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영화 <길복순>은 베를린영화제 스페셜 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2월 18일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OTT 오리지널 작품이 영화제에 초청되는 일이 이제는 일상화되었지만, 국내 오리지널 영화가 초청되는 것은 이례적이라 특히 더 관심을 모았다. 과연 <길복순>의 어떤 점이 베를린 영화제 관계자를 매료시켰을까?

영화 <길복순>은?

<길복순>은 청부살인 업계의 전설적인 킬러이자 15세 딸을 둔 싱글맘 ‘길복순’(전도연)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그린 영화다. <불한당>, <킹메이커>를 연출한 변성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리지널 작품으로, 만화 같은 설정과 뛰어난 미장센을 보여주며 오는 3월 3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변성현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감각적인 연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불한당>은 작품 특유의 독특한 소재와 섬세한 기법으로 단순히 보는 ‘관객’을 넘어 그 속에 빠져드는 ‘팬덤’을 형성할 정도다. 이번 <길복순>에 대한 기대감도 이와 비슷하다. 킬러와 싱글맘으로 이중생활을 하는 ‘길복순'을 통해 변성현 감독만의 액션 누아르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작품을 먼저 만났다.


영화 ‘길복순’ 스토리 – 좋은 엄마가 되길 바라는 업계 No.1 킬러의 역할 갈등

영화는 온몸에 문신을 한 채 속옷 한 장만 걸친 야쿠자 ‘오다 신이치로’가 길바닥에서 깨어나면서 시작한다. (참고로 전혀 예상 밖의 배우가 오다 신이치로를 맡아 놀라움을 줄 것이다. 스포일러 관계로 그 재미는 직접 영화를 보고 느끼시길)

그를 납치한 킬러 길복순은 공정한 경쟁을 하자며 신이치로에게 검을 들려주고 본인은 이마트에서 산 도끼를 들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휘두른다. 결투를 하던 중 예상되는 수를 가늠하던 길복순은 허무한 방법으로 그를 암살한다. 살짝 허무 개그 같은 분위기, 영화 역시 이런 틈을 노린 방법으로 재미를 줄 것임을 예고한다.

임무를 마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귀가하는 길복순은 싱글맘이다. 사춘기 딸 ‘재영'(김시아)은 엄마 복순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고, 그로 인해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협박을 당한다. 그럼에도 복순과 재영은 서로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삐걱대기만 한다.

한편, 청부살인업체들이 연합해 만든 회사 M.K 엔터에서 복순은 대표 ‘차민규’(설경구)가 가장 아끼는 킬러로 조만간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 복순은 업계 최고의 회사에서 킬러로 동료들 사이에서 선망받는 대상이지만, 킬러보다 좋은 엄마가 되고 마음 때문에 재계약 여부를 고민한다.

그러던 중 회사 대표인 차민규로부터 미션을 전달받아 재계약 전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살인을 자살로 위장하기로 한 미션에서 유서를 읽어 본 복순은 임무에 실패한다. 이로 인해 복순은 물러설 수 없는 대결에 휘말리게 되고 딸 재영도 자신을 협박하던 남자아이를 흉기로 찔러 퇴학당할 위기에 처한다. 복순을 둘러싼 소용돌이 같은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엄마와 킬러라는 양립되는 역할을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까?


<길복순>의 명과 암 –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VS 부족한 배경 서사

영화는 오프닝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매 순간 강렬한 화면과 스타일리시한 액션 시퀀스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여기에 전도연을 비롯한 설경구, 구교환, 이솜 등 출중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변성현 감독은 캐릭터의 대비를 통해 작품의 강렬함을 극대화한다.

복순의 캐릭터는 차가운 킬러와 따뜻한 사랑을 지닌 엄마를 동시에 갖고 있으며, 복순을 중심으로 은퇴를 고민하는 자와 새로 첫발을 딛는 새내기,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는 자 등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 영화의 흥미를 끌어올린다.

엄마 복순(왼쪽)과 딸 재영은 서로에게 말 못하는 비밀에 조금씩 삐걱거린다.

하지만 이 같은 장점에도 영화 <길복순>은 액션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다. 길복순이 이중적인 캐릭터를 가진 입체적인 인물임에도 복순이 킬러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 특히 싱글맘이 된 이야기가 없다. 주인공인 캐릭터를 뒷받침해 줄 서사가 부족하다. 여기에 차민규, 길재영 이외에도 복순과 얽히는 차민규의 동생 ‘차민희’(이솜)와 후배 ‘한희성’(구교환), 길복순을 도운 인턴사원 ‘영지’(이연) 등 보이는 이미지는 개성이 넘치나 그것을 뒷받침할 비하인드가 없어 공허하다. 겉은 화려하지만 무의미한 무대장치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가 아닌 시즌제 드라마였으면 다양한 이야기와 깊이 있는 고뇌들이 드러나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길복순>의 시나리오를 보고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제작할 것을 제안했지만, 감독이 영화로 고집했다고 한다. 작품에 만약은 없지만, 넷플릭스의 의견대로 했다면 극이 더욱 풍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 영화의 설정을 차용한 부분도 양날의 검으로 다가온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 듯 킬러가 회사에 소속되었고 그 세계에서 펼쳐지는 아웅다웅은 <존 윅>이, 포스터의 제목과 극중 여러 액션들은 <킬 빌>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런 점이 훌륭한 레퍼런스를 재창조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작품만의 개성을 잠식하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호불호는 베를린 영화제 공개 후 외신 평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킬러들의 역동적인 액션 시퀀스가 장점인 <존 윅>의 싱글맘 버전 같다”는 칭찬과, “길복순 모녀에 관련된 서사에 진정성이 부족하고, 액션도 전형적이다" 와 같은 비판도 함께 존재한다.

그럼에도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의 연출력과 전도연의 인생 연기가 잘 결합된, 전체적으로 꽤 매력적인 작품이다. 감독이 직접 실제 배우 전도연의 일상을 관찰한 후 작품에 녹아냈다고 밝혔는데. ‘길복순 = 전도연’이라는 수식이 영화를 보는 동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다소 얕은 캐릭터성과 별개로 배우들의 호흡도 <길복순> 세계를 지켜보는 재미를 더한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초청받은 완성도와 작품만의 마라맛 매력이 살아있는 <길복순>은, 점점 하향평준화(?) 되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신선한 재미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보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