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 많은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기대하진 않았으나 의외로 대박 터진 영화도 있었고,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에 서둘러 극장가를 떠나버린 영화도 있었죠.
갈수록 자본력 좋은 영화는 사랑받고 돈 많이 버는 데 반해 저예산 영화는 사랑 못 받는다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름의 단단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지고 사랑받을 기회가 충분하지 못했던 국내외 영화들을 모아봤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볼 기회는 내년에도 있으니까요. 


숨겨진 독립 영화 보고 싶다?

<울보> / <수색역>

올해 많은 독립영화들이 주목을 받았죠. 배우 정하담을 발견하게 해준 영화 <스틸 플라워>,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부터 다양한 팬덤 현상을 만들어낸 <연애담>, 독립영화로서는 참신한 형식 실험에 성공한 <혼자> 등이 그렇습니다.

여기, 올해 초에 잠깐 극장 문을 두드렸다 조용히 내려간 두 편의 영화가 있습니다. <울보>와 <수색역>은 아직은 덜 여물었으나 분명히 다음 영화에서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거라는 신인감독 특유의 잠재력을 보여준 영화로 기억됩니다.

이 두 편은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영화 전체의 정서를 이끌고가는 영화라는 점도 비슷하네요. 사건 전개보다는 주인공의 내면이 더욱 강렬하게 남는 영화였죠.
어른 없이 홀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비극을 다루는 <울보>의 주연을 맡은 배우 하윤경은 <소셜포비아>의 하영으로 관객들이 기억하는 배우이고,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그늘에서 발버둥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수색역>의 주연 배우 공명은 지금 방송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도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고 있는 신인배우입니다.
두 영화 모두 신인감독 특유의 저돌적인 면을 갖춘 영화입니다. 영화배우와 감독 모두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영화였습니다.

다큐멘터리의 힘!

<그림자들의 섬>

한진중공업 노조의 역사를 침착하게, 그리고 근본 문제를 꼼꼼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특정 기업 노조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 자체로 사실상 한국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역사라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기업 노조가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겠느냐는 편견을 걷어두고 보는 게 좋습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눈앞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후대를 위해 싸운 사람들인 것이죠.

<그림자들의 섬>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면 세상을 변화시킬 만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이 증명되고 있는 이 시기에, 묵묵하게 자기 자리에서 동료들을 기다리고 응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록의 영화입니다.

재패니메이션은 죽지 않았다구!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정도의 흥행과 대중들의 관심도에 비하면 올해 상반기에 비교적 조용하게 개봉했던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그리 주목할 영화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 중에서는 비교적 만듦새가 차분하고 또 흥미로운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사실, 알만한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제작사가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아이돌 마스터> 등의 히트작을 보유한 에이원픽처스이기 때문이고 또 이 영화 역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인기작에 속합니다.
말을 잃어버린 소녀와 유년시절의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밝고 당차게 묘사되어서 <너의 이름은.>의 정서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도 분명 마음에 들어할 것 같습니다.

숨은 호러의 발견?

<썸니아>

올해 <컨저링 2>, <라이트 아웃>, <맨 인 더 다크> 등 주목받은 공포 스릴러 장르 영화들이 꽤 있었는데 <썸이나>는 그 중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수작입니다. 아이가 주인공이어서 그랬을까요? 묘하게 <컨저링> 시리즈를 닮아 있으면서도 <라이트 아웃>과 같은 폐쇄적인 공간 활용을 잘해내는 공포영화로 한 번 더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버림받고 고통받는 어린 소년 소녀들의 상처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입니다. 이 아이들의 삶의 고통을 그저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로하는 결말을 보여주는 것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룸>을 통해서 놀라운 아역 연기를 보여준 배우 제이콥 트렘블레이가 장르 영화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입니다.

