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 앨리>

크리처 장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크리처 없는 영화. 네오 누아르 <나이트메어 앨리>(2021)가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어린 시절 집에 불을 지르고 줄곧 떠돌이 생활을 해온 스탠(브래들리 쿠퍼)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북미 공개를 앞두고 영화를 만든 이들과 화상 기자회견을 가졌다. 마일스 데일 프로듀서, 타마라 데버렐 프로덕션 디자이너, 단 라우스첸 촬영감독, 네이단 존스 음악감독, 타마라 데버렐 프로덕션 디자이너 등 핵심 제작자 5명으로부터 들은 <나이트메어 앨리> 제작 뒷이야기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인터뷰를 전한다. 출연진 윌렘 대포, 루니 마라, 리차드 젠킨스, 데이빗 스트라탄과의 인터뷰는 링크에서 확인하길. 영화는 2022년 국내 개봉 예정이다.


1. 뜻밖의 휴식기: 마일스 데일 프로듀서

영화는 스탠이 카니발에서 지내던 시절과 2년 후의 도시살이로 나뉜다. 제작진은 2020년 1월 촬영을 시작해,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뒷부분을 먼저 담았다. 스탠의 거짓말 탐지기 장면을 찍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팬데믹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브래들리와 기예르모와 제작사와 오래 상의했다. 점심시간에 촬영을 멈추고 얘기하기 시작해서, 공식적으로 촬영 중단을 발표한 게 자정 즈음이었다.” 프로듀서 마일스 데일리의 말이다.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몰랐다. 몇 주가, 몇 달이 될지 몰랐지만, 안전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그동안 제작진은 어떻게 안전한 환경에서 촬영을 마무리할지 고민하고, 각본을 다듬고, 촬영분을 편집했다. 4월에 예정됐던 카니발 장면을 9월에 마침내 찍기 시작했고, <나이트메어 앨리>는 그해 12월 무사히 크랭크업했다.

2. 아름답고 저주받은 카니발: 타마라 데버렐 프로덕션 디자이너

델 토로는 매혹적인 카니발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했다. 감독의 단골 촬영지인 토론토 근교, 마컴에 있는 버려진 놀이공원은 유랑극단 ‘열 가지 쇼’의 터전으로 거듭났다. 감독과 프로덕션 디자이너 타마라 데버렐은, 또 하나의 캐릭터와도 같은 이 카니발 전체를 직접 설계했다. “텐트는 몇 각형으로 만들어 어떻게 배치할 거고, 어디에 골목을 끼워 넣을 것인지부터 시작했다. 사이드 쇼를 장식할 작은 장난감을 만들었는데, 그걸 어디에 이용하면 좋을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고민해야 했다. 배너는 프레드 존슨이라는 저명한 서커스 배너 아티스트의 작품을 참고하기도, 복제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작업이었다.”(타마라 데버렐)

3. 선명한 누아르: 단 라우스첸 촬영감독

<미믹>(1997), <크림슨 피크>(2015),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이하 <셰이프 오브 워터>)에 이어 네 번째로 협업한 단 라우스첸이 촬영을 맡았다. 델 토로는 전형적이고 오래된 누아르가 아닌 21세기형 스릴러를 만들고 싶어 했다. 무작정 칙칙한 색이 아닌 강렬하고 선명한 컬러팔레트를 원했다. 감독과 촬영감독은 암울한 이야기에 펄프 픽션 톤의 생생함을 입혔다. 라우스첸은 촬영을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으로 카니발 전경을 훑는 오프닝 크레인숏을 꼽았는데. 이 장면은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올드스쿨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다. 그는 “비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300피트(90m) 높이의 대형 크레인으로 촬영했다”며 뒷이야기를 전했다. “제작진이 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만, 덕분에 비에 흠뻑 젖어 스산한 분위기가 장면에 그대로 실렸다”고 덧붙였다.

