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가 세 번째 ‘끝내주는 믹스’ 앨범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가히 시리즈 최고의 엔딩이었다고 불릴 만하다. 제임스 건 감독의 색채가 강하게 투영된 프로젝트로 시작한 이 시리즈는 한때 그가 3편 연출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는(정확히는 디즈니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져 긴 공백을 가졌다. 하지만 제임스 건은 다시 돌아왔고 팬들에게 3편을 남긴 채 홀연히 DC로 떠났다. 이제 가디언즈의 활약은 끝났지만 그들이 여정은 디즈니플러스에 박제되어 언제든 다시 찾아볼 수 있다.
되돌아보면, 주인공 '스타로드' 피터 퀼이 지구에 있을 때 즐겨 들었던 팝송 모음집의 이름 ‘끝내주는 믹스’라는 표현은, 결국 (가모라의 표현이지만) ‘우주 최고의 얼간이들’ 조합이 얼마나 근사했는지에 관한 메타포였던 것이 아닐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상징하는 삽입곡들과 명장면, 특유의 고급스런 유머에 관한 사소한 사실 등 우리가 사랑했던 이 시리즈의 잡다한 정보를 한자리에 모아 봤다. 3편에 관한 스포일러는 없으니 안심하고 읽으실 수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최고의 곡은?
‘Come and Get Your Love’ - 레드본(Redbone)
이 시리즈는 결코 음악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음악이 곧 캐릭터였으니까. 피터 퀼은 어릴 때 욘두에게 납치되어 우주를 떠돌며 34년 동안 용병집단 라바저스 생활을 하게 된다. 지구를 떠나던 날 그가 갖고 있던 소니 워크맨의 믹스 테이프에 담긴 당대 명곡들은 피터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을까. 그건 아마도 엄마와의 추억이자, 피터 자신이 지구인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호적 등본 같은 의미였을 거다. 피터는 2편에서 아버지를 만난 뒤 음악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1편에서 일등급 보안 감옥 퀼른에 수감됐을 때는 교도관이 워크맨을 만지작거리자 블루 스위드의 1973년 곡인 ‘Hooked on a Feeling’이 내 노래라면서 역정을 낸다. 그러다 흠씬 두들겨 맞기도 했지만 여기서 우린 피터의 음악을 향한 강력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 곡의 싱글 발매 연도(1974년)가 아니라 굳이 녹음한 해(1973년)을 언급할 정도로 세심한 덕후였던 것이다.
시리즈에 등장했던 수많은 명곡 중 단 하나의 곡을 고르라는 건 가혹한 주문이다. 1편에서 로난 일당과의 전면전이 펼쳐지던 후반부, 가디언즈 멤버들이 일렬로 우주선 복도를 걸어 나오던 순간에 슬로우 모션과 맞물려 삽입됐던 런어웨이스의 ‘Cherry Bomb’도 최고의 삽입곡 중 하나다. 2편에서 피터가 가모라의 꽉 닫힌 마음의 문을 아주 조금 열게 했던 두 사람의 춤 장면에서 흐르던 샘 쿡의 ‘Bring It On Home to Me’는 언제 들어도 아련하다. 왜냐하면 우린 이제 스타로드와 함께 어떤 멀티버스에도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가모라를 추억해야 하니까. 그래도 신중하게 한 곡 고르자면, 피터 퀼이 영화에 처음 등장하던 순간에 ‘Come and Get Your Love’가 흘러나오던 순간을 시리즈 최고의 순간 첫 번째로 꼽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스타로드가 대형 스크린을 횡으로 가로지르면 허공에 영화의 타이틀 로고가 등장한다. 사실 그 순간 이 시리즈 전체의 스타일, 분위기가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3편의 오프닝에 흘러나오는 그 ‘명곡’의 쓰임도 기가 막히다. 어떤 곡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극장에서 감동을 직접 느껴보셔야 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최고의 명대사는?
“이제 뭘 할까? 착한 일 나쁜 일? 그럼 둘 다!”
가디언즈의 멤버인 스타로드, 가모라, 드랙스, 로켓, 그루트는 사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특히 드랙스는 가족을 몰살시킨 로난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타노스의 딸이자 로난의 수하이기도 했던) 가모라와 결코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고, 드랙스뿐만 아니라 퀼른 감옥의 모든 범죄자들이 가모라에게 이를 갈고 있었을 정도로 그녀는 못된 캐릭터였다. 로켓과 그루트의 성격도 괴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드랙스의 (어떨 땐 여성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는) 맥락 없는 이상한 농담도 이들의 의사소통을 저해하는데 한몫을 단단히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인피니티 스톤을 꿀꺽하려는 로난을 무찌르고 심지어 셀레스티얼인 에고도 무찌르고, 피터를 향한 욘두의 가슴 찡한 희생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이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신뢰하게 된다.
