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가 진행 중이다. 조용히 이어지던 온난화가 이번 여름에는 무서울 만큼 거세졌다. 무더위는 식을 생각이 없고, 자동차가 물에 잠기는 등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지구의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제 기후재난은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이상기후 현상의 원인부터 냉철한 해결 방안,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까지 모두 짚어봐야 한다.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를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최악의 위기, 지구 멸망 앞에서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심도 깊은 메시지를 건네는 두 편의 영화를 만나보자. 마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말이다. 물론 필자는 사과나무보다 영화 한 편을 감상하겠지만.

<돈 룩 업>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의 존재를 발견한 대학원생 케이트와 두 천문학자가 재앙을 막기 위해 언론사를 찾아다니지만,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세상은 그들의 경고에 시큰둥하다. 케이트와 천문학자는 미국에서 가장 핫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쉽고 빠른 방법을 통해 인류 종말을 전달하고자 한다. 절박한 마음을 안고 공식적인 재앙을 발표하려 하지만, 프로그램 MC로부터 “가볍고 유쾌하게 얘기해 주세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중대하고 암울한 현실을 가볍게 다루는 미디어의 민낯을 목격하며, 주인공들은 사회적 시스템에 회의와 혐오를 느낀다.

<돈 룩 업>은 인류에게 닥친 재난을 도발적이고 위트 있는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다. 영화는 우선순위가 뒤틀린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안일해진 인류에게 경고를 던진다. 혜성을 발견한 일은 정치적 음모나 스타의 스캔들, 가십거리에 비해 재미난 이슈거리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실화가 될지도 모를 이야기이다. 알아야 하는 진실과 알고 싶은 진실은 언제나 다르지만,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사건들은 존재한다. 우리에게 무엇을 먼저 직면해야 하는지, 그 우선순위를 흘려주고 있다.

거장 감독부터 믿고 보는 배우들과 차세대 스타까지

<돈 룩 업>은 <빅쇼트>와 <바이스>를 통해 관객과 평단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감독 애덤 맥케이의 연출과 화려한 캐스팅으로 먼저 주목을 받으며, 2021년 넷플릭스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기도 했다. SNL 작가 출신인 감독은 시니컬한 블랙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 현란하고 빠른 편집, 그러나 친절하고 섬세한 연출을 강점으로 갖고 있는 미국 블랙 코미디계의 거장이다. 그렇기에 현실을 더욱 냉철하고, 날카롭게 통찰한다. 푸티지를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윤리와 도덕을 새로운 관점에서 고뇌하게 만들던 <빅쇼트>에 이어 <돈 룩 업> 또한 그의 강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화려한 캐스팅 역시 그의 작품을 보는 재미 요소 중 하나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 마크 라이런스 등 믿고 보는 배우들과 차세대 스타 티모시 샬라메까지. 할리우드 대표 배우들이 명연기를 펼치며 시너지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익숙한 얼굴들이 카메오로 등장하며 눈을 즐겁게 해준다.

종말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하늘을 보지 말라’라는 말은 차라리 눈을 가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무력한 인간에게 전하는 마지막 위로일지도 모른다. ‘하늘을 본들 무엇하랴’라고 외치는 낙관적인 비관론자의 자세도 엿보인다. 재앙을 막으려던 이들은 종말의 순간에 그저 둘러앉아 만찬을 즐기며, 어찌할 수 없는 종말 앞에 수긍한다. 삶에 마지막에서 조용히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다. 그간의 사소한 씨름들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지구 멸망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사실, ‘종말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희망을 내던져버린 인류가 언제까지 비극을 회피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더 초연하게,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덜어내고, 가장 인간답게 마지막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극 내내 신랄하던 영화는 마지막에서야 용서와 감사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씁쓸한 결말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

<세상의 끝까지 21일>

로맨틱한 지구 종말 로드무비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기까지 21일 전, 마땅히 갈 곳 없는 외로운 남자 도지와 가족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 페니가 각자의 첫사랑과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난다. 도지는 잘못 배달된 우편물 속 ‘첫사랑의 편지’가 떠올라 페니를 찾기로 결심한 것이다. 페니가 가족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이유는 허무하게도 그의 게으름 때문이다. 자신을 도와주면 가족을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도지의 제안으로,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동행이 시작된다.

가장 절망적인 이야기를 가장 밝고 로맨틱하게 그려낸 지구 종말 로드무비이다. 주인공들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랑을 심겠다는 로맨티스트들이다. 무모하고 터무니없지만, 재난 앞에서 자포자기하는 이들보다는 어쩐지 행복해 보인다. 생의 끝에서 만난 새로운 사랑은 비극일까, 행운일까.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비극이지만, 현재에 충실한 사람에게는 거대한 행운이다. 시선을 조금만 옮긴다면, 어디에나 놓여있는 행운을 반드시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생의 마지막 21일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할 건가요?

생의 마지막 21일,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 이제는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에 미뤄왔던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시간이다. 지구 종말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이어간다. 임무에 충실한 경찰은 여전히 도로를 지키고 있고, 레스토랑 직원은 손님을 위해 파티를 준비하며, 이제 일을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들은 가정부는 실의에 빠진다. 지구 종말도 별거 없다는 듯이, 이들은 모두 평화롭다. 이 또한 삶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누구와 마지막을 함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세상의 끝이라는 거대한 비극 속에서 함께 무너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긴 여정의 목적이 아닐까. 사랑하기에 충분한 시간, 21일 동안 후회 없이 사랑하라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다. 이들의 따뜻하고 로맨틱한 여정을 지켜보며, 세상의 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보자.(티빙, 왓챠, U+모바일tv에서 서비스 중)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