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전단지인 줄

드라마의 비현실성

대치동에서 강사를 하는 지인이 있다. 그는 범계와 노원, 목동을 모두 돌아다닌 교육계의 장돌뱅이로서, 학원 선생님이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을 모두 겪었다고 한다. 그가 지적한 드라마 <일타스캔들>의 비현실성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의대에 목숨 건 학생들의 눈빛이 이렇게 초롱초롱 할 순 없단다. 물론 이 단계에서 최치열(정경호) 급의 외모를 장착하지 못한 자신의 외모를 탓했다. 학생들이 앉은 좌석의 간격이 널찍한 것 또한 어색한 지점으로 꼽으며, 학생들이 알아서 간격을 좁혀 앉는 데에는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경쟁심이 가장 크다고 했다. 입시 드라마로서 치열함의 디테일에서 아쉬움을 전했다.

드라마의 현실성

잘나가는 일타(일등 스타) 강사는 드라마처럼 여러 명의 스태프를 데리고 있다. 보조스태프들이 극의 지동희 실장(신재하)처럼 스케줄도 관리하고, 학생들이 궁금한 부분을 물어오면 답도 하기 때문에 대기업의 비서실 출신이거나 명문대의 석박사 학위를 가진 인력들로 포진되어 있다고 한다. 진이상(지일주)처럼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지난 2021년, 대성 마이맥의 국어 일타강사로 알려진 박광일 강사가 라이벌 강사에게 스태프를 동원하여 악플을 달고 구속됐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지만, 그들 또한 평범한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으이그


타이틀과 장르적 장치들

제목에 들어간 '스캔들'과 포스터 전면에 내세워진 남행선(전도연)과 최치열의 얼굴에서 드라마는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라는 것을 쉬이 집작할 수 있다. 그러면 제목 나머지 부분인 '일타'와 홍보에서 접할 수 있는 치열의 직업을 보면 남자 학원 강사와 전도연 배우가 맡은 역할의 여자 캐릭터가 로맨스를 나누는군? 하고 접근할 수 있다. 당연하다.

이 포스터를 접하고 범죄물을 예상했다면 당신은 예언가

로맨스, 혹은 멜로의 장치

주변 친구들이 누군가와 사귀는 전초전의 단계를 생각해보자. 물론 그 썸이 나의 일이 된다면 중차대한 사건이 된다. 하지만 다른 이의 썸이라면? 나보다는 흥미가 떨어지겠지만 어떻게 줄다리기를 하느냐에 따라 입맛이 돌 수도, 완전한 무관심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 사귀게 된다면 어떨까? 연인이 된 당사자는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이겠지만 친구들이 보기엔 심드렁하다. 그러나 둘이 다투게 되면 또 어떤가, 본인은 힘들지만 옆에서 듣는 사람은 일단 팝콘부터 와삭거리며 훈수를 두면서 초미의 관심을 보인다. 이는 남녀의 (혹은 동성) 사랑을 이야기하는 서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관객인 우리가 보기에도 흥미로운 것은 남녀가 갈등하는 상황이지, 사랑이 몽글몽글 잘 진행되는 부분은 아닌 것이다. 예부터 발전해 온 로맨스 연극, 소설, 영화, 드라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연애가 꽃 피는 부분을 보면서 선덕선덕하는 이유를 돌이켜보면 몬테큐와 캐플릿가의 지독한 증오와 이에 대한 회피가 있기에 가능하다. 남녀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가 긴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과장하자면 사랑하는 남녀가 어떻게 방해받는지를 보는 것이 멜로나 로맨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레퍼런스가 될 뻔했던 이 영화도 그런 요소로 가득하다.

연애물로써의 이야기

그렇게 연애물에서 등장하여 남녀 사이를 가로막는 벽은 곧 시대의 벽이 된다. 즉, 무엇이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느냐를 분석하면 현재 사회의 프리즘이 된다는 것이다. <일타스캔들> 두 주인공의 만남을 생각해보자, 최고의 실력을 가졌지만 인간관계는 협소하고 불면과 섭식장애로 건강을 위협받는 치열과 그에게 맞춤의 반찬을 만드는 행선이 만나게 된다. 연애물에서 최초의 아이디어는 두 사람이 첫 대면이라는 면에서 좋은 결을 품고 있다. 치열은 최고의 부와 실력을 가졌고, 그를 신뢰하는 스태프들이 있지만 진정 정을 나누는 사람은 없다는 데서 결함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한 사람의 실상이 그렇지 못하다는 면이라는 점에서 이입하거나 호기심을 띌 요건이 된다. 행선은 비록 친자식은 아니지만 조카 해이(노윤서)를 키우는 데만큼은 진심이다. 해이는 치열이 몸담은 학원의 올케어반에 합격하지만 부당하게 낙방한다. 이 또한 근본적으로 약자의 시각에서 입장을 이어나가는 대중의 속성을 보았을 때 안정적인 설정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등장한다.

신분차를 극복하는 사랑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유도 그것이다(하지만 또 다른 방해가 나오지). 영화 <러브 스토리> 포스터.


빌런들

우선 행선은 대치동 엄마로서 정보력이 부족하여 학원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는 다른 엄마와 비교했을 때 재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곤경은 계층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계층이란 치열이 극의 후반에서 부유하고 어리고 예쁜 소개팅녀를 다시 만났을 때 달리는 댓글에서 보이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반찬집 사장보다는 훨씬 '어울리는' 사람이네 라는 그 평가를 행선 또한 알고 있다. 1조 원의 경제 효과를 불러오는 남자에게 어울리는 여자에 대한 인식은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행선은 대외적으론 해이의 엄마이고 유부녀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된 치열과 행선 사이에는 통념이라는 벽이 생긴다. 게다가 남 얘길 좋아하는 대한민국의 도심에서의 소동이라니. 이마저도 지나고 나니 이제는 치열의 비서인 지실장이 방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실장이 활약하기 시작하니 이미 이야기는 14화까지 와버렸네.

빌런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것

연애물에서의 장벽은 사회를 반영한다고 했을 때,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지실장이라는 괴물이 탄생하게 된 한국이라는 입시지옥의 기괴한 집단에 대한 성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여러 무리수를 둔 지실장의 캐릭터는 억지의 길을 걷다가 결국 자살이라는 허망한 결말을 보여준다. 이윽고 엔딩에서 두 남녀의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장벽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두 주인공의 노력 없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자진적 퇴장으로 이루어진 일타범죄물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준수했던 설정들을 배신하는 느낌으로 마무리가 된 씁쓸한 연애물이라 하겠다.

역시나 캐릭터

그러나 이야기의 장점은 인상 깊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엄마가 실은 이모라는 사실을 알렸다가 상처 입은 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타개하는 해이의 변모였다. 해이는 이모를 곤경에서 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서며 이모의 정체를 다시 한번 밝힌다. 이 순간이 건전한 이유는, 조연의 결기가 단순 어시스트로 주인공을 돕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윤리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성장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물의 밀도는 높아지고 시청자는 캐릭터를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로 여기게 된다. 그것은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이에 목말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엔딩에서 굳이 모든 악역의 참회와 성숙을 보여주려 함으로써 자멸한다. 서진(장영남), 수아(강나언) 캐릭터의 변모는 긍정적 시도에도 되려 산통이 깨진다. 남녀 주인공과 해이의 성장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