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시작된 지도 장장 15년째에 이르는 지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거쳐간 무수한 캐릭터들이 있었다. 아직까지 유니버스에 남아 등장 예정인 경우도 많지만 모종의 사유로 유명을 달리하거나 먼 곳으로 떠난 경우도 많았다. 작중 시나리오 흐름상 캐릭터가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된 경우도 있겠지만, 배우들의 사정이나 계약 문제로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에서는 다시 만나볼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겠지만(물론 멀티버스 개념의 도입으로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게 됐다) 애니메이션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MCU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 <왓 이프(What if...?)>에서는 이런 캐릭터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

각자 다른 세계관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좀(혹은... 많이)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종반에는 한 팀이 되어 서로를 돕게 되는데, 기존의 MCU와는 다른 스토리에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준 캐릭터들을 소개한다.

* MCU 전반 작품의 스포일러 다소, <왓 이프...?>의 초반 설정이 다소 포함


1) 라바저스의 '욘두', 그리고 '스타로드' 티찰라

'스타로드' 티찰라(왼쪽)와 욘두 우돈타

MCU의 메리 포핀스, 참아버지 욘두가 다시 등장한다. '스타로드' 피터 퀼의 진정한 아버지라는 별칭을 가진 욘두는 여전히 우주를 누비는 라바저스의 수장이지만, 스타로드의 생부인 에고가 찾아오라고 했던 어린 피터 퀼 대신 와칸다의 왕자인 티찰라를 찾아낸다. 덕분에 이곳의 '스타로드'는 피터 퀼이 아닌, 우리가 블랙 팬서로 익히 알고 있는 티찰라다.

욘두는 예의 그 화살을 이용해 적정한 순간에 나타나 티찰라를 도와주기도 하고, 상당히 탄탄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피터 퀼이 대책 없이 납치당한 것에 가까웠다면 티찰라는 스스로 원해서 라바저스가 된 셈이라고 할 수 있고... 심지어는 라바저들의 정신적 지주인 것 같기까지 하다. 거기에 MCU 최악의 빌런이었던 '그' 타노스도 티찰라와 친해 보인다.

드랙스(왼쪽)처럼 원년 멤버들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장난스럽고 끼 넘치는 현상금 사냥꾼이었던 피터 퀼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왓 이프...?> 속 새로운 스타로드는... 피터 퀼이 그렇게나 원했던 명성의 소유자가 되어 있다. 로난의 부하조차 스타로드를 만나자마자 팬이라고 호들갑을 떨기까지 하는데,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티찰라, 채드윅 보스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상당히 매력적이다.


2) '캡틴' 카터, 그리고 스티브 로저스

스티브 로저스

<퍼스트 어벤저>는 스티브 로저스가 슈퍼 솔져 프로그램에 발탁되어 약한 체질 때문에 고생하면서도 결국 혈청을 주입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슈퍼 솔져로 거듭나는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인, 실험 직후 캡슐에서 슈퍼 솔져가 탄생하는 바로 그 장면에서 멀티버스는 시작된다.

약골이었던 스티브 로저스와, 스티브 대신 혈청을 맞아 슈퍼 솔져가 된 페기 카터, 실험을 주도했던 어스킨 박사와 젊은 시절의 하워드 스타크, 그리고 소울 스톤을 지키고 있었던 왕년의 하이드라 지휘관 레드 스컬,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시점까지 스티브를 괴롭혔던 아르님 졸라까지 캡틴의 시작 시점에 함께 있었던 수많은 캐릭터들을 다시금 만나볼 수 있다.

이곳의 캡틴 아메리카, 페기 카터

원작과는 다른 전개에 역할도 많이 바뀌었지만, 서로의 모습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돌이켜 보면 페기는 스티브가 혈청을 맞기 전부터...)이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정의로운 심성을 잃지 않는 심지 굳은 부분이라든지, 그야말로 '멀티버스' 차원의 새로운 이야기인 셈이다.


3) 와칸다의 은자다카 킬몽거, 그리고 토니 스타크

토니 스타크(왼쪽), 은자다카 킬몽거

<블랙 팬서>의 메인 빌런 에릭 킬몽거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는 했지만 안쓰러운 면모도 있는 캐릭터였다. 다소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MIT에서 수학할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심과 증오심에 묶여 살았고, 티찰라와도 대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전투 실력은 물론이고 비상한 지력과 전략 등 재능은 충분했던 캐릭터였던 만큼 와칸다에서 티찰라와 함께 뭔가를 해낼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고 이대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캐릭터가 바로 킬몽거였다.

킬몽거

<왓 이프..?>에서 킬몽거는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번에 킬몽거가 접근하는 캐릭터가 다름 아닌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라는 게 차이점. 아무래도 킬몽거의 모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토니의 모습이나 행적은 아이언맨을 다시금 보고 싶었던 많은 팬들의 바람에는 조금 못 미칠지도 모르겠다.


이외에도 닥터 스트레인지와 그의 연인인 크리스틴, 공식적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블랙 위도우, 최근 솔로 시리즈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호크아이, 중요한 역할을 꽤나 수행했으나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던 필 콜슨(그래도 이쪽은 에이전트 쉴드에서 활약을 펼쳐 왔으니…), 유쾌한 파티광 토르와 달시, <완다비전>에서 다시금 이별해야만 했던 비전과 완다까지 주요 캐릭터들이 전부 등장한다.

<왓 이프...?>에서 상당히 충격적으로 등장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이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동명의 원작 코믹스에서 그러했듯이 새롭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고, 일견 더 침울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나 어떤 의미에서는 더 유쾌하고 가볍기도 하다. 멀티버스라는 강력한 무기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기에, 페이즈 4의 '멀티버스' 테마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시리즈다.

아무래도 실사화 촬영의 경우 여러 가지로 제약이 있고, 작금과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로케이션 촬영을 시작하기에도 예전에 비해서는 절차도 까다롭고 주의해야 할 점도 많다. 덕분에 팬데믹 사태가 지속되면서 무수한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하기도 했다. MCU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연기를 거듭했던 <블랙 위도우>, 비슷한 상황이었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같은 영화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촬영을 진행하기도 어렵고, 강행하는 건 더더욱 안될 일이니 많은 스텝들이 모이지 않아도 더 다양하고 비약적인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어쩌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에는 딱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왓 이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갈 또 다른 MCU의 창구인 셈이다.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