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좋게 방영을 시작했던 MBC <제5공화국>(2005)은, 정작 체육관 선거로 전두환(이덕화)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기점으로 빠른 속도로 힘을 잃었다. 원래 50부작으로 계획되었던 드라마는 41회라는 어정쩡한 회차만 채우고 막을 내렸고, 작품이 종영할 무렵엔 사람들은 경쟁사인 KBS가 선보인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2005)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그럴 만도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전두환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구석은 없다. 그런데 <제5공화국>에서 전두환 역할을 맡은 이덕화의 열연은, 뜻하지 않게 온라인 상에서 전두환에 대한 재평가의 싹을 내렸다. 이덕화 특유의 카리스마 있는 탁성으로 그려낸 전두환은, 자기 사람을 잘 챙기고 농담을 좋아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호쾌하게 담아낸 인물이었다. 작품 전체의 방향은 분명 그게 아니었다. <제5공화국>은 전두환이 군 내 사조직을 키워 군 기강을 문란케 하고, 군사반란을 일으켜 헌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일어난 광주의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했으며, 탐욕에 눈이 멀어 수많은 민주주의자들을 억압하고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조성한 인물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덕화가 두 눈에 힘을 가득 실어 화면을 향해 부릅뜨면, 그게 ‘사나이답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하나 둘 고개를 들었다. 심지어 자신이 연기한 배역인 전두환에 대해 지나치게 애착이 있어 보였던 이덕화조차, 이건 아닌데 싶어 “내가 뭘 잘못 하고 있나” 의심할 정도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새삼스레 전두환 팬카페가 화제가 됐는데, 팬카페 회원들은 그 수가 충분히 늘어나면 전두환의 역사적 사면 복권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하겠다는 말로 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다. 5공 인사들로부터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항의를 받고, 시민들에게는 전두환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니, 예상했던 만큼 이야기를 못 풀어내고 멈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였을까? <제5공화국>은 뒤로 갈수록 중요한 순간들을 도망치듯 회피한다. 전두환이 실권을 장악한 12·12 군사쿠데타는 총 8회, 그를 저지하려던 시민들의 죽음이 있었던 5·18 광주항쟁은 총 5회를 다뤘던 <제5공화국>은, 정권 몰락의 기폭제가 되었던 6월 항쟁은 단 한 회 차만 다뤘다. 마지막회의 속도는 압도적이다. 마지막회는 전두환이 후계자인 노태우(서인석)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나온 뒤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 자격으로 국정에 개입하려고 하는 모습과, 어떻게든 5공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던 노태우의 거절로 시작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전경환(오현섭)의 구속, 백담사로의 도피, 1989년 5공 청문회, 1995년 ‘골목성명’ 발표와 구속, 사형 선고, 1997년 12월 20일 사면복권으로 이어지는 10여년은, 보는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 만큼 주마간산으로 지나간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교도소 문을 나서 왕년의 심복들에게 환영을 받은 전두환은, 교도소 생활은 어땠는지 묻는 기자에게 웃으며 말한다. “교도소 생활? 당신은 말이요, 평생 여기 들어갈 생각을 하지 마시오! 하하하하” 드라마는 파안대소하는 전두환과 세간의 시선을 피하며 차에 올라타는 노태우의 얼굴을 분할화면으로 잡아 프리즈프레임으로 멈춘다. 41회를 달려온 드라마가 멈추는 자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어정쩡한 대목, <제5공화국>은 그 말도 안 되는 안티클라이막스의 자리에서 멈춘다.
제작진이 왜 이렇게 어정쩡한 자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제작진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게 기묘하게 제5공화국 청산과정과 닮아 있다는 점은 슬픈 우연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전두환에게는 역사적으로도 이렇다 할 클라이막스가 없다. 이승만은 그의 독재에 반기를 든 시민들의 투쟁으로 하야(下野)해, 남은 평생을 망명지에서 귀국을 거절당하기를 반복하다가 죽었다. 박정희는 그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영남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의 열기 속에서 강경 진압을 이야기하다가, 자신이 총애하던 정치적 심복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
그러나 전두환은, 전두환에게만큼은 그런 클라이막스가 없었다. 그는 형식적으로나마 “평화적 정부이양”을 하고 내려갔고, 그렇게 권력을 넘겨준 친구를 뒤에서 조종해 막후실세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친구에게 배신당했다’며 분통터져 했지만, 그렇다고 그 대가를 대단히 크게 치른 것도 아니었다. 산 좋고 물 맑은 백담사에서 2년 머문 것? 1995년 구속 수감되어 무기징역형을 받고 잠시 복역하다가 1997년 말 사면 복권된 것? 전재산이 29만원 밖에 없어서 추징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면서 툭하면 골프 라운딩을 하고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한 것? 광주항쟁을 ‘폭동’이라고 부르고 거짓주장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욕보인 것? 자택에서의 자연사? 여기에 어떤 클라이막스가 있는가? 어쩌면 <제5공화국>이 안티클라이막스의 자리에서 멈춘 건 불가항력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전두환이 죽은 날, 나는 드라마를 안 본 사람조차도 한 번은 들어봤을 <제5공화국>의 주제가 ‘데우스 논 볼트’(Deus Non Vult)를 생각한다. 저 어정쩡한 안티클라이막스의 마지막 장면에 울려퍼지던 가사, “인간은 역사를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Homines possunt historiam condonare. Sed Deus non vult)를 생각한다. 신만이 아니라, 인간 또한 용서할 수 없는 역사를 용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용서하면 안 되는 것을 섣불리 용서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이미 벌어진 안티클라이막스와 싸울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무기일 것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