4.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를 대신한: 네이단 존슨 음악감독

<셰이프 오브 워터>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감독과 재회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스케줄 문제로 하차했다. 그의 빈자리는 <나이브스 아웃>(2019)의 음악을 만든 네이단 존슨이 채웠다. (참고로 네이단 존슨은 <나이브스 아웃>을 감독한 라이언 존슨의 동생이다.) 필름 누아르 음악의 거장으로 아돌프 도이치, 제리 골드스미스 등이 있지만, 존슨은 기존 누아르 음악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그는 “장르 자체보다 캐릭터에 집중해 <나이트메어 앨리>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델 토로가 원한 바이기도 했다. 스탠, 몰리, 릴리스를 표현하는 네 개의 메인 테마가 영화를 감싸는 한편, 혼자였던 남자의 외로움을 전하던 피아노 솔로가, 도시로 간 남자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변주되는 것이 눈에 띈다.

5. 따뜻한 넝마 vs 차가운 수트: 루이스 시쿠에이라 의상감독

<나이틑메어 앨리>에는 총 242벌이 동원됐다. 신발, 장갑, 모자 등 액세서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코스튬을 손수 만든 루이스 시쿠에이라의 작품이다. 영화 속 다른 장치들이 그랬듯 의상도 카니발과 도시 두 세계의 대비를 부각했다. “따뜻한 지구 색으로 가득한 카니발과 달리 도시 속 글래머룩, 하이패션은 차가운 단색을 한다.” 스탠은 불운한 떠돌이에서 유랑단원으로, 부유한 쇼맨으로, 그리고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는 격변을 겪는 인물이다. 시쿠에이라는 “수트의 핏과 드레이프를 넣는 방식에도 차이를 둠으로써, 옷이 힘 없는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스토리텔링을 돕길 바랐다”고 했다. 졸부인 스탠의 옷과, 그의 출신이 전혀 다른 또 한 명의 도시 남자, 보수적인 엘리트 그린들(리차드 젠킨스)의 옷에 미묘한 차이를 두는 세심함도 발휘했다. 스탠의 수트는 그린들의 정석적인 수트에 비해 재기발랄하다. 누아르 영화는 종종 조명을 핵심 장치로 이용한다. 의상감독은 이를 고려해 “빛을 잘 반영할 재질의 천을 세계 곳곳에서 공수해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누아르, 도덕성에 대한 날 것의 질문을 던지는 장르

기예르모 델 토로

어떻게 누아르에 도전하게 되었나.

어린 시절부터 호러, 판타지, 누아르 영화가 만들고 싶었다. 내 첫사랑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부패한 경찰에 관한 단편 영화를 만들며 자랐다. 누아르 문학에 매료됐다. 제임스 M. 케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레이먼드 챈들러, 코넬 울리치,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와 같은 소설가들을 사랑했다. 이탈리아 네오누아르 작가 마시모 카를로토, 멕시코 작가 파코 이그나시오 타이보 등 좋아하는 작품이 너무 많다. 호러가 그렇듯 누아르는 정상 혹은 보통이라는 가식의 포장을 뜯어내고, 도덕성에 대한 날 것의 질문을 던지는 장르다. 누아르는 우화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를 담는다. 로버트 미첨이 나오는 누아르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흔이 있고, 봅 라펠슨 감독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81)에는 공황기의 불안한 기운이 녹아 있다. 항상 당대를 예민하게 반영해내는 이 장르를 사랑한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관중을 환상에 빠뜨려 먹고사는 야심가 스탠의 이야기다. 관객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아티스트로서 스탠에게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했나.

스탠은 스토리텔러고 나도 스토리텔러라서, 각본을 쓰면서 스탠에게 했던 모든 질문을 나에게도 했다. 이 문제에 관해 수십 년 동안 자문했고 이해하려 애썼다. 성공은 괴장히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로서 나는, 성공은 곧 망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게 되었다. 사람들이 내 일에 찬사를 보내느냐가 아니라, 나를 표현한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커리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에 스스로 솔직하고 충실해지는 게 중요한 거다. 이를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만 일으킬 뿐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모든 것을 잃기 직전의 인물을 그린다. 스탠은 거짓투성이인 사람이다. 진실이 없는 그는 언제나 들킬 위험 속에 산다. 나의 어떤 부분은 몰리 같고, 또 어떤 부분은 그린들 같다. 피트를 좀 많이 닮은 것 같다.