3편에서의 이들의 우정과 서로를 향한 헌신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인데 가장 가디언즈다운 대사를 하나 꼽으라면 바로 1편 마지막 대사인 스타로드의 말을 선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피니티 스톤을 무사히 구해낸 스타로드가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 위해 떠날 때 “이제 뭘 할까? 착한 일 나쁜 일?”이라고 말하자 가모라가 뒤에서 듣더니 “우린 널 따를 거야, 스타로드”라며 그를 리더로서 인정한다. 비록 인피니티 사가 동안에 가디언즈의 리더 자리를 토르가 잠시 위협한 적 있지만 제임스 건 감독이 창조한 가디언즈의 대장은 결국 피터 퀼, 스타로드 뿐이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와 잭슨 파이브의 곡 또한 역시 인상적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최고의 조연은?
‘누구도 실망시킨 적 없는’ 욘두 우돈타
마이클 루커가 연기하는 라바저스의 외인구단 리더 욘두는 피터를 셀레스티얼 에고의 음모에서 구해낸 인물이자 피터를 키워준 장본인이다. 욘두는 피터가 메리 포핀스 같다는 농담도 무턱대고 받아줄 정도로 아량(?)이 넓고, 피터가 아무리 뒤통수를 치고 도망쳐도 결코 죽이지는 않을 정도로 마음이 따뜻하다. 1편에서는 마치 세미 빌런처럼 등장했던 욘두는 2편의 엔딩에서 차원이 다른 캐릭터로 거듭난다. 미성숙하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도 하는 가디언즈 전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정신적 지주는 욘두였다는 것을 가디언즈 멤버들도 관객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욘두는 피터에게 마지막 남은 우주복을 건네면서 “자식을 낳았다고 다 아빠는 아니지. 너를 제대로 키우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감동적인 이별의 순간을 선사한다.
살아 생전에 욘두를 오해했던 라바저스 연합도 그가 사실은 누구도 실망시킨 적 없는 라바저스였음을 인정하게 되는데, 욘두는 3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그의 흔적은 3편까지 이어진다. 그 이유는 로켓과의 관계 때문이다. 욘두는 2편에서 로켓에게 “너는 사랑을 겁내는 거다. 사실 터프한 척하지만 겁쟁이다. 누구든 잘해주면 멀리하는데 그 이유가 사랑받으면 허무함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때아닌 심리 상담을 해주게 되는데 “널 만든 과학자들은 너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며 냉혹하게 현실을 직시할 것을,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 로켓의 상처는 3편의 이야기로 이어져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든다. 이렇게 욘두는 가디언즈 전체의 정신적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또한, 욘두는 피터에게 300곡이나 들어있는 음악 재생 기계 준(Zune)을 남겼고, 이 기계는 3편에서 아주 결정적인 활약(?)을 하는 소품으로 등장한다. 욘두의 화살도 3편에 재등장하는데 “머리로 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쏘는” 그의 화살이 어떤 식으로 재등장하는지는 극장에서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최고의 개그는?
케빈 베이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케빈 베이컨에 관한 농담에 웃을 수 있는 관객이라면 이 시리즈의 진정한 팬이라 할 만하다. 혹시 3편으로 시리즈가 마무리된 지금도 대체 그에 대한 언급이 어떤 맥락의 농담인지 이해와 공감을 할 수 없어 혼란스러운 관객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농담의 핵심은 지구에 살던 피터가 좋아하던 것, 그의 취향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케빈 베이컨 배우 본인도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까지 시리즈 내내 등장하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2022년 11월 영화 매체 '콜라이더'의 기사에 따르면, 케빈 베이컨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 개봉 당시에 자신의 이름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고 극장에서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고 한다. 자신의 출연작 <풋루즈>(국내 개봉명 <자유의 댄스>)가 주인공 피터 퀼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는 언급, 가모라가 로난과 싸우다가 “우리가 케빈 베이컨 같아”라고 언급할 때 실제 그 장면을 보는 케빈 베이컨의 기분이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본인은 아주 즐거워했던 것 같다. 디즈니플러스에서만 볼 수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의 마지막 작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에 출연까지 한 것을 보면 케빈 베이컨 역시 충분히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이 말인즉슨, 3편의 케빈 베이컨 농담을 제대로 즐기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을 꼭 보고 가야 한다는 말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사상 가장 슬픈 이름
‘89P13’
가장 멋지고 재미있는 순간을 소개하다 갑자기 가장 슬픈 부분을 소개하려니 마음이 무거운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문을 닫는 아름다운 엔딩의 주인공은 로켓이다. 로켓의 이름은 수많은 실험체 명칭 중 하나인 ‘89P13’다. 이에 대한 언급은 1편에서부터 종종 등장했기 때문에 스포일러는 아니다. 로켓은 1편에서 퀼른 감독에 수감됐을 때 노바 프라임의 군대로부터 “하등동물에 대한 불법 유전자 실험의 산물”이라는 신분이 드러난 바 있다.
가디언즈 멤버들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시작된 이래 지금껏 줄곧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엄마를 잃고 지구를 떠났던 피터, 타노스에 의해 삶이 무참히 짓밟히고 조종당해야 했던 가모라와 네뷸라, 역시 타노스의 수하 로난에게 가족을 잃어야 했던 드랙스, 셀레스티얼 에고 밑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지 못했던 맨티스까지, 가디언즈의 멤버들 모두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함께 하는지, 또 나아가 각자의 삶 속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지켜보는 것이 바로 이번 3편의 가장 큰 재미일 것이다. 그 중심에는 너무나 멋지고 단단한 캐릭터 로켓이 있다.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