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나잇 인 소호>

지난 10월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신작 판타지 호러 <라스트 나잇 인 소호>가 12월 1일 극장을 찾았다. 영화는 매일 밤 꿈에서 1960년대 런던의 매혹적인 가수 샌디(안야 테일러 조이)를 지켜보던 엘리(토마신 맥켄지)가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해외에서 먼저 개봉하고 스타일리시한 호러라는 평을 받고 있다. 부산의 기억을 되살려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강간 문화 폭로하는 여성 서사

근교에 살던 디자이너 꿈나무 엘리는 런던 소호에 있는 명문 패션학교에 합격한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그의 황금기는 1960년대다. 옷도 음악도 그때의 것을 사랑하는 시골 소녀의 도시 생활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스토킹하는 택시기사에, 앞뒤가 다른 기숙사 룸메이트, 최신 유행을 좇는 동급생들은 엘리를 괴짜 취급한다. 학교가 버거운 그는 기숙사를 벗어나 작은 아파트를 얻는다. 보통 그 나이 또래라면 낯설 낡은 아파트지만 엘리에겐 딱이다. 매트리스에서는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밤이면 네온사인 빛이 불 꺼진 방을 채운다. 이 이상한 새 보금자리에서의 첫날. 엘리는 꿈속에서 1960년대 런던 거리를 헤매다가, 유명한 가수가 되기를 꿈꾸는 샌디를 만나고 그의 성장 서사에 깊이 빠져든다. 엘리는 샌디처럼 입고 꾸몄다. 과몰입한 시리즈의 다음 에피소드를 기다리듯 매일밤 다음 꿈을 기다리며 잠을 청했고, 샌디의 일이 잘 풀리면 엘리의 일도 잘 풀렸다. 하지만 반대도 같았다. 샌디를 무대로 이끌어줄 줄 알았던 나이트클럽 매니저가 그를 성접대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목격하면, 엘리의 이입도 파사삭 부서진다. 영화는 샌디를 통해 스타가 탄생하고 활용되는 쇼 비즈니스계의 어두운 속성을 보여준다. 한편 꿈 끝에서 뜻밖의 살인사건을 마주한 엘리는 초현실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눈뜬 채로 악몽을 꾸게 된다.


플레이리스트만 건져도 본전,

귀 즐거워지는 60년대 록

4분에 한 번꼴로 새 음악이 쏟아져나오던 감독의 전작 <베이비 드라이버>는 환상적인 플레이리스트를 자랑했다. 라이트는 <라스트 나잇 인 소호>에서도 음악 활용에 대한 그의 탁월한 기량을 마구 뽐냈다. 워커 브라더스(The Walker Brothers), 킨크스(The Kinks), 더 후(The Who) 등 당대 소호를 풍미한 뮤지션들의 곡이 적재적소에 쓰였다. 오프닝 속 엘리의 원맨쇼, 샌디가 오디션을 위해 부른 ‘다운타운’(Downtown) 무대 등 뮤지컬을 가미한 장면은 영화의 호흡에 리듬감을 더한다. 참고로 <베이비 드라이버>의 제목이 그랬듯,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역시 동명의 노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쓴 것이다. 라이트가 쿠엔틴 타란티노에게서 추천받아 즐겨 듣게 됐던, 록 밴드 데이브 디, 도지, 비키, 믹 앤 티치(Dave Dee, Dozy, Beaky, Mick & Tich)가 부른 곡이다. 주인공의 이름 엘로이즈도 영국 가수 배리 라이언(Barry Ryan)이 부른 삽입곡의 제목과 같다. 라이트는 직접 모은 노래들을 들으며 각본 작업을 했는데, 배우들이 대본을 읽을 때 들을 플레이리스트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알아주는 음악 덕후 감독의 신작이, 귀가 즐거워지는 사운드트랙만으로 경험할 가치를 가지는 이유다.


