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대칭, 교차의 영화적 순간들, <패터슨>
“누군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 일은 대단히 성취하기 어렵다” 시나리오 작법에 등장하는 금과옥조의 규칙이다. 결국, 영화는 ‘드라마’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을 창조해야 관객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 <패터슨>은 이러한 시나리오 규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캐릭터(누군가, 패터슨)는 지나치게 심드렁하거나 쿨하고, 목표(어떤 일, 버스 운전/시 쓰기)는 대단한 꿈이 아니라 하루하루 일상일 뿐이다. 그것도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뉴저지주 작은 소도시, 패터슨의 버스 기사,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의 일주일이다. 이렇듯 <패터슨>은 대단한 서사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출발해 드라마를 끌어내고, 관객들의 공감대를 자아낸다. 여기에 <패터슨>의 영화적 성취가 있다. 늘 할리우드의 규칙을 거스르며 필모그래피를 써 내려간 짐 자무쉬는 2016년에 만든 <패터슨>에서 자신만의 영화적 리듬과 드라마로 ‘자무쉬 월드’의 정점에 이르렀다. 그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서사에 ‘시’의 운율을 합일시키는 방식으로 영화적 순간을 창출했다. 부연하자면 미니멀한 리얼리즘에 시적 표현주의가 더해져 미학적 아름다움을 끌어냈고, 순환·대칭·교차라는 시의 운율을 미장센에 대입하여 구조적 통일성을 완성한 것이다.
영화의 서두는 순환의 미장센이다. ‘월요일’ 자막과 함께 카메라는 부감으로 패터슨과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침대에 잠들어있는 모습을 응시한다. 버스 기사인 패터슨이 출근 시간에 맞춰 일과를 시작하는 순간이 영화의 시작인 것이다. 이러한 미장센은 사진 1, 2, 3에서 보듯이 변주와 반복을 거치며, 총 8번 표현된다. 영화의 타임라인이 월요일부터 그다음 월요일까지 패터슨의 일주일을 담고 있고, 이 일주일은 순차적인 요일 표시 자막과 함께 제시되기 때문이다.
순환의 미장센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부감 앵글이다. 짐 자무시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요일 쇼트에서 페이드 인과 요일 자막,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 앵글을 고집스럽게 고수한다.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이 8번의 전지적 시점의 부감 쇼트는 영화를 구조적으로 7등분 함과 동시에, 영화의 주된 시점인 패터슨의 1인칭 시점 쇼트와 대구를 이룬다. 이러한 부감은 마치 절대자가 아침마다 패터슨과 로라의 일상을 관찰하는 느낌을 준다. 패터슨이 침대에서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순간, 부감과 전지적 시점은 일반 앵글과 3인칭 혹은 1인칭 시점으로 전환되고 본격적인 일상의 서사가 시작된다.
순환의 미장센에서 또 눈여겨볼 대목은 변주와 반복이다. 사진 2는 사진 1의 변주이다. ‘일요일’ 자막과 함께 패터슨은 등을 돌린 채 로라의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특별한 안타고니스트(반동인물)도, 캐릭터들 간의 갈등도 없는 <패터슨>에서 이 장면은 패터슨의 심리적인 갈등을 보여주는 유일한 장면이다. 토요일 저녁, 패터슨과 로라가 극장에서 흑백 고전 <닥터 모로의 DNA>를 보고 온 사이, 반려견 마빈이 패터슨의 시 노트를 산산조각 내버린 여파가 일요일 아침까지 영향을 미친 장면이다. 여타 7개의 다른 요일 쇼트는 패터슨과 로라가 나란히 누운 채 화면에 위치한다면, 이 일요일 쇼트는 패터슨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미장센으로 변주된 것. 사진 2가 사진 1의 변주라면, 사진 3은 사진 1의 반복이다. 영화의 엔딩 씬인 이 월요일 씬은 사진 1과 구도 면에서 거의 흡사한 미장센의 반복을 통해 또 다른 월요일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평범한 삶의 지속을 암시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이다.
