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누아르에 도전하게 되었나.
어린 시절부터 호러, 판타지, 누아르 영화가 만들고 싶었다. 내 첫사랑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부패한 경찰에 관한 단편 영화를 만들며 자랐다. 누아르 문학에 매료됐다. 제임스 M. 케인,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레이먼드 챈들러, 코넬 울리치,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와 같은 소설가들을 사랑했다. 이탈리아 네오누아르 작가 마시모 카를로토, 멕시코 작가 파코 이그나시오 타이보 등 좋아하는 작품이 너무 많다. 호러가 그렇듯 누아르는 정상 혹은 보통이라는 가식의 포장을 뜯어내고, 도덕성에 대한 날 것의 질문을 던지는 장르다. 누아르는 우화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를 담는다. 로버트 미첨이 나오는 누아르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흔이 있고, 봅 라펠슨 감독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81)에는 공황기의 불안한 기운이 녹아 있다. 항상 당대를 예민하게 반영해내는 이 장르를 사랑한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관중을 환상에 빠뜨려 먹고사는 야심가 스탠의 이야기다. 관객에게 작품을 소개하는 아티스트로서 스탠에게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했나.
스탠은 스토리텔러고 나도 스토리텔러라서, 각본을 쓰면서 스탠에게 했던 모든 질문을 나에게도 했다. 이 문제에 관해 수십 년 동안 자문했고 이해하려 애썼다. 성공은 괴장히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티스트로서 나는, 성공은 곧 망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게 되었다. 사람들이 내 일에 찬사를 보내느냐가 아니라, 나를 표현한 것에 대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커리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에 스스로 솔직하고 충실해지는 게 중요한 거다. 이를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만 일으킬 뿐이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모든 것을 잃기 직전의 인물을 그린다. 스탠은 거짓투성이인 사람이다. 진실이 없는 그는 언제나 들킬 위험 속에 산다. 나의 어떤 부분은 몰리 같고, 또 어떤 부분은 그린들 같다. 피트를 좀 많이 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