올해의 힐링 무비!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

올해의 고양이 연기상은 무조건 이 영화에 줘야 합니다.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살던 청년이 우연히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게 되면서 삶의 방향을 찾게 되는 성장 드라마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고양이의 존재는 주인공 청년 미츠오가 바라보는 꿈의 다른 말이죠. 앉아서 꿈을 찾는다고 꿈이 자기에게 와주지는 않듯이, 그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삶을 배우게 됩니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영화가 주는 울림보다 고양이들이 상황과 흐름에 정말 딱 들어맞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일 겁니다. 실제 영화에 출연한 고양이들은 일본에서도 많은 CF에 출연한 베테랑 배우(?)들이라고 합니다. 정말 올해의 고양이 연기상은 이 친구들에게!

볼만한 액션 없었다고?

<바스티유 데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드리스 엘바의 액션 파워가 여느 액션 배우 못지않다는 것을 새삼 증명하는 영화였습니다. 온몸을 내던져서 뛰어다니는 박력!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유럽의 테러 사건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테러라는 소재는 민감한데요. 이 영화 역시 테러범을 추적하는 CIA 요원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책상 앞에서 머리와 컴퓨터로 추적하는 요원이 아니라 오랜만에 현장에서 발로 뛰는 요원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숨겨진 범죄 명작

<인필트레이터: 잠입자들>

놓치고 지나치기 아쉬운 언더커버 영화입니다. 미국의 위장 수사 전문 마약단속국 특수경찰의 활약을 다룬 범죄 스릴러입니다.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던 경찰이 길거리 조무래기 판매상이 아니라 돈의 꼭대기를 타겟으로 변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꽤 탄탄하게 흘러갑니다. 드라마 <나르코스> 시리즈나 <시카리오>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아주 만족할 영화입니다. 특히 미드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의 주인공 브라이언 크랜스톤의 팬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씨네필이세요? 필견!

<벨빌의 세 쌍둥이>

놀랍게도 이 영화, 거의 액션 영화나 다름 없습니다. 그림만 보고 평범한 애니메이션으로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마피아에게 붙잡혀간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추격전을 벌이는 엄마의 이야기인데,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일루셔니스트>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실뱅 쇼메 감독의 첫 장편 데뷔 애니메이션입니다. 뒤늦게 첫 개봉하는 영화인 것이죠.

데뷔작이라고 하기에 믿을 수 없는 완성도의 영화였어요. 개성 강한 그림체가 만들어내는 미장센과 탄탄한 시나리오를 받쳐주는 연출 감각, 특히 후반부의 놀라운 클라이막스 액션 장면은 단연 올해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감동과 쾌감을 모두 보장합니다. 

여배우들의 힘!

<어바웃 레이>

엘르 패닝이 연기하는 '레이'는 여자의 몸을 가진 남자로 태어났죠. 제목에서 예상하듯, <어바웃 레이>는 레이란 인물에 대해서, 우리가 자신의 성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나의 성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과 싸워나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관심사는 '레이'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 그러니까 레이의 엄마와 할머니가 레이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를 고민하며 싸워나가는 데 있었죠. 한국에서는 아직 이 정도의 고민까지 나아가는 영화는 보이지 않아서 더욱 소중한 영화입니다. 레이의 내면에 대해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지 못해 비록 완성된 영화는 그 목적을 절반밖에 이루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레즈비언 부부로 살아가는 할머니 세대와 그들의 2세들이 가꾸어나가는 가정의 풍경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은근히 부럽기도 한 영화였습니다.

올해의 비장함은 이 영화다!

<로스트 인 더스트>

다른 화제작에 밀려 많이 소개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입니다. 황량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범죄에 얽혀드는 두 형제와 그를 추적하는 보안관의 이야기 <로스트 인 더스트>는 서부극 장르에 속하는 범죄 영화인 동시에 미국의 자본주의가 베고 지나간 보통 사람들의 상처도 함께 보여주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영화입니다. 커크 선장 크리스 파인과 엑스맨의 엔젤로 알려진 벤 포스터가 두 형제로 나와 멋진 연기를 보여주죠. 두 형제를 뒤쫓는 보안관 제프 브리지스의 존재감도 무시무시합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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