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같은 영화와 괴물 같은 영화. 올해 칸국제영화제부터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전 세계 곳곳의 영화제에 초청되며 평단에게 당혹스러운 반가움과 충격을 전한 두 작품이 나란히 12월 국내 극장가를 찾았다. 강렬한 이미지와 가차 없는 수위,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로 관객을 홀리는 <베네데타>와 <티탄>은 새로운 영화 관람을 원했던 이들이라면 놓치기 아까울 2021년의 문제작이다. 고정된 상식을 깨고 새로운 범주로 넘어서길 두려워하지 않는 파격의 두 영화, <베네데타>와 <티탄>의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어떤 이야기?

<베네데타>

17세기, 주님의 신부라고 주장해 산골 소녀에서 수녀원 원장까지 된 베네데타(비르지니 에피라). “그리스도와 심장을 교환하고 신과 결혼하는 환영에 빠졌다”고 주장한 베네데타는 신과 소통하고 특별한 가호를 받는 이로 추앙받으며 30살의 나이로 수녀원장에 오른다. 그녀의 삶 이면에 비밀이 있다면 룸메이트인 바르톨로메아(다프네 파타키아)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와 사랑을 나눈 사실이 밝혀지며 베네데타는 한순간에 불경한 창녀로 매도된다.


<티탄>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뇌에 티타늄을 심은 알렉시아(아가트 루셀). 티탄이 뇌의 일부가 된 이후, 인간보다 자동차에 유대감과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 그. 모터쇼의 스트립 댄서로 일하며 자동차와 빈틈없는 사랑을 나누던 알렉시아는 어느 날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남자로 신분을 위장하고 지내다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고 있다는 소방관을 만난다.


한계 없는 수위, 한계 없는 장르

<베네데타>

여성 간의 사랑이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던 17세기. 베네데타는 온몸으로 자신을 유혹하는 바르톨로메아를 밀어내려 애쓰지만, 결국 그와의 관계를 허락하는 자신 안의 예수를 믿으며 불같은 사랑에 제 몸을 던진다. 가장 성스러운 성역의 공간에서 일어난 세기의 성 스캔들을 다룬 <베네데타>는 자신의 관점을 지키며 신에 대한 믿음을 행하는 베네데타를 통해, 각각의 관점에 따라 믿음과 금기는 한 끗 차이라는 양면성을 선보인다. 신에 대한 믿음보단 정치에 대한 믿음이 팽배한 공간으로 변질된 수도원, 남성 중심 사회에서 권력을 쟁취한 여성의 이야기로 확장된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개봉 전부터 파격의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베네데타>는 베네데타와 바르톨로메아가 성적인 쾌락을 위해 신을 상징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이용하는 등 충격적인 수위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 행위를 두고 신성모독이라 일컫는 이들을 향해 폴 버호벤 감독은 바보 같다고 지적했다. 알고 보면 이 모든 게 실존 기록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 <베네데타>는 17세기 이탈리아의 레즈비언 수녀, 베네데타의 삶을 기록한 역사학자 주디스 C. 브라운의 역사서 <수녀원 스캔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에 폴 버호벤 감독과 데이비드 버크 작가의 각색을 더한 작품이다.


<티탄>

<기생충>을 이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의 트로피를 품에 안은 영화, 바로 <티탄>이다. 제인 캠피온을 이어선 두 번째, 단독으론 최초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이 된 줄리아 뒤쿠르노는 무대 위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괴물성은 규범이라는 벽을 밀어내는 무기이자 힘이다. 괴물들을 받아들여 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한다”

그의 말처럼 모든 경계를 무너뜨린 <티탄>은 성별이 유동적으로 전환되는 젠더인 젠더플루이드, 자동차와의 사랑 등 그간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본 적 없었던 신선한 교배를 선보인다. 슬래셔, 스릴러, 호러, SF, 로맨스, 가족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를 유연하게 오가고, 알렉시아 역시 극의 흐름에 따라 모터쇼의 스트립 댄서였다가, 살인범이 되고, 도망치는 남자가 되었다가, 누군가 잃어버린 10대 소년이 되기도 한다. 거침없이 흔들리는 자동차와 치솟는 불꽃, 강철과 피. 강렬한 이미지로 독특한 무드를 완성해낸 <티탄>은 관객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의 이야기까지 담아내 기이한 감동을 전해내는, ‘가장 급진적이고 거칠며 섹시한 영화’다.


유럽의 신·구 거장

<베네데타>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베네데타>를 필수 관람 리스트에 올린 관객이 있었을 터. <아그네스의 피> <원초적 본능> <쇼걸> <엘르>에 이르기까지, 완벽히 파악할 수 없어 더 매혹적인 문제적 여성 캐릭터들로 필모그래피를 수놓았던 폴 버호벤 감독이 <베네데타>의 연출을 맡았다. 성녀와 악녀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베네데타는 폴 버호벤이 탄생시킨 문제적 여성 캐릭터의 계보를 이어간다.


<티탄>

<티탄>은 줄리아 뒤쿠르노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연출작이다. 1983년생인 그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감독들 중 가장 젊은 나이로도 주목을 받았다. <티탄> 직전 선보인 그의 장편 연출 데뷔작은 <로우>. 해외 상영 당시 일부 관객이 응급실에 실려가 상영관 앞에 앰뷸런스가 대기했다는 일화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데뷔부터 그는 파격과 충격의 수식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줄리아 뒤쿠르노는 관습을 깨는 시도로 이제껏 본 적 없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내왔다. 단 두 번의 장편 연출 경험으로 황금종려상을 안은 그는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감독 중 하나가 됐다.


대배우와 뉴페이스

(왼쪽부터) 다프네 파타키아, 비르지니 에피라, 샬롯 램플링

<베네데타>

최근 프랑스 영화를 즐겨 봤던 이들이라면 비르지니 에피라가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임을 알고 있을 터. <시빌> <수영장으로 간 남자들> <업 포 러브> 등 작품의 사이즈나 장르에 개의치 않고 폭넓은 연기를 선보여왔던 비르지니 에피라가 믿음을 등에 업고 기행을 벌이는 문제적 인물 베네데타를 연기하며 필모그래피에 강렬한 한 획을 긋는 데 성공했다. 그와 함께 베니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샬롯 램플링이 베네데타 이전의 수녀 원장을 연기하며 작품에 묵직함을 더했다. 이에 새로움을 불어넣은 건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인 배우 다프네 파타키아다. 그는 베네테다와 도발적인 로맨스를 선보이는 바르톨로메아를 연기했다.


(왼쪽부터) 아가트 루셀, 가렌스 마릴러, 뱅상 랭동

<티탄>

<티탄> 역시 영화계를 대표하는 대형 배우와 뉴페이스 신인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영화다. 알렉시아를 연기한 아가트 루셀은 <티탄>으로 장편 필모그래피의 첫 줄을 메운 신인 배우다.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는 알렉시아의 기묘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낯선 얼굴의 신인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의도에 따라, 아가트 루셀은 파격적인 비주얼과 힘 있는 눈빛으로 관객을 압도시키며 극에 예측 불허의 긴장을 불어넣었다. 그와 호흡을 맞춘 배우는 <아버지의 초상>으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뱅상 랭동이다. 오랜 시간 실종된 아들을 찾아 헤맨 아버지의 외로움을 표정과 눈빛만으로 담아낸 그가 후반부 극의 정서적 깊이감을 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우>의 주역, 그리고 그 이전 단편영화에서부터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뮤즈로 활약해왔던 가렌스 마릴러도 합류했다. <로우>를 따라 이번 작품에서의 배역명 역시 쥐스틴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