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는 화려한 영상미와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영화 전체를 하나의 노래처럼 만들어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희한한 매력의 영화다. 아름다운 빛깔로 디자인된 세트와 화려한 의상, 흥이 넘치는 음악과 짜릿한 러브스토리 등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기대하는 많은 것들이 가득하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스타' 되시겠다.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출중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반감됐을지 모른다. 허영이 아니라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의 과거를 훑어보지 않을 수 없다. 라이언 고슬링의 그 동안의 활동을 돌아보며 사방에 흩뿌려놓은 매력을 7가지로 정리해봤다.
눈
아역 시절의 라이언 고슬링은 다른 미소년 동료들보다 다소 눈 코 입이 모아진 타입이라는 이유로 외모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에게 세월은 연기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노트북>, <블루 발렌타인>처럼 어렵지 않게 달달한 멜로 영화 속에서 그가 쏟아낸 눈빛은 어떤 명대사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가 최근 연기하는 캐릭터마다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라라랜드>에서는 대사도 많고 노래도 부르고 피아노도 치고 춤도 추고 종합적으로 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그의 눈빛 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영화는 별다른 기교 없이 그의 얼굴 가까이 카메라만 쓰윽 갖다대고 만다. 감독들의 이런 라이언 고슬링 눈빛 사용은 <드라이브>, <온리 갓 리브스> 등의 스타일리시한 폭력 영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질주
라이언 고슬링의 인기작으로 꼽히는 <드라이브>의 주인공 남자는 이름도 없다. 말도 없고 묵묵히 운전만 한다. 여자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질주하는 캐릭터와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주인공 루크 캐릭터도 닮은 구석이 많다. 도로 위를 누구보다 빨리 질주하는 오토바이 실력으로 아이와 여자를 지키기 위해 달리기 때문이다. 굳게 다문 입술. 마음을 알 수 없는 무표정의 눈빛. 거기에 그만의 질주 본능까지 더해지면 관객들은 숨이 멎는다.
이런 마초적인 캐릭터는 뭐랄까, 라이언 고슬링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배우 본능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한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당시 재미있는 캐스팅 비하인드가 있다. 그와 함께 몇 년 전에 이미 <블루 발렌타인>을 함께 작업한 적 있는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이 2007년 즈음, 그러니까 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에 라이언 고슬링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마음엔 담고 있지만 환상을 갖고 있는 게 뭐냐?" 그랬더니 라이언이 "오토바이를 타고 헬맷으로 위장한 다음 은행을 터는 일을 생각한 적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도주 방법까지 상상한 적이 있었는데 은행을 털고 오토바이로 도주하다가 중간에 세워놓은 트럭에 올라타 오토바이를 숨기면 수색망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데릭 감독은 그에게 "그 환상, 내가 이뤄주겠다. 감옥에도 안 가고. 그러니까 영화에 출연하자"고 대답했다고. 왜냐하면 라이언 고슬링이 설명한 그 은행 터는 장면이 그가 쓰던 시나리오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피드 쾌감에 관한 욕망이라기보다는 그가 연기했던 몇몇 캐릭터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들이 은행을 터는 범죄자의 심리와 비슷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는 배우 마음의 몫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하는 인물들)과 (욕망의) 질주는 잘 어울린다.
사랑
라이언 고슬링은 멜로 연기를 꽤 성공적으로 해왔다. 물론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죽도록 사랑하고 모든 걸 내던지다가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격정적인 감정을 터뜨리는 연기에 능하다는 말도 되겠다. <노트북>부터 <블루 발렌타인>, <드라이브>,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그리고 <라라랜드>에 이르기까지 그가 맡았던 사랑에 눈먼 남자들을 잠시 되돌아본다. 이랬다 저랬다가 아니라 다 집어던지고 뛰어드는 남자들. 그가 출연했던 영화에서 함께 연기했던 상대 배우들(산드라 블럭, 레이첼 맥아담스, 에바 멘데스)과 실제 연인 사이로 발전했던 사실만 보더라도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와 이미지가 묘하게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꽃거지
라이언 고슬링만의 영화 속 패션 스타일은 독특하다. 출연작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패션 자체가 아이콘화되어버리는 영화들의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면 <드라이브>,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블루 발렌타인> 정도의 영화들이다. 그는 말쑥하게 정장 차림으로 등장하는 <라라랜드>, <갱스터 스쿼드> 등을 포함해서 <빅쇼트>나 <킹메이커> 때에도 평범하지 않은 의상 소화력을 자랑하지만, 너저분한 옷가지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을 때 특히 돋보이는 것 같다.
