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가 3년 만에 신작 <브로커>를 선보였다. 전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 이후 일본 외 국가에서 제작한 두 번째 장편이자, 첫 한국 영화다. <환상의 빛>(1995)으로 데뷔한 이래, 30여 년간 부지런히 재능을 입증해온 거장의 새로운 도전. 여기에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합류하면서 <브로커>는 일찌감치 이목을 끌었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프리미어 상영 당시, 현지 반응 또한 뜨거웠다.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12분 동안 이어졌고, <밀양>(이창동, 2007) <박쥐>(박찬욱, 2009) <기생충>(봉준호, 2019) 등으로 꾸준히 칸에 초청받은 송강호는 마침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외신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휴머니즘은 언제나 통한다”는 찬사를 보냈다. 반면, <가디언>은 “지칠 정도로 얄팍한 캐릭터 묘사”라고 꼬집었으며, <텔레그래프>는 “칸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특히 인신매매와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미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브로커>는 소재에 접근하는 윤리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상반된 평가에 휩싸였으나, 감독은 “호불호 논란은 있을 수도 있다”면서도 “나는 흑백이 뚜렷하게 나뉘는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감동과 실망을 두루 안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열다섯 번째 작품 <브로커>가 마침내 한국에도 지난 8일 개봉했다. <브로커>는 국내 관객에게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영화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 부산의 한 골목에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소영(이지은)을 비추며 시작한다. 불안과 추위로 오그라든 품에는 갓난아이 우성이 안겨 있다. 소영은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 앞을 서성이다가 이내 바닥에 아이를 내려놓는다. 아이를 버리는 엄마와 엄마에게 버림받는 아이. 곤경에 처한 한 쌍이 이별하고 나면, 그들을 지켜보는 또 다른 한 쌍이 등장한다. “버릴 거면 낳지 말라고.” 차에서 잠복하던 형사 수진(배두나)은 차갑게 쏘아붙인 후, 후배(이주영)에게 소영을 뒤쫓으라 지시한다. 곧장 교회 앞으로 뛰어간 수진은 바닥에서 아이를 들어 올리고, 베이비 박스 문을 연다. 이윽고 영화는 교회 내부로 위치를 옮겨 세 번째 팀을 소개한다. 누군가 아이를 버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상현(송강호)은 반가움을 숨기지 않는다. 동수(강동원)는 무감한 얼굴로 베이비 박스 CCTV 영상을 삭제한다.

다음날 소영은 우성을 찾아 교회로 돌아오지만, 아이는 온데간데없다. 시치미를 떼던 상현과 동수는 곧 평소와는 다른 상황임을 깨닫는다. 아이를 밖에 두고 갔다는 소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젯밤에 벌어진 일을 목격한 제3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소영이 경찰서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상현은 소영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우성이에게 최고의 부모를 찾아드리기로 약속합니다.” 상현은 어두운 미래에서 아이를 구해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한다. 공식 기관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입양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고객”을 수소문해서 아이를 팔고, 그 대가로 돈을 챙긴다. 선의를 강조하는 상현에게 소영은 일갈한다. “그냥 브로커잖아.” 날 선 대화가 이어지지만,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한 세 사람은 우성을 데리고 낡은 승합차에 올라탄다. 적당한 고객, 즉 아이를 가장 비싸게 살 사람을 찾아서.

<브로커>는 이제 두 트랙을 오간다. 한쪽에는 아이를 판매하려는 엄마와 브로커가 있고, 다른 쪽에는 그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려는 형사가 있다. 구매 후보자를 몇 차례 거치는 동안,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관계에는 기묘한 애정이 깃든다. 상현은 돌봄을 도맡으며 유사 가족의 가장 역할을 수행하고, 보육원에서 자랐던 동수는 엄마를 향한 오랜 그리움을 내보인다. 마음을 걸어 잠갔던 소영은 “전문 브로커라기엔 뭔가 어설픈” 두 남자에게 조금씩 상처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이때 보육원에서 몰래 빠져나온 여덟 살 소년 해진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면서, 영화는 점차 그늘에서 벗어나 웃음과 활기를 덧칠한다. 느슨하리만치 평화로운 여정, 세 사람은 어느새 인신매매 단체라기보다는 양육공동체다운 면모를 갖춘다. 오히려 조바심을 내는 쪽은 수진이다. 관찰자에 머물렀던 수진은 후배 형사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영에게 연락을 취하며 사건에 개입하려 한다.

영화 말미에 다다랐을 때, 인물들은 저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브로커들은 큰돈을 버는 대신, 진짜 부모가 될만한 사람을 찾자는 목표를 세운다. 소영은 자신과 아이 둘 다 지킬 수 있는 길을 고민한다. 그들은 선함과 악함, 강점과 약점을 두루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는 악하고 약한 부분을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최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개개의 노력과 결심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내는 엔딩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온정과 인간을 향한 믿음이 엿보인다.

다만, <브로커>는 범죄를 미화했다는 의심을 차치하더라도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먼저 추격과 여행을 동시 진행하는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서로 다른 리듬은 번번이 충돌하며, 긴박함과 여유로움 중 무엇도 탁월하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형사들이 전달하는 정보는 영화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고, 범죄를 그저 소동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결국 그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유용하지도 않은 하위 플롯을 감당하는 역할에 그친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태어나길 잘한 거야’라고 똑바로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브로커>는 생명에 관한 영화이다.”라고 밝혔다. ‘생명은 귀하다’는 메시지에 과도하게 집중한 탓일까. 영화는 가출, 성매매, 살인 등 소영의 지난 행적을 언급하며 “자식 버리는 엄마”가 어떤 선택을 강요받는지 살펴보려는 듯 하지만, 끝내 소영이 처한 현실을 배제한다. 여성을 향한 비난과 편견, 제도적 지원의 부족, 사회 안전망 부재 등 다양한 문제가 누락된 채, 소영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엄마가 된다.

이때 소영과 대립하는 상대는 사회가 아니라, 수진이다. 범죄자를 체포하는 일보다 소영을 단죄하는 일에 더 매달리는 수진의 태도는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이는 수진이 과거에 낙태했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음을 암시하고, 그 경험으로 인해 ‘엄마 되기’를 주저한다고 여기게 한다. 다소 엉성한 호흡과 모성 신화를 되풀이하여 획득하는 유대감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곁들인 유머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요소다. 양육자 없는 해진은 매 순간 능청을 떨며, 급기야 자신을 입양해달라고까지 조른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브로커>는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주제에 충실하다. 다만, 영화에 자리한 절망과 불행이 전부 희망을 위해 복무하는 모양새로 귀결되면서 <브로커>의 선택이 과연 온당한가 혹은 유효한가는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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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