는 편애를 보여줬다.

웨스 앤더슨의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은 점점 설곳을 잃어가는 해저 다큐멘터리스트 스티브 지소(빌 머레이)가 어느날 갑작스럽게 자신을 생물학적 아버지라며 찾아온 청년 네드(오웬 윌슨)를 마주하는 순간에 흐른다. 오프닝의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처음 만난 두 부자가 진실을 이야기 할 때 깔리고, 이윽고 스티브가 잠시 그 자리를 떠 뱃머리로 향하는 길에 'Life on Mars'의 결정타가 터지기 시작한다. 허나, 스티브를 연기하는 배우는 다름 아닌 빌 머레이다. 미처 있는지도 몰랐던 아들이 제 눈앞에 나타나는 걸 경험한 심약한 사내의 심정은 결국 빌 머레이의 무심한 표정을 통해 드러난다. 당황한 건지 그냥 아무렇지 않은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헛헛한 상황이 'Life on Mars'의 벅찬 정서에 대비를 일으키면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I’m Deranged”

<로스트 하이웨이>

Lost Highway, 1997

독보적인 이미지와 상상력으로 영원히 깨지 않을 것 같은 악몽을 구현하는 데이비드 린치의 1997년 작 <로스트 하이웨이>는 보위의 'I"m Deranged'와 함께 시작한다. 이미지는 단순하다. 칠흑과 같은 도로를 자동차 라이트에 의지해 상당한 속도로 내달리는 움직임만이 길게 이어진다. <로스트 하이웨이>에도 참여한 트렌트 레즈너의 밴드 나인 인치 나일스가 선봉에 선 장르인 인더스트리얼 록 유행을 의식한 앨범 <Outside>를 통해 발매됐던 'I"m Deranged'는 보위가 기존에 발매한 작품들에 비해 월등히 빠른 BPM의 전자음을 쏟아낸다. 어딘지 모를 도로를 질주하는 광폭한 속도와 꼭 닮았다. 'I"m Deranged'는 영화의 인트로와 더불어 아웃트로에도 배치돼 미궁에 가로막힌 듯한 인상을 완성한다.


“Warszawa”

<컨트롤>

Control, 2007

<컨트롤>은 사진작가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정평난 안톤 코빈의 영화 데뷔작이다. 70년대 후반 자신이 촬영하기도 했던 밴드 조이 디비전의 프론트맨 이안 커티스의 짧았던 생애를 영화로 옮겼다. 조이 디비전을 비롯한 포스트 펑크 신이 유행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지만, <컨트롤>이 집요하게 비추는 건, 이미 가정이 있지만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이안 커티스가 스물셋의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만드는 마음의 병이다. 보위가 베를린에서 브라이언 이노와 의기투합해 만든 걸작 <Low>에 수록된 연주곡 'Warszawa'는 커티스가 저널리스트 애닉을 처음 만나는 때에 쓰였다. 보위의 목소리 없이 몽환적인 신디사이저로 서서히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전적인 인스트루멘탈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보편적인 순간의 완벽한 사운드트랙이 됐다. 실제로 이언 커티스는 이 노래의 제목을 따 조이 디비전의 전신인 'Warsaw'를 결성한 바 있다.


“Cat People (Putting Out Fire)”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2009

평소 흠모하거나 생소했던 음악들을 예상치 못한 대목에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를 보는 미덕 중 하나다. 나치 시대의 역사를 숨막히는 서사와 텐션으로 비틀어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선 보위의 'Cat People'을 사용했다. 공포영화의 고전 <캣피플>(1942)을 80년대 초반의 섹시 스타 나스타샤 킨스키를 내세워 리메이크한 <캣피플>(1982)의 주제가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선 한스 란다 대령(크리스토퍼 왈츠)에게 일가족을 잃은 쇼사나(멜라니 로랑)이 우연한 기회로 자신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히틀러와 수많은 게슈타포가 모이는 행사를 진행하게 돼 최후의 복수를 계획하는 시퀀스에 흐른다. <캣피플>의 음악감독 조르지오 모로더가 만든 사운드에 보위가 가사를 쓰고 목소리를 보탠 노래는 (타란티노의 영화나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마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위해 만들어진 음악처럼 들린다.


“Starman”

<마션>

The Martian, 2015

사고로 화성에 불시착해 홀로 살아남은 식물학자의 이야기를 그린 <마션>. 제목마저 너무나 잘 들어맞는 'Starman'이 터져 나올 때, 많은 관객이 아마 "올 것이 왔다"고 느꼈을 것이다. 보위의 또 다른 자아 '지기 스타더스트'가 "우주의 사람들이 너희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라디오를 통해 전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는, 드디어 지구의 사람들이 마크(맷 데이먼)와 교신에 성공해 그를 구출하러 떠나는 과정을 따스하게 담아낸 4분이 넘는 시퀀스 내내 이 뮤직비디오처럼 흐른다. 이 시퀀스에 새겨진 희망의 희열은 고스란히 <마션>이 해피엔딩으로 안착하리라는 확신이 된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