거기에 더해 그 특유의 수염은 사람을 나이들어 보이게도 하면서 수더분한 인상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수염이 있는 캐릭터와 수염이 없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수염 설정에 따라 캐릭터의 성격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음악
라이언 고슬링은 어려서부터 무대에 올라 곧잘 노래하곤 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 훗날 세게적인 팝스타들이 될 친구들과 같이 노래하고 춤추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 그런데 그땐 스스로 재미를 못 느꼈는지 일찌감치 배우로 전향했다. 유튜브 등을 찾아보면 그가 어린 시절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한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모습 영상 보기
그리고 <라라랜드>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피아노 치는 장면은 실제로 그가 직접 모두 연주한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옆에서 촬영 장면을 지켜보던 가수이자 이번에 같이 영화에도 등장한 존 레전드도 깜짝 놀랐을 정도의 피아노 실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해 직접 노래도 불렀다. 이는 그가 오래 전부터 무대 위에서 노래했던 실력을 포함해서 뮤지션으로서의 활동 경력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갖게 된 배우로서의 재능이다.
라이언 고슬링은 2007년, 유튜브에 그의 자작곡을 발표하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데드 맨스 본'(Dead Man's Bones)이라는 인디 록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로테스크한 호러영화 같은 B급 정서를 좋아했던 두 사람은 음악적 성향도 비슷해서 마음이 잘 맞아 밴드를 결성하고 2011년 즈음까지 실제 북미 투어도 다녔다. 라이언 고슬링은 노래 파트와 피아노, 기타 연주를 병행했다. 라이언 고슬링이 영화에 등장해 노래하거나 연주하는 모습은 모두 실제 그가 지닌 음악적 재능에서 비롯된다.
그가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OST에 참여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리멤버 타이탄>,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블루 발렌타인> 등 영화에서 그의 노래 실력을 만나볼 수 있고 <와일드 루미스>라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에는 그가 직접 부른 3곡의 노래가 실려 있다. <라라랜드>에서도 그가 직접 부른 노래가 영화에 등장하고 OST에도 실려 있다. 바로 영화에 서너 번 등장하는 'City of Stars'라는 곡이다.
아빠
라이언 고슬링은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에서 함께 출연했던 배우 에바 멘데스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다. 영화에서 연기했던 아빠들과 더불어 그 역시 실제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아이를 갖기 전에 연기했던 영화 속 아빠들의 존재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가 연기한 많은 아빠들은 대부분 가족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걸 거는 사람들이었다.
충동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면을 가지고 있어 가족의 책임자 혹은 구성원으로서 만족스러운 역할을 못 하는 성향의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이중적으로 가족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느껴진다. <라라랜드> 촬영 때는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 아빠가 된 존 레전드와 주로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촬영장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아빠라는 존재에 실패하거나 상처 받으며 등장했던 많은 캐릭터가 라이언 고슬링의 실제 삶 덕분에 치유받는 느낌이 들곤 하는 건, 그가 정말 영화와는 반대로 좋은 아빠이기 때문이다.
응답
조금 지났지만 라이언 고슬링에 관한 워낙 유명한 이야기. 몇 년 전, 라이언 맥힌리라는 영상 제작자가 라이언 고슬링이 등장하는 영화, 인터뷰 영상 속에서 고개를 젖히거나 인상 쓰거나 싫어하는 제스처를 보이는 장면을 골라 플레이한 다음, 시리얼이 담긴 숟가락을 화면에 갖다 대는 '라이언 고슬링은 시리얼을 안 먹는다'(Ryan Gosling won't eat his cereal)라는 웃긴 동영상을 오랫동안 만들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라이언 맥힌리는 암 투병 중이었다. 그가 세상을 뜨고 얼마 후, 사람들이 라이언 고슬링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가 라이언 맥힌리를 추모하는 영상을 제작해 SNS에 공유했다. 그리고 라이언 맥힌리와 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했던 일(관련 기사)이 있었다.
또 전세계 네티즌들의 짤방 놀이터 '텀블러'를 시작으로, 라이언 고슬링의 사진에 "HEY GIRL"이란 제목을 붙여 재치있는 문구를 삽입하는 일종의 놀이가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그 시작은 여기로 추정된다.) 물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문구가 적힌 사진 내용 중에는 남성성을 희화하는 식의 표현이 많다. 그런 영향에서인지는 몰라도 또 누군가 라이언 고슬링을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며 놀이를 확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블루 발렌타인> 개봉 당시 라이언 고슬링은 언젠가 영화에서 '헤이 걸'과 연관된 영화 대사를 꼭 한 번 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그 스스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이 없다"고도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팬들의 사사로운 부름에도 섬세하게 응답하며 그 역시 마찬가지로 이 모든 주목을 즐기는 중이다.
이상 7가지 매력만 가지고 라이언 고슬링의 전부를 말했다고 할 수는 없다. 이밖에 미처 알아내지 못한 그의 모든 매력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현재 공개된 그의 차기작은 테렌스 맬릭 감독의 <웨이트리스>와 드니 빌뇌브 감독의 차기작 <블레이드 러너 2049>다. 이제 거장 감독들과 함께하는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는 중이다.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재밌으셨나요? 내 손 안의 모바일 영화매거진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더 많은 영화 콘텐츠를 매일 받아볼 수 있어요. 설정법이 궁금하다면 아래 배너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