소호의 네온사인으로 감싼 감각적 연출,

스타일리시한 호러 (feat. 정정훈 촬영감독)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1960년대 런던 사교계의 중심지 소호에 보내는 에드가 라이트의 러브레터다. 감독은 휘황하게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밤거리를 수놓던 그 시절의 소호를 그대로 스크린에 소환했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을 감각적으로 담은 연출은, 음악과 함께 서사의 빈틈을 충분히 메운다. 비주얼에 특히 공들인 게 매 순간 느껴지는 이 영화는 정정훈 촬영감독이 찍었다. <올드보이>부터 <아가씨>까지 박찬욱과 오래 협업한 그는 <그것>, <커런트워> 등에 참여하며 할리우드에서 자리 잡은 지 오래, 올 초에는 디즈니+ 신작 <스타워즈> TV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 합류를 확정한 바 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가 반영(反映)을 통해

혼란을 비주얼화하는 법

원색의 활용과 함께 <라스트 나잇 인 소호>의 핵심 장치로 쓰인 것이 반영이다. 거울이 1960년대와 2020년대를 잇는 주요 매개로 쓰이는데, 거울에 비친 엘리와 샌디의 반영은 둘을 동일시시킨다. 두 캐릭터의 정신 착란 역시 현란한 비주얼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표현했으니, 이를 염두에 두고 감상해보자.


할리우드의 미래

토마신 맥켄지, 안야 테일러 조이

두 대세 배우 토마신 맥켄지와 안야 테일러 조이가 함께했다. <조조 래빗>으로 국내에도 얼굴을 알린 맥켄지가 주인공 엘리를 연기했다. 올여름 M. 나이트 샤말란의 공포 영화 <올드>에서 이미 입증한 것처럼, 맥켄지는 보는 이를 곧바로 몰입시키는 선한 얼굴에 공포를 머금은 눈빛을 떠올리며, 두려움과 광기 사이를 오가는 엘리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2020년 화제작 중의 화제작 <퀸스 갬빗>에 출연하며 여러 시상식에서 TV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휩쓴 안야 테일러 조이가 샌디를 연기했다. 티모시 샬라메, 플로렌스 퓨 등과 함께 할리우드를 이끌어갈 배우로 꼽히는 그를 알린 작품은 첫 스크린 주연작 <더 위치>이었다. 라이트가 그를 알아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속 테일러 조이의 연기를 인상 깊게 본 감독은 스토리가 완성되기도 전에 그를 엘리 역에 낙점했다. 이후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제작 착수까지 3년이 흘렀고, 감독과 각본가는 그새 빠르게 성장한 테일러 조이가 무대를 장악할 줄 아는 가수 샌디와 더 어울릴 거라 판단헤 역할을 바꿨다. 클래식하면서도 오묘한 분위기로 관객을 홀리던 테일러 조이의 샌디가, 비극에 좌절하고 초연해지는 과정을 영화는 다루는 가운데. 그의 극적인 서사에 설득력을 실은 건 배우 덕이겠다. 두 배우 외에도 <닥터 후> <더 크라운>의 맷 스미스, <미 비포 유> 샘 크라플린 등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으며, 실제로 1960년대 할리우드를 겪었던 테렌스 스탬프, 다이아나 리그와 같은 베테랑 배우들이 영화를 빛냈다.


장르물 초심자도 볼 수 있는

심리 스릴러 호러

마지막으로 언급할 관전 포인트는,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고어 요소를 가진 본격 잔인 호러라기보다는 팽팽한 심리 스릴러 호러에 가깝다는 점이다. 감독은 시간 여행 판타지, 미스터리, 슬래셔에 로맨스까지 곁들인 복합장르를 동원해 엘리와 샌디의 악몽을 꽤 재기발랄하게 풀어냈다. 호러라는 장르 분류만 보고 겁먹을 필요 없다. 에드가 라이트가 만든 경쾌한 서스펜스의 세계를 체험해 보자.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