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의 이야기이자, 가족의 죽음에 미숙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아주 느린 이야기.” 김현정 감독은 <흐르다>를 부녀의 느릿한 이야기로 설명한다. <흐르다>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여러 영화가 스크린을 채운 동안 아빠와 딸 사이를 천천히 바라보며 더디게 걸어온 작품이다. 모녀만큼 역동적이진 않지만 그 못지않게 복잡한 감정으로 얽힌 이 까다로운 관계를 영화는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흐르다>는 다가가는 대신 한발 물러선다. 돋보기를 들지 않고 멀리서 가족을 바라본다. 언뜻 평범한 답 같지만 감독의 전작 <나만 없는 집>(2017)과 <외숙모>(2020)를 떠올리면 이 방법의 특별함이 보인다. 모녀 혹은 부녀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으나 두 단편은 가족 구성원과 가족 공동체 사이의 마찰을 그린다는 점에서 <흐르다>와 비슷하다. <나만 없는 집>에서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은 어린 세영은 언니는 물론 다른 가족들에게도 맘 편히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다. <외숙모>는 외삼촌의 기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외숙모를 통해 여성에게 가족이 어떻게 억압적으로 기능하는지 살펴본다. 여전히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이 구성돼야 한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아빠와 딸의 이야기는 가족의 구조와 관성에 관한 언급을 포함할 운명을 타고난다. 종종 인물보다 그가 놓인 공간을 더 면밀히 관찰해왔던 김현정 감독의 카메라가 여기 도착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흐르다>의 진영(이설)도 <나만 없는 집>의 세영처럼 둘째 딸이다. 물론 더는 서러움에 목 놓아 울지 않는 서른 살 어른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진영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성인이며 여전히 취업준비생이다. 취업 스터디를 하면서 부모님이 운영하는 공장에 가끔 일손을 도우러 나가는 게 진영의 일과다. 외국계 기업을 지망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원하는 걸 확실하게 아시는 게 진짜 멋있어요”라며 누군가가 보내는 선망의 눈길을 받지만 엄마 해수(안민영)에게 진영은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다. 진영은 원하는 걸 향해 가는 게 아니라 그저 흐르는 시간에 미적지근하게 잠겨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활기차게 무언가 하기보다 누워있는 때가 많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고개를 먼저 숙인다. 그건 아빠 형석(박지일)도 비슷하다. 그는 거실에 누워 뉴스 보는 모습으로 영화에 처음 등장한다. 아내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딸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는 형석은 전형적인 한국 가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거래처 사장에게는 쩔쩔매면서 공장 노동자에게는 함부로 호통치는 면모를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각자 무기력하게 지내는 진영과 형석은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 집의 중추나 다름없는 해수가 죽는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굵직한 사건을 포함하고 있지만 영화는 시종 담담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절제돼있다. 별다른 설명 없이 긴 암전으로 전환을 알린 뒤 영화는 단 한 번의 장례식 장면 없이 바로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는 자매의 모습을 비춘다. 여기에 눈물과 절규 같은 건 끼어들지 않는다. 삶은 그저 흘러갈 뿐이며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상기하듯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흐르는 대로 놔두면 과연 이전처럼 살아질까? 진영과 형석은 해수의 침대에 번갈아 누워보며 그녀의 자리를 가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해수가 그랬듯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진영은 더 늦기 전에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작정이고 형석은 대책 없이 공장의 규모를 키우는 데만 욕심을 부린다. 첫째 딸 소영(강진아)은 집을 떠나 가정을 이룬 지 오래다. 돌이켜보면 해수는 모임을 부러 만들고 서로 말 걸게 하며 이들을 가까스로 묶어두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무게중심이 사라지자 가족은 소리 없이 흔들린다. 하지만 곧장 허물어지지는 않는다. 캐나다에 가기 전 진영은 엄마가 하던 공장 일을 잠시 맡는다. 아빠와 딸은 그제야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마주 보기 시작한다.
찬찬히 뜯어보면 부녀는 제법 닮았다. 호리호리한 몸에 뚱한 표정, 모로 누운 자세까지 비슷하다. 함께 트럭을 타고 돌아다니며 해수의 계좌를 정리하고 공장을 정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둘 사이가 그리 최악은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흐르다>는 가족의 화해와 회복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해수의 역할을 누구도 제대로 대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딸의 눈에는 아빠의 못난 모습만 더 많이 들어온다. 아빠는 딸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난 척한다고 여긴다. 형석의 욕심과 고집은 결국 공장의 부도 위기마저 초래한다. 서로 못마땅해하면서도 큰소리는 안 내던 진영과 형석은 후반부에 이르러 그동안 쌓아둔 감정을 터뜨리고 만다. 상황은 점차 악화되지만 영화엔 이상한 위안도 함께 깃든다. <흐르다>엔 인물들의 대사로만 등장하는 다른 두 가족이 있다. 소영은 시댁과 사이가 좋지 않아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도 “그 집엔 얼굴도 못 비추”고 형석은 친형제들과 진작 사이가 틀어져 “그 인간들 얼굴도 안” 본다. 스쳐 지나가는 이 대사들은 가족의 불화가 그리 유별난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꼭 가족의 얼굴을 보며 살지 않아도 인생은 굴러간다. <흐르다>는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끝내 “우리는 가족”이라고 외치지 않고도 서로가 가족일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을 발견한다.
인물로부터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는 <흐르다>의 카메라엔 집, 공장, 사무실 같은 공간의 세부가 가득 담긴다. 거실에 펴진 형석의 이부자리, 손톱만큼 열어둔 진영의 방문, 공장 곳곳에 놓인 빵과 우유 등은 그 자체로 가족의 일상과 인물의 상황을 가늠하게 하는 요소다. 한편 영화엔 사람 없이 텅 빈 집과 공장의 광경도 등장한다. 여기선 형석이 간간이 보는 뉴스가 전했던 자영업의 위기가 서늘하게 드러난다. 진영 역시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한 동시대 청년들의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흐르다>의 인물들은 사회적 존재로서 각자의 불안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가족은 더 이상 울타리가 돼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영화는 무턱대고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강렬한 사건에 섣불리 의지하는 법 없이 덤덤한 태도를 유지한다. 첫 단편 <은하비디오>(2015)로 이름을 알린 후 대구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작업을 지속해온 김현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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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