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어>를 위해 구현한 에어 조던 초기 모델

당신은 나이키에서 나온 에어 조던을 신고, 맥도날드에서 빅맥 세트를 주문하고는, 아이폰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을 하염없이 훑고 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인구 중 누군가는 이런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나이키, 맥도날드, 애플과 페이스북은 당신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삶에 깊숙하게 침투되어 있다. 에어 조던 시리즈는 여전히 리셀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매물이며, 하루가 멀다하고 애플의 새로운 아이폰에 관한 유출 기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세상 모든 인간관계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안에 있다고 여겨질 정도다.

갑자기 왜 다른 브랜드도 아닌 나이키, 맥도날드, 애플, 페이스북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궁금할 것이다. 최근 할리우드의 트렌드는 대기업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기업에서 마케팅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는 ‘브랜드 영화’ 전략과는 다르다. 후자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대기업이 단편 영화를 제작하여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라면, 전자는 영화 연출자와 제작사가 해당 기업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 상업 영화로 그 이야기를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난관을 헤쳐 나가는 기업가 정신, 혁신적인 상품을 발명하는 우연한 기회들, 협상을 두고 치열하게 머리를 싸매는 전략 싸움과 권력을 두고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파워 게임까지. 세계적인 기업들의 이야기는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 소재로 가득 차 있다. 나이키, 맥도날드, 애플, 페이스북. 이 네 기업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이 기업들을 다룬 영화들을 살펴보자!


나이키 - <에어> dir. 벤 애플렉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할리우드의 최정상급 배우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이 설립한 프로덕션 컴피니 ‘아티스트 에퀴티’의 첫 작품은 바로 나이키의 에어 조던 발매를 둘러싼 후일담을 다룬 <에어>(2023)였다. <에어>는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운동선수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무조건 거론되는 NBA의 레전드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 간의 계약 일화를 다룬다. 당시 농구화 시장의 점유율은 컨버스가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컨버스는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라는 당대 최고의 NBA 스타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었으며, 그들의 유명세를 통해 농구화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나이키는 2위도 되지 못했다. 독일의 아디다스가 간결하고 특징 있는 디자인을 통해서 2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키는 스타급 선수들이 그다지 선호하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러닝화로는 압도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었지만, 농구화는 떨어지는 실용성과 적은 구매층 때문에 지지부진한 성과를 기록하고 있었다.

필 나이트(벤 애플렉)

나이키의 선수 스카우터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 이 상황을 타개할 스타급 선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젊은 선수의 이름은 마이클 조던이다. 하지만 조던은 아디다스를 선호했고, 나이키와는 절대 계약하려 하지 않았다. 나이키의 CEO 필 나이트(벤 애플렉) 또한 지지부진한 농구화 부서에 많은 스폰서 비용을 지출하려 들지 않았다. 소니 바카로는 25만 달러라는 적은 예산과 한참 떨어지는 브랜드 경쟁력에도 오직 조던과의 계약에 사활을 걸었다. 오로지 조던만을 위한 신발을 제작하는 것. 다른 브랜드들에게 스폰서 계약은 광고 효과와 매출이라는 의미만을 지녔지만, 마이클 조던의 어머니 들로리스 조던(비올라 데이비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이 지닌 엄청난 재능과 스타성을 알았고, 나이키가 조던에게 제시한 ‘오로지 그만을 위한’ 조건은 그녀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그렇게 에어 조던이라는 브랜드가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코트 위에서만 쓰였던 농구화는 에어 조던을 시작으로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자 거대한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에어>는 에어 조던이라는 전설의 시작을 그리면서 동시에 마이클 조던이라는 역사의 아이콘을 경유하여 80년대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페이스북 - <소셜 네트워크> dir. 데이비드 핀처

이제는 ‘휴머노이드보다 더 불쾌한 골짜기처럼 생긴 사람’이라는 밈으로 전락해버린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지만, 영화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던 2010년 당시 마크 저커버그의 일대기는 실리콘밸리의 전설과도 같았다. 여자친구에게 터무니없는 비하 발언을 해서 차이고, 열등감에 하버드 웹을 해킹하여 여성들의 얼굴을 평가하는 사이트 ‘페이스매쉬(Facemash)’를 만들기나 하는 하버드 출신 너드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가 세계를 주무르는 페이스북의 창립자가 되는 일련의 이야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는 <에어>처럼 화려하고 집요한 발명의 순간을 다룬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창립하는 동안 초기 동업자인 왈도 새버린(앤드류 가필드), 초창기에 사업을 제안한 윙클보스 형제(아미 해머)에게 줄소송을 당하면서 점차 관계가 파국으로 가는 모습을 그린다.

