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변한다. 당연한 이치다. 때로는 사람이 늘 똑같으면 인간미가 없단 소리마저 듣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스타들이 갑자기 급커브를 할 때면, 어쩐지 깊은 회의감, 심하면 분노까지 느낀다. 특히 그 스타가 정의로운 캐릭터들을 연기했다면 더욱더. 그동안 사랑받았지만 이제는 가시는 길 배웅해야 할 것 같은 배우들을 소개한다.


스티븐 시걸, 이 와중에 러시아 훈장을?

스티븐 시걸의 대표작 <언더 씨즈>

90년대 급부상한 액션 스타 스티븐 시걸은 굉장히 독특한 배우였다. 연기라고 할 만한 연기는 거의 하지 않는데도, 관절 꺾기를 중심으로 한 특유의 액션 연기가 무수히 많은 액션 영화들 사이에서 그의 작품을 돋보이게 했다. 일본 아이키도의 후계자를 자처한 스티븐 시걸은 실제로 다양한 무술을 익힌 것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시걸권'을 창시해 총이나 타격을 중심으로 한 액션 배우들과 차별화를 선언했다. 그의 '무연기'는 배우로서 엄청난 단점이었지만, 오히려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그의 개성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에서 유명한 무표정의 시걸 밈.

그러나 스티븐 시걸은 결국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그의 몰락은 일시에 일어나지 않았는데, 비호감 행보가 하나씩 쌓이더니 어느 순간부터 그는 '퇴물'이란 극단적인 평가까지 받고 만다. 그의 몰락은 그저 연기를 못해서, 캐릭터가 한정적이어서, 그의 액션이 이제는 진부해서, 이런 식으로 영화인으로서의 한계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인간 스티븐 시걸이 팬들을 실망시키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그는 2010년대 들어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왔다. 첩보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유도를 연마한 푸틴에게 스티븐 시걸은 일종의 '동료'처럼 보였는지, 푸틴은 시걸을 러시아에 초청하고 여러 가지 활동에 참석시키는 등 남다른 우정을 표했다. 시걸 또한 여러 차례 러시아에 방문해 푸틴에게 적극적인 우정 공세(?)를 했다. 심지어 푸틴은 자신이 직접 스티븐 시걸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주고 '대미문화사절단'으로 임명했다(실제로 구글에 러시아 대미특사로 등록돼있다).

2016년 러시아 대통령 푸틴(왼쪽)과 만난 스티븐 시걸

이런 거야 배우 개인의 사생활 아니냐 싶지만, 문제는 시걸이 이때부터 러시아의 편을 들면서부터 시작됐다. 스티븐 시걸은 2017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찬성한다고 말하고, 2022년 4월에 러시아에서 자신의 생일 파티를 열고 푸틴의 측근들을 초대했다. 더불어 현장에서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했는데,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스티븐 시걸의 '찐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러시아 찬양 다큐멘터리를 찍는 등 친러시아 행보를 멈추지 않았고 2023년 2월, 푸틴 대통령이 선사하는 훈장까지 받으며 남은 팬들마저 '손절'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정치, 국제적 행보만이 문제인 건 아니다. 2010년대 말, 할리우드 미투 운동 중 스티븐 시걸 또한 다수의 여성 배우들에게 성추행과 성희롱의 가해자로 지목 받았다. 오디션을 빌미로 여성 배우들을 본인의 집이나 호텔로 끌어들여 성추행을 하거나, 비서로 채용한 뒤 마약 복용이나 자신의 성적 욕구 해소를 강요하는 등 치졸한 행색이 역력했다. 당시의 수많은 폭로에 묻힌 감이 있지만(시걸은 이미 비디오 영화판에서 활동 중이었고) 이때도 많은 팬들이 그의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의견을 표하는 등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견자단 “홍콩 시위 아닌 폭동” 발언에 아카데미까지 아웃 분위기

얼마 전 2월, 한국에도 방문한 중국 액션 배우 견자단. 그는 성룡, 이연걸 등과 같이 실제 무술을 단련한 무술인 출신 액션 배우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동갑내기 이연걸과는 <황비홍 2 - 남아당자강> <영웅> 등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는데, 이연걸에 비하면 국제적인 인지도는 다소 늦게 쌓으면서 '대기만성형 배우'로 언급되기도 했다. 배우이자 무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그의 액션은 훌륭한 타격감과 눈에 잘 들어오는 액션 동선 등으로 호평을 받아, 동양 액션이 약세에 몰린 현재 일당백 역할을 하고 있다.

동갑내기 이연걸과 견자단이 호흡을 맞춘 장면들. <황비홍 2 - 남아당자강>(왼쪽), <영웅>

하지만 최근 들어 그에게 실망하는 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적극적으로 친중국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견자단은 중국의 홍콩 탄압을 여러 차례 지지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견자단은 “시진핑 주석 옆에 설 수 있어서 영광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SNS에 홍콩 시위를 탄압하는 중국 경찰을 옹호하는 글을 리트윗하는 등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탄압하는 중국을 옹호해왔다. 홍콩에선 그의 행보에 이미 실망한 사람들이 불매 운동까지 전개됐지만, 견자단의 입지를 흔들 정도는 아녔다.

그래도 그동안은 자신의 직접적인 생각은 내비치지 않던 견자단은 2월 28일 남성지 'GQ'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는) 시위가 아니고 폭동이다”라고 말하면서 직접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유년기를 홍콩에서 보냈기에 홍콩 배우, 혹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할리우드 배우로 소개됐던 그는 최근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중국 국적을 선택했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해외 언론이 중국에 부정적인 뉴스에만 집중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홍콩 누리꾼들은 견자단을 시상자로 초청한 아카데미 측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다. 후 통(Fu Tong)이란 닉네임으로 홍콩 시위에 참여한 망명 홍콩인은 아카데미 측에 “인권 침해를 지지하는 견자단의 시상식 참여에 우려를 표한다. 오스카는 세계적인 시상식으로서 억압과 유린에 대한 지지가 아닌, 인권과 도덕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서한을 보냈다. 홍콩 누리꾼들도 견자단의 아카데미 시상자 초청 반대 청원을 올려 수천 명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아직 미지수지만, 예상 못한 후폭풍을 겪을 <존 윅 4>가 참 난감할 듯하다. 3월 말 전 세계 개봉하는 <존 윅 4>에서 견자단이 존 윅(키아누 리브스)의 오랜 친구 케인 역으로 출연하기 때문. 영화에서 그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이 발언이 영화에 큰 타격을 줄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마냥 반기는 팬은 이제 없지 않을까 싶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