순환은 시각 구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패터슨의 일상 그 자체이다. 내러티브는 패터슨의 활동 반경인 집, 차고지, 버스를 거쳐 다시 집, 동네 바, 집으로 수렴되는 매일의 루틴을 따라 구축되며, 순환과 반복을 거듭한다. 패터슨의 삶의 궤적은 패터슨시의 어딘가에서 작은 동심원을 그리며 도돌이표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캐릭터 또한 순환과 반복의 사슬 아래 놓여 있다. 주인공 패터슨은 영화의 주 무대 패터슨시의 언어적 유희이자 순환적 표현이다. 뉴저지 패터슨이라는 로컬리티는 버스 기사 패터슨과 등치 되며 서로 일체감을 형성한다. 그 결과로 패터슨이 낳은 유명 시인이자 의사인 윌리암 카를로스 윌리암스가, 시인이자 버스 기사인 패터슨으로 캐릭터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서로 다른 쌍둥이 캐릭터와 <닥터 모로의 DNA>에 등장하는 로라와 닮은꼴 여주인공, 패터슨 출신의 전설적인 복서 허리케인 카터와 아나키스트 케타노 브레스키의 비극적인 서사를 반반씩 섞어 놓은, 바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는 에버렛(윌리엄 잭슨 하퍼)도 캐릭터의 순환과 반복이라는 패턴으로 읽을 수 있다.
대칭도 <패터슨>의 전체를 관통하는 미장센의 원칙이다. 사진 4처럼 패터슨의 시점 쇼트로 보이는 쌍둥이의 쇼트뿐만 아니라, 사진 5, 6처럼 좌우 대칭의 미장센은 영화에 시각적 비례미와 함께 시적 리듬을 부여한다. 특히 사진 6에서 윌리암 카를로스 윌리암스의 시를 좋아해 그의 고향 패터슨을 찾은 일본 관광객(나가세 마사토시)과 패터슨이 마주 앉아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이다. 국적을 초월한 만국 언어로써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심이 이 대칭의 미장센에 담겨있다.
이 대칭의 투 쇼트 이후 일본 관광객이 패터슨에게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며 빈 노트를 선물로 남기고 화면에서 사라지고, 패터슨이 멍하니 텅 빈 노트를 응시할 때 카메라가 조응하며 줌인으로 패터슨에게 다가선다(사진 7). 영화 전체가 대부분 픽스 쇼트로 이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진 7의 이 무빙 쇼트는 낯설고 이례적이다. 이 무빙 클로즈업은 반려견 마빈이 갈기갈기 찢어버린 시 노트에 대한 대칭이자, 패터슨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적 순간이다. 일본 관광객과의 만남이라는 삶의 우연은, 사라진 시 노트가 텅 빈 새 노트로의 대체라는 필연으로 이어지고, 사진 8처럼 폭포의 이미지와 시의 텍스트가 합쳐지면서 패터슨의 시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를 남긴다. 이제 패터슨에게는 텅 빈 노트를 채워 넣을 일만 남은 것이다.
교차의 미장센은 일상을 다룬 이 사실주의 영화에 몽환적인 시적 리듬을 부여한다. <패터슨>이 여타 일상을 다룬 영화들과 다른 톤 앤 매너로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짐 자무쉬는 긴 이중노출과 디졸브를 활용해 마치 현실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느낌으로 사진 9, 사진 10, 사진 11을 연출했다. 이러한 교차의 미장센은 패터슨의 내레이션과 시 텍스트가 결합하여 패터슨이 버스 기사라는 현실을 벗어나, 시인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무덤덤한 일상이 시를 만나 아름답고 몽환적인 리듬을 체득하는 것이다.
사진 10에서 로라는 패터슨에게 “오늘은 어땠어?”라며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면, 패터슨은 예의 그렇듯 “똑같았어!”라고 답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늘 똑같은 일상이 소시민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깊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패터슨은 시를 쓰고, 로라는 팬케이크를 만들고, 커튼을 디자인하고, 기타를 배운다. 바 주인 덕(배리 샤바가 헨리)은 체스 대회를 준비하고, 바의 진상 고객 에버렛은 배우를 꿈꾼다. 코인 세탁소에서 만난 사내는 연신 랩을 연습하고, 폭포에서 만난 일본 관광객은 시를 쓴다. 이렇듯 매일매일 똑같아 보이는 <패터슨>의 일상도 수많은 욕망과 판타지로 인해 조금씩 다른 하루가 된다. 우리의 무척이나 단조로워 보이는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영화 <패터슨>은 겉으로 보기엔 무심해 보이는 일상 속에는 실상 수많은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순환, 대칭, 교차라는 시의 운율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영화는 우리에게 이제 펜을 들고 텅 빈 우리의 일상을 채워 나가라고 응원하고 있다.
영화감독 최인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