마크 저커버그(오른쪽, 제시 아이젠버그)와 그의 절친 왈도(앤드류 가필드)

<소셜 네트워크>에서 보이는 마크 저커버그의 모습은 유능하지만 동시에 독선적이고 인간관계에 무심하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페이스북을 만든 창립자지만, 동시에 주변인들에게 그는 늘 상처를 주거나 가차없이 그들과의 관계를 끊는 등 매정한 면모를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는 전설적인 페이스북의 창업 스토리가 아니다.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사수하는 동안 그의 동업자들과 관계가 붕괴되고 틀어지며 끝내 서로 돌아서는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상 모든 이들의 관계를 쥐락펴락하는 존재지만, 동시에 그는 자기 전 여자친구 에리카(루니 마라)도 잊지 못하며, 그의 절친이었던 왈도와의 관계에서도 파국을 맞이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뒷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춥고 외롭다.


애플 - <스티브 잡스> dir. 대니 보일

마크 저커버그는 이제 일론 머스크와 함께 실리콘 밸리의 밈이 되었지만, IT 업계에서 여전히 전설적인 인물로 회자되는 존재는 따로 있다. 바로 아이폰을 통해 전 세계인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스티브 잡스다.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 에어팟… 세계의 절반은 애플의 제품을 사용한다. 애플은 잡스 사후에도 새로운 아이템을 출시했지만, 아이폰과 맥북, 아이패드 등 애플의 주력 상품은 잡스가 생전 기획하고 출시한 그때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잡스가 처음으로 아이폰 출시를 발표하는 2007년 1월 9일의 제작 발표회는 세상을 바꾼 프리젠테이션이라고 회자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 다룰 영화는 2013년에 발표된 애쉬튼 커쳐 주연의 <잡스>가 아닌 2015년 대니 보일의 작품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마이클 패스벤더)

<잡스>와 달리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윌터 아이작슨이 잡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저술한 전기 「스티브 잡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증이 훨씬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쉬튼 커처와 마이클 패스벤더 둘 다 뛰어난 배우지만, 패스벤더가 훨씬 잡스와 유사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으며, 할리우드에서 인물을 가장 빼어나게 묘사하는 각본가 아론 소킨과 실화 기반의 영화를 만드는데 능한 대니 보일이 합류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잡스의 전 생애를 다루기보다는 그가 세상을 바꾸는 충격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1984년의 매킨토시 이벤트, 1988년 NeXT 이벤트, 1998년 아이맥 이벤트 직전 30분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는 점이 잡스를 대변하기 훨씬 빼어난 작품이었다.


맥도날드 - <파운더> dir. 존 리 행콕

맥도날드의 정수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아이언맨이 그토록 좋아했던 치즈버거. 경제 지수로까지 활용되는 맥도날드의 시그니쳐 빅맥. 누군가는 맥도날드의 오리지널이라고 홍보하며 판매하는 1955 버거를 꼽기도 한다. 적어도 <파운더>를 보고 난 뒤라면 1955 버거를 더는 먹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파운더의 영문 표기는 쿼터 파운드 버거에 담긴 무게 단위 파운드(pound)가 아니라 창립자를 나타내는 Founder다. 즉, <파운더>는 맥도날드의 창업주 레이 크룩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다. 시놉시스만 읽는다면 휘황찬란한 금색 아치의 왕국을 만든 맥도날드의 소박한 첫 시작을 다루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운더>는 프랜차이즈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950년대의 맥도날드를 통해 자본주의의 서늘함을 그려낸다.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

맥도날드의 창업주로 알려진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은 사실 멀티 믹서를 판매하는 외판원 출신이었다. 그는 우연히 한 업장에서 멀티 믹서를 무려 8대나 시킨 사실을 알고 해당 매장을 방문하기로 한다. 크록이 방문한 곳은 바로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는 버거집 ‘맥도날드’였다. 1950년대에 포드식 분업 공정을 통해 30초 만에 햄버거를 만드는 광경을 본 그는 질긴 구애 끝에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는다. 그는 지점을 늘리고 세트 메뉴를 개발하는 등 사업 확장에 몰두하지만, 이 과정에서 본점을 운영하는 창업자 맥도날드 형제와 사사건건 부딪치게 된다. 그는 부동산을 사들여 가맹점주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자신의 프랜차이즈 업장을 1호점으로 명명하는 등 맥도날드 형제의 정통성을 점차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1955 버거를 통해 맥도날드의 정통성을 1955년으로 규정하는 지금의 맥도날드는 사실 맥도날드 형제가 아닌 레이 크룩이 완벽하게 맥도날드의 지분을 잡아먹은 해다. 사실상 <파운더>는 유능하지만 계약에 둔한 형제가 계약에 능한 레이 크룩에게 자신의 본업을 완벽하게 박탈당한 자본주의의 맹점을 이야기하는 한 편의 호러 무비가 되었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