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정치란 뭘까요?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원칙을 타협하고 정무적 판단을 긍정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정치가 뭐길래?!”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 이하 <이상청>)는 YS 시절부터 ‘문광부’를 지켜왔던 문화체육관광부 최수종 기획조정실장(정승길)의 외마디 외침으로 시작한다. 행안부나 기재부, 법무부처럼 정치적인 논쟁에 휘말리기 좋은 업무가 주무인 부처도 아닌데, 새로 장관이 올 때마다 정치 논리에 따라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문체부의 나날이 너무 고단한 탓이다. 문체부 직원은 아니지만, 최수종 실장의 외침을 들은 나도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게, 도대체 정치란 뭘까? <이상청>은 그 질문을 충실하게 마주 보기 위해 먼 길을 가는 작품이다.
올림픽 사격 메달리스트인 국민영웅 출신의 이정은(김성령)은 원래 문체부 장관이 될 법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난 총선 때 보수야당의 공천을 받고 국회에 입성하기는 했으나, 당은 그를 지원해주는 대신 거수기처럼 써먹었고 이번 총선에선 공천도 주지 않았다. 그가 추진했던 체육계 성폭력 피해자 구제 관련 법안 또한 당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사장됐다. 야인으로 돌아와 그냥 평화롭게 살아가는가 했던 정은의 삶은, 전임 문체부 장관 민철우(김인우)가 불미스러운 화상회의 사고를 치고는 사퇴하면서 다시 정치적 격랑에 휘말린다.
“저쪽은 한 명 줄고 우리 편은 한 명 느는 거니까.” 청와대 정무수석 엄대협(허정도)는 대통령 임기 말에 터진 불미스러운 사고를 파격적인 인사로 덮겠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셈법 끝에 정은을 문체부 장관 자리에 추천한다. 자신들의 대선 공약이었던 ‘문화예술체육계 범죄 전담 수사처 신설’과 정은이 의원 시절 추진했던 ‘체육계 성폭력 피해자 구제 관련 법안 입법’은 그 맥이 같으며, 정은이 이를 해내면 임기 말까지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정권의 공, 해내지 못하면 장관 개인의 역량 문제로 미루기에 적당하다고. 야당 출신이니 임명 동의 받기도 편할테고, 여야를 뛰어넘은 파격인사라는 화제성도 보장되어 있고, 초선밖에 못 했으니 자기 세력을 불려서 대선판에 기웃거릴 리도 없다고. 적당히 앉혀 놓고 책임을 미루기 딱 좋은 사람. 청와대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장관감도 없다. 정은은 그렇게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장관 자리에 오른다.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임명된 사람이니, 장관의 노력에 대한 다른 이들의 호응 또한 지극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정은은 진심으로 문화예술체육계 범죄 전담 수사처, 줄여서 ‘체수처’ 신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엄수석은 말로만 늘 응원해준다고 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건 별로 없어 보이고, 기재부에서 넘어온 정책보좌관 서도원(양현민)은 체수처 설립을 위한 자문단 출범식 행사를 잘 준비해서 자기 이력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급하게 자문위원장으로 섭외한 정은의 정적이자 보수야당 소속 4선 중진 여성의원 차정원(배해선)은, 출범식 당일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하는 것으로 정은을 궁지로 몰아간다. 다들 자기 정치하는 게 바빠서, 대통령 임기 다 끝나가는 시점에 들어온 실권도 없는 문체부 장관의 의욕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딱히 실속도 없는 일에 힘 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 정치가 뭐길래 이러는 걸까? 체육계 후배들이 부당한 일을 당하며 훈련받는 일이 없도록 해주고 싶었던 정은은, 그 진심이 정치 논리로 가로막힐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청>은 “정치 나빠, 진심 좋아” 같은 뻔하고 단순한 이분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정은은 자신이 선수 시절 경험했던 개인적인 서사들을 한껏 활용해 듣는 이들을 사로잡는 정치 퍼포먼스를 펼침으로써 체수처를 둘러 싼 위기에서 벗어난다. 정치인 개인의 캐릭터를 활용한 개인기를 이상적인 정치라 말할 수는 없다. 특히나 그게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두기 위한 과장으로 점철된 개인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일이 언제나 이상적인 방식으로만 수행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숭고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물밑에서 벌이는, 차마 웃지 못할 온갖 정치적 술수. <이상청>은 정치인들을 악마화하는 쉬운 정치혐오로 빠지는 대신, 현실 정치의 빛과 필연적인 어둠을 모두 바라보며 묻는다. “도대체 정치란 뭘까요?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원칙을 타협하고 정무적 판단을 긍정할 수 있을까요?”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보는 건 기묘한 체험이다. 정책에 관한 논의는 좀처럼 안 보이고, 서로를 향한 의혹제기와 “저 사람 당선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분노만 잔뜩 부각된 이번 대선은 유달리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정치하는 놈들 다 똑같다’는 쉬운 정치혐오로 빠지는 대신, 정치가 우리 마음 속에 심어준 이 깊은 피로와 분노를 동력 삼아 우리도 <이상청>의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과연 정치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타협하고 긍정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저마다 자신의 지지후보에게, 지지정당에게, 상대후보에게, 적대정당에게, 우리가 뽑은 대표자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계기로 삼는다면, 지금 느끼는 이 고통도 헛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