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동> 예고편 캡처

1980년 5월 24일, 광주 외곽 송암동에서 벌어진 일

1980년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의 집단 발포.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1980년 5월 24일, 광주 외곽의 송암동 일대.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었다. 군인끼리의 오인사격이 발생한 것이 시작이었다. 계엄군 간 벌어진 오인 교전으로 인해 공수부대원 9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당하자, 공수부대는 화살을 무고한 시민에게 돌렸다. 그 후, 마을 주민들은 이유 없이 보복 사살을 당했다. 공수부대는 비무장, 무방비 상태의 시민들을 폭행하고 체포했으며, 구타와 사격으로 보복 학살을 감행했고, 1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까지가 ‘송암동 사건’의 공식적인 기록이다. 그런데, 민간인 희생자는 기록과는 달리,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송암동 민간인 학살 사건은 4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축소, 은폐로 인해 제대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송암동> 프로모션 포토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영화 <송암동>의 이조훈 감독도 그랬다. 지난 8일 진행된 <송암동> 기자간담회에서 이조훈 감독은 스스로가 “영화감독인지, 조사관인지, 형사인지 모를 정도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왔다고 밝혔다. 그는 송암동 사건을 알게 되니, 마치 늪에 빠져들 때처럼 더 깊숙한 곳으로 닿게 되었다고. 영화 <송암동>은 늪 깊숙이, 어딘가에 자리한 진실에 닿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너도 나가면 죽는다”라는 말을 들었던 8살 아이.., 43년 후 <송암동> 연출

<송암동>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중,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5월 24일 광주 송암동 일대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전말을 추적하는 논픽션 시네마다.

<송암동> 포스터

연출과 극본을 맡은 이조훈 감독은 5·18 당시 광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광주 출신 영화인이기도 하다. 이조훈 감독은 당시 광주 송암동 근처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그는 당시 또래였던 전재수, 방광범이 죽었다며 “너도 나가면 죽을 수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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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훈 감독은 23년 차 다큐멘터리스트다. 그는 MBC <시사매거진 2580> 취재 PD, KBS <생방송 시사투나잇>, KBS <생방송 세계는 지금>, KBS <똑똑한 소비자 리포트>, KBS <추적 60분> 등의 외주 제작 PD로 활동해왔다. 그 후, <블랙딜>, <서산개척단> 등 총 네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박정희 정권의 국토개발사업에 강제 동원된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이야기를 알린 <서산개척단>은 2018년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이조훈 감독은 지난 2020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다큐멘터리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을 공개한 바 있다. 다만, 두 번째로 광주를 다루는 <송암동>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다. 이 감독 역시 다큐멘터리로 <송암동>을 제작하고자 했지만, 남아있는 사진 한 장 없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극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특전사 K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

영화는 당시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의 새로운 학살 증언을 통해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건에 대해 증언한 특전사 K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송암동 일대의 진상에 대해 진술했다.

<송암동> 예고편 캡처

영화 <송암동>은 이 ‘송암동 민간인 학살’의 타임라인을 좀 더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재연해, 어디서부터 잘못돼 당시 사건이 벌어졌는지를 심층적으로 추적한다. 더불어 은폐된 학살의 증언을 추가로 확보해 실증하는데 주력한다.

불편하고, 끔찍하고, 참혹하지만 꼭 알아야만 하는 진실이 있다. 이조훈 감독 역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증언을 듣는 일이 녹록지 않았음을 밝혔다. 감독은 사건을 조사하던 중 트라우마가 생겨, 현재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조훈 감독은 송암동 사건이 앞으로도 계속 조사가 진행되어야 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는 “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들을 2년간 만나러 다녔다. 피해자를 포함해서, 계엄군까지 약 100여 명을 만났다. 지금도 만나고 있다, 목격자들을. 복수의 증언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도 계엄군들이 이야기를 잘 하고 있지 않다. 앞으로도 조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을 독려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라며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를 터놓았다.


“내가 직접 사건 현장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바탕으로 재연

<송암동> 예고편 캡처

영화는 1980년 5월 24일, 항쟁의 일곱째 날 광주 송암동에서의 사건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기록물에 가깝다. 영화는 송암동 마을 주민과 시민군, 계엄군의 3가지 시점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영화의 말미에는 실제 증언자의 모습을 담았다. 이 부분은 영화가 실제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되었음을 관객들에게 알려주는 수단이다.

이조훈 감독은 “시나리오의 90% 정도는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대사도 증언을 그대로 바꾼 것이다. 영화를 보시고 난 후, (영화가) 정말 그분들의 증언을 그대로 재구성한 것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으셨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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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다큐멘터리 외길을 걸어왔던 이조훈 감독은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을 터. 이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었던 본인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그는 “조사 활동만 25년을 하신 베테랑 팀장님에게 여쭤봤다. 팀장님은 상상이 잘 안될 때,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자신이 그 상황, 그 위치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마치 <비밀의 숲>에서 검사(조승우)가 시뮬레이션하듯이, 스스로가 가해자나 피해자의 위치에 들어가서, (상황을 그려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 방식을) 따라 해봤다"라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범행 현장에 다시 간 시목(조승우)이 스스로 살인범이 된 상상을 하는 모습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을 더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송암동> 예고편 캡처

그날, 송암동에서 왜 그렇게 많은 민간인이 죽었을까. 그런데, 왜 신고가 안됐을까. 이조훈 감독은 “마을 사람들이 죽었으면 신고가 되었을 텐데, 피난민 일가족이 한꺼번에 학살을 당해버리면 누구도 신고할 수가 없어서 많이 사라졌던 것 같다”라며, 희생자가 80여 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논의를 통해 조사가 계속 진행되었으면 한다. 진실은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서 꼭 밝힐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많은 힘을 실어 주셨으면 한다”라고 영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영화 <송암동>은 올 하반기 개봉을 목표로 현재 시민 후원을 받고 있다. 18일에는 광주에서 특별 상영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