당신은 상징적인 디테일로 프레임을 채우기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 점에 신경 썼나.

그렇기도 아니기도 하다. 나는 57살이다.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천국에서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가장 안 좋은 태도가 “이게 내 방식”이라며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거다. 디테일에 신경 쓴 점을 먼저 말해보자면, 스탠이 카니발을 떠나 버팔로로 가면서 빨강색이 퇴장한다. 도시 속에 빨간 것이라고는 몰리의 드레스와 릴리스의 입술, 구세군, 그리고 피가 전부다. 아, 엘리베이터의 전구도 있지. 영화를 몇 번을 돌려 봐도 이외의 빨간 건 못 찾을 거다.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나는 사소한 부분을 챙기고 다듬는다기보다, 온전한 무언가를 담으려 했다. 배우들이 어떻게 표현할지 보고 싶었다. 리차드(리차드 젠킨스)와 두 작품을 함께했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 현장에서 그에게서 놀라운 걸 배웠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정확한 그림을 그에게 말해주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리차드는 본인이 몇 가지 시도를 해 볼 테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가게에서 천을 주문하는 것과 같은 거”라며, “어쨌든 나는 당신에게 줄 천을 내어오겠지만, 기회를 준다면 가게에 있는 모든 천 중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나이트메어 앨리>에서 나는 목격자 시점으로 카메라를 썼다. 어린아이 시점숏 정도의 높이에서 찍었다. 위에서 피사체를 내려다보는 앵글이 거의 없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궁금해하며 주위를 서성인다. 뒤편에서 어깨너머로 인물들을 포착하며 진실을 폭로한다. 스탠의 경우 카메라를 보지 않는다. 배우들이 무대 앞을 차지하게 뒀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카메라는 예쁜 프레임이 아닌 스토리와 캐릭터를 위해 존재한다.

지나(토니 콜렛), 몰리(루니 마라), 릴리스(케이트 블란쳇), 세 명의 여성 캐릭터가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단 세 여성 캐릭터와 세 아버지 캐릭터가 스탠을 둘러싸고 대칭을 이루는 게 중요했다. 스탠은 매력이 있어서 세 여성과 가까워진다. 브래들리(브래들리 쿠퍼)가 이 역을 잘 소화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30년대 영화에서 튀어나온 무비스타 같으니까. 세 여성은 스탠의 어두운 면을 비춰준다. 각 인물은 순진한 여자, 팜므 파탈, 야심가, 마음씨가 고운 사람 등의 인간 군상을 대변한다. 성경에 나올 듯한 이름의 릴리스는, 마지막 순서로 등장해 히어로 영화나 신화 속 캐릭터 못지않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킴(킴 모건, 공동 각본 - 편집자)과 나는 이 세 캐릭터가 스탠으로부터 살아남길 바랐다. 그와의 관계로 인해 저주받는 비극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랐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어리석은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가 어떤 면에서 현실과 공명한다고 생각하나.

<나이트메어 앨리>는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스탠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영화 중간에 그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스탠은 책을 손에 넣고, 여자를 만나고, 힘을 얻고, 떠돌이 생활을 청산한다. 그가 카니발에서 점점 멀어지는 걸 담은 크레인숏이 있는데. 그야말로 여느 작품 속 해피엔딩에 쓰일 만한 장면이다. 그리고 잠시 흐름이 끊긴다. 내가 이 영화에 꼭 넣고 싶었던 부분이다. 이야기는 곧바로 2년 후로 넘어가고, 스탠은 다시 불행하다. 그는 공허감을 느끼며 또 다른 걸 찾는다. 스탠이 원한 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보여지는 것뿐이다. 그 해소되지 않는 절박함이 공허감을 불러온 건 어쩌면 적절하고 당연한 순서다. 그는 마지막 2분에 다다라서야 해방을 맛본다. 공허와 공포는 여전하지만, 부랑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면 그제서야 그는 안도한다. “이게 나야. 나는 대단한 마술사도, 상류사회 사람도 아니야. 이게 지금의 나고, 앞으로의 나야.” 우리에게는 스스로 인간이길 바라는 절박함이 있고, 영화에 그것들이 배어들어 있다.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