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픽사 신작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완벽한 딸이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갈등하는 13살 아시아계 캐나다인 메이(로잘리 치앙)의 자아 찾기 모험이다. 메이에게는 비밀이 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면 빨갛고 커다란 판다로 변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엄마와 딸의 필연적 애증관계, 친구관계, 그리고 소위 덕후 생활을 둘러싼 사춘기 소녀의 고민과, 인종·문화의 다양성을 귀여운 판다 이야기로 재치 있게 풀어낸다. 빌리 아일리시가 주제가를 쓰고 한국인 애니메이터가 성우로 활약한 것 등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이모저모를 다섯 키워드로 정리했다. 메이와 밍 모녀 목소리를 연기한 로잘리 치앙과 산드라 오와의 짧은 인터뷰도 덧붙인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3월 11일 디즈니 플러스에서 단독 공개된다.


1. 메이

메이는 중국계 캐나다인이다. 서양 문화권에 살지만 메이의 가족은 선조를 모시는 사당을 대대로 운영해온 집안이다. 부모를 공경하며 보은하고 밥은 되도록 든든히 혹은 넘치게 먹어야 한다는 여러 동양의 가치와 전통이 이 집의 제1강령이다. 착한 딸 메이는 우등생이고 배려심이 많다.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가족을 도와 청소하기를 좋아하고, 엄마 밍(산드라 오)에게 인정받는 것이 곧 자신 삶의 이유라는 게 메이의 말이다. 당연히 속으론 생각이 다르다. 메이는 순응하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밴드에 목매고 콘서트 티켓값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는 여느 13살 소녀와 다르지 않다. 메이가 참을수록, 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옥죄고 마는 엄한 밍과는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2. 새빨간 비밀

엄마와의 갈등으로 이미 벅찬 메이는 몸까지 문제다. 이번에도 엄마 때문에 학교에서 망신을 겪고 잠을 설친 메이는 다음 날 아침 빨간 판다의 몸으로 깬다. 알고 보니 분노할 때든, 수치스러울 때든, 사랑스러운 걸 보고 황홀해할 때든,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동요하면 별안간 판다로 변하는 것이 메이 집안 여자들의 내력인 것이다. 붉은 달이 뜨는 날 의식을 치러 판다를 봉인하지 않으면 메이는 영원히 반인반수로 살아야 한다. 기분을 제어하기란 쉽지 않아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일찌감치 세상에 탄로 나는데, 예상과 다르게 메이와 친구들은 그 새 모습을 곧 좋아하게 된다. 메이는 이상하게 생긴 털 뭉치 짐승으로서의 판다를 영영 묶어두는 대신, 감정에 가장 솔직할 때 튀어나오는 진짜 나로서의 판다와 함께 살기로 한다. “우리 모두의 내면엔 야수가 있죠. 깊숙이 숨겨진 시끄럽고 엉망인 모습이요. 대부분은 그 야수를 영원히 숨기지만 전 드러냈어요. 여러분은요?” 메이가 마지막으로 던지던 질문이 그렇듯,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를 주는 따뜻한 영화다.

3. 노스탤지어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바오>로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도미 시(Domee Shi)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픽사의 첫 여성 감독 단독 연출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영화는 토론토에서 외동딸로 자란 도미 시의 자전적 이야기다. 배경은 감독이 10대 시절을 보낸 1990년대다. 도미 시는 10대 소녀의 성장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분홍빛 파스텔 톤이 감싼 수채화풍의 배경은 따사롭고 이따금 과장되게 거대해지는 눈망울은 귀엽다. 폴더 폰과 달걀 모양의 게임기 다마고치, 곰돌이 인형같이 키치한 아이템은 어른 관객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고, 경쾌한 분위기는 아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 판다가 된 메이의 잡힐 듯한 털, 마블 영화 방불케 하는 ‘판다 어셈블’ 장면 등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4. 4*TOWN

메이와 친구들은 5인조 보이밴드 4타운의 열렬한 팬이다. 일명 덕질을 위해 살고 죽는 덕생덕사를 실천하고 있다. 디즈니·픽사 최초의 이 보이밴드는 199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엔 싱크와 백스트리트 보이즈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두 그룹의 노래가 영화에 삽입됐다. 감독에 따르면 2PM, 빅뱅 등의 케이팝 아이돌을 참고하기도 했다고. ‘노바디 라이크 유’(Nobody Like U)를 비롯한 4타운의 곡을 작사하고 작곡한 건 밀레니얼 뮤지션 빌리 아일리시와 피니어스 오코넬 남매다. 둘은 중독성 강한 90년대 팝음악을 재현했다. 피니어스 오코넬은 4타운의 멤버 제시의 목소리 연기도 했다. 음악감독으로는 <테넷>에 이어 차기작 <오펜하이머>에 합류하면서 공공연한 크리스토퍼 놀란 사단이 된 루드비히 고란손이 참여했다.

