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3월이 되면 극장가는 아카데미 특수를 노리는 영화들로 가득 찬다. 현재 국내 개봉 중인 영화 중 <더 웨일> <애프터썬> <TAR 타르> <아바타: 물의 길> 등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후보작들이고 <이니셰린의 밴시> <파벨만스>는 곧 개봉 예정이다.

이 영화들을 왜 주목해야 하는지, 그리고 3월 13일(한국시간) 열리는 올해 시상식에서는 어떤 작품이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될지 미리 예측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모든 부문을 살펴보면 좋겠지만 가장 주목할 몇 개 부문만 추려서 예측 포인트를 짚어봤다.

지금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그리고 올해 시상식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 기대된다면 함께 수상 결과를 예측해 보시길.


작품상 예측

95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블록버스터에 작품상 안길까

제임스 카메론 vs 톰 크루즈

<아바타: 물의 길>(왼쪽), <탑건: 매버릭>

2000년대 이후 거대 예산 규모의 대작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가져간 사례는 극히 드물다. 왠지 올해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2004년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으로 감독상과 작품상 모두를 가져갔던 해에 비견할 일이 올해도 생길까.

2022년은 <탑건 매버릭> <아바타: 물의 길> 두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죽어가던 극장가를 심폐소생해서 살려낸 해다. 전 세계 흥행 수익 14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탑건 매버릭>의 톰 크루즈는 스튜디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극장 상영을 고수한 끝에 사람들을 극장으로 다시 불러 모으는데 성공했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에 화답하듯 <아바타: 물의 길>로 22억 8천만 달러라는 놀라운 흥행 수익을 거뒀다. 역대 흥행 기록 영화 1위에 빛나는 <아바타>의 기록을 스스로 깨지는 못했지만 팬데믹만 아니었다면 뛰어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 두 편의 성과만으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다양성 VS 현실적 이슈

물론 흥행 성적과 완성도의 관계가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두 영화 모두 액션 스턴트와 촬영, 시각 특수효과에 있어서 최고의 기량을 펼쳤기에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수 있다. 그래도 작품상은 예술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면, 작품성과 화제성 면에서 올해 최다 부문 후보인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주목을 끄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나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강력한 후보작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왼쪽), <서부전선 이상없다>

두 작품 가운데 어떤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해이긴 하다. 매년 아카데미가 현재의 이슈와 다양성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상황을 고려해보면 <서부전선 이상없다>나 <이니셰린의 밴시>가 받을 가능성도 있다. 두 남자의 끔찍한 우정에 관한 영화를 다룬 <이니셰린의 밴시>는 전쟁 비극에 관한 우화처럼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

이번에는 넷플릭스가 작품상을 가져갈 수 있을까?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이전에 넷플릭스 작품이 후보에 올랐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작품이다. 작년에 <파워 오브 도그>가 최다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도 작품상을 <코다>가 가져간 데 따른 아쉬움을 올해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아카데미 역사상 리메이크작이 작품상을 가져간 사례는 없었다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이니셰린의 밴시>

<TAR 타르>

의외의 매운 맛 선택이 된다면 그건 <TAR 타르>가 받았을 경우가 될 것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달라진 일상과 세대 갈등, 여성 문제, 캔슬 컬처의 영향 등을 다룬 이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다면 미투 시대를 통과한 할리우드의 입장에서 대중에게 보여주는 어떤 메시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

영광은 거장에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을 일거에 잠재울 거장 한 분이 등판해 계시니,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다. 스필버그 감독 인생 50여 년을 반추하는 자전적인 이야기 <파벨만스>는 영화를 사랑하게 된 한 소년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 예술의 위대함, 특히 영화 매체의 매력을 드러내는 영화다. 영화를 좋아해서 이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드라마다. 블록버스터의 창시자인 스필버그 감독이 <시네마천국>에 비견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포인트. 하지만 그에게 감독상을 안기고 작품상은 다른 영화에 줄지도 모를 일이다.