5. 로잘리 치앙과 산드라 오

<소울> 속 뉴욕의 흑인 커뮤니티,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동남아시아,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라틴 아메리카. 최근작만 돌아봐도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속 다국적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의 토론토도 실제가 그렇듯 다양한 문화가 섞인 도시로 묘사된다. 영화의 주요 집단인 메이 친구 4인방에서 프리아는 인도계이고, 한국계 캐릭터 애비 덕에 반가운 한국어도 종종 들린다. 넷플릭스 시리즈 <네버 해브 아이 에버>의 데비 역으로 유명한 마이트레이 라마크리슈난이 프리아를 연기했고, 스토리보드 아티스트에 이름을 올린 박혜인 애니메이터가 애비 역으로 목소리 출연을 겸했다. (<소울>에서 “내 바지 어디 갔어!”를 외치던 그 픽사 직원이다.) 엄마와 딸의 다이내믹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감독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재창조한 건 신예 배우 로잘리 치앙과 산드라 오다. 아래 인터뷰에서와 같이 좋아하는 스타를 말할 때 메이처럼 수줍어하고, 밍처럼 다독이는 두 배우의 다정한 교감은 스크린에 그대로 담겼다.


첫 주연작이 픽사 애니메이션이다. 메이 역을 제안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로잘리 치앙 도미가 콘셉트를 말해줬을 때 “진짜요? 레서판다로 변한다고요?” 했다. 농담이 아니라 레서판다는 내 최애 동물이다. 정말로! 그것만으로 기뻤는데 더 놀랐던 부분은 레서판다가 의미하는 바였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사춘기, 엄마와 딸의 관계, 친구 관계, 정체성, 전통 등을 크게 아우르는 영화라 좋았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가 그렇듯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문화를 소재로 다루는 일이 잦아졌다.

산드라 오 기본적으로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콘서트 한 번 가는 게 소원인 열세 살 소녀 메이의 성장기다. 아이가 독립성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 벗어나는 이야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도미의 중국계 캐나다인 배경이 보너스처럼 더해졌다. 아름다운 문화적 요소가 들어간 거다. 아시아계 배경을 공유한 이들은 가족과 아주 가깝지만 책임감이나 자식 된 도리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되고 싶은 대로 되는 데 때때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 스토리텔링이 영화에 잘 녹았다고 생각한다.

메이와 친구들은 4타운이라면 껌뻑 죽는다. 누구든 10대에 사랑하는 스타가 있기 마련인데. 당신은 어떤가/어땠나.

로잘리 치앙 있다. 오 갓. 케이팝 아이돌인데… (말하기를 꽤 오랫동안 망설인다.) 오 마이 갓!

산드라 오 꼭 말하지 않아도 돼. (웃음)

로잘리 치앙 NCT. 나 얼굴을 붉히고 있다. 좋아. 케이팝을 너무 사랑한다. 상상도 못 할 거다. 친구들이랑 만나면 케이팝 얘기밖에 안 한다. 진짜로.

산드라 오 (엄마 미소)

로잘리 치앙 케이팝 얘기만 하는 데도 이렇게 얼굴을 붉힌다. (웃음) NCT. 세븐틴, BTS, 엑소. 다 사랑한다.

산드라 오는 어땠나.

산드라 오 학생 때라…. 후! 메이의 나이 때쯤 나는 브릿팝을 좋아했다. 듀란듀란(Duran Duran)부터 더 스미스(The Smiths), 더 큐어(The Cure), 그땐 록 음악에 미쳐있었다.

로잘리 치앙은 혹시 저 밴드들의 이름을 들어봤나.

산드라 오 알 리가 없지! (웃음)

로잘리 치앙 (끄덕)


씨네플레이 이지연 기자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