배우상 예측

누가 받아도 일생 일대의 연기

드디어 콜린 파렐이냐 VS 다시 일어선 브랜든 프레이저냐

<이니셰린의 밴시> 콜린 파렐(왼쪽)과 <더 웨일> 브랜든 프레이저가 올해 남우주연상 유력 후보

여러 매체들이 다룬 예측 기사와 작품의 화제성, 그리고 이전에 열린 수많은 시상식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의 경향을 따져봤을 때 올해 예상되는 강력 후보는 <이니셰린의 밴시>의 콜린 파렐과 <더 웨일>의 브랜든 프레이저다.

거대 자본의 SF 블록버스터, 슈퍼 히어로 장르 영화와 저예산의 독립예술영화 영역을 오갈 수 있는 배우는 몇 없다. 아일랜드 출신의 콜린 파렐은 전작 <애프터양>이나 <킬링 디어>에서도 충분히 좋은 연기를 펼쳤지만 아카데미 상복은 없었다. 이미 이번 영화로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과 올해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기 때문에 오스카까지 거머쥐면 커리어의 정점을 제대로 찍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더 웨일>의 브랜든 프레이저는 이번 영화를 통해 본인 스스로 연기 인생에 큰 좌절을 겪고 난 후에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수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매년 시상식에서 누군가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뜨겁게 받게 된다면 올해 그 인물은 브랜든 프레이저가 될 것 같다.

미친 연기 케이트 블란쳇이냐 VS 전설의 레전드 양자경이냐

여주우연상 강력 후보는 <TAR 타르> 케이트 블란쳇(왼쪽)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양자경

올해 여우주연상은 <TAR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 대결 구도로 보인다. <파벨만스>의 미셸 윌리엄스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줬으나 앞선 두 배우의 활약과 존재감에 비하면 다소 밀리는 형국이다. <TAR 타르>의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는 영화를 본 많은 관객이 실존 인물로 오해할 만하다. 케이트 블란쳇은 여성으로서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었을 수많은 역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권력자로서의 권위를 뿜어내는 리디아 타르라는 캐릭터를 마성의 연기로 보여준다.

양자경은 현존하는 최고의 여성 액션 스타다. <예스 마담> 시리즈부터 보여준 액션 스타로서의 면모가 이번 영화에서도 빛났다. 만일 그가 아시아 여성 배우 최초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로서 영광을 누릴 수 있다면 영화팬으로서 너무나 멋지고 응원할 일일 것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이미 여우주조연상을 모두 수상한 배우이기 때문에 양자경에게 양보해도 괜찮지 않을까. 너무 팽팽한 대결이라서 누구의 손도 쉽게 들어주기가 어렵다.


감독상 예측

거장의 귀환 VS 시네아스트의 세대교체

95회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올해 감독상 후보에 오른 5개 작품은 루벤 외스틀룬트 감독의 <슬픔의 삼각형>을 제외하면 모두 작품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 만큼, 어떤 작품이 감독상과 작품상을 모두 가져갈지, 혹은 누가 나눠 가져갈지가 주목할 점이다. <이니셰린의 밴시>의 마틴 맥도나 감독은 올해 첫 감독상 후보에 올랐는데 고독한 남자의 내면을 통해서 전쟁의 기원과 비극적인 현실을 통찰하는 걸작을 만들었기 때문에 감독상을 가져가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 콤비의 수상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점쳐지고 있다. 이들 감독들은 할리우드의 이단아 같은 존재들로 자신들만의 B급 감성을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드문 케이스. 물론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이미 두 차례나 수상한 <파벨만스>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강력한 후보지만 둘 중 누가 받는데도 아쉬울 게 없는 선택이 될 것 같다. 거장의 귀환을 환호하거나 새로운 시네아스트의 탄생을 축하하거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예측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감독조합상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이 받았고 골든글로브 감독상은 스필버그 감독이 가져갔기 때문에 올해는 더 예측이 어렵다.


김현수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