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관객수 코로나19 이전 절반에도 못 미쳐…

정부가 6월부터 코로나19 위기 경보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 극장가 분위기는 여전히 심각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며칠 전 ‘2023년 4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현재 극장가 상황이 아찔하다. 2023년 1월부터 4월까지의 누적관객수가 2017년에서 2019년 사이 기간 평균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8%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한국영화로 국한하면 그 수치는 더욱 심각하다. 과연 언제쯤 떠났던 관객들이 다시 돌아올까? 아니 돌아오기는 할까? 그 많던 관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근 극장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현상에 대해서 코로나19 이전 상황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다시 한번 짚어봤다.


이제 극장을 안 찾는다

한때는 친구, 연인, 가족 단위로 만남의 광장 역할을 했던 곳이 멀티플렉스 극장이었다. 극장 로비에 가서 매표소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오늘 뭐 볼까’라는 설렘 가득한 질문을 던졌던 순간이 있었다. 영화와 극장은 일상생활의 과도한 업무와 학업 스트레스로 지친 마음을 늘 위로해주었다. 그런데 그것도 다 옛말이다. 거리두기가 심화되어 팝콘과 음식물 취식이 금지되자 관객들은 너도나도 불안한 실내보다 야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거리두기 완화로 극장 내 취식도 자유로워졌지만 떠난 관객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어쩌다 극장이 이렇게 됐을까.

모 멀티플렉스의 관람료 안내

혹시나 최근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심경에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약간의 상상을 더해 픽션처럼 꾸며봤다. 여러분도 정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철수는 주말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늘 뭐 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예전엔 이 시간이면 늘 TV에서 김경식 씨가 나와 맛깔나는 멘트와 함께 볼만한 영화를 소개해주곤 했는데 요샌 그런 프로그램을 잘 안 보게 된다. 왜냐하면 유튜브에 ‘개봉영화’만 검색해도 수많은 줄거리 요약 컨텐츠가 검색되는데 뭘하러 귀찮게 TV를 켜나. 잠에서 깨자마자 유튜브 앱부터 켜니, 홍보대행사에서 유튜버들에게 유료 광고를 집행해 만든 줄거리 요약본이 최상단에 노출된다. 10분짜리 영상 하나 보고 나니까 영화 한 편 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극장에서 보는 맛은 다르지, 라고 중얼거리며 극장 예매 어플을 열었더니 주말 프라임 상영대 티켓 값이 15000원이 넘는다. 너무 비싼 게 아닌가! 와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 재미있을지 없을지 모를 영화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한다고? 머릿속에 ‘가성비’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차라리 집에서 편하게 OTT 플랫폼에 올라온 신작 드라마를 보는 게 더 낫지. 요새 ‘더 빅토리’ 안 본 눈 산다는 글이 SNS에 심상치 않게 올라오던데, 차라리 그거나 보고 인증샷이나 올려야겠다, 라고 철수는 생각한다.”


2021년 국내 캠핑 시장 규모 5천억 원 증가

2021년 방송영상산업 규모 2조 원 증가,

2021년 극장 매출 규모 3백억 원 감소

좀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서 상상을 해봤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더 이상 매력적인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경험의 기회가 너무 많아졌다.

예를 들면, 실내보단 실외 활동을 권고했던 사회적인 분위기 덕분인지 캠핑 인구도 크게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국내 캠핑 시장 규모가 크게 성장해서 2020년에 5조 8천억 원이었던 시장 규모가 2021년에는 6조 3천억 원으로, 5천억 원 이상 늘어났다. 방송영상산업 규모 역시 2020년에는 21조 9647억 원이었던 것이 2021년에 23조 9707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에 비하면 2020년 한국 극장가 총매출 규모는 1조 537억 원에서 2021년에 1조 239억 원으로 감소했다. 2022년 총 극장 매출은 1조 1602억 원으로 전년보다 오르는 추세로 돌아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핑 시장이나 TV, 케이블, OTT 등 방송영상산업의 성장세와 비교하면 극장 상황은 복구되는 속도가 늦다. 참고로, 코로나19가 오기 전인 2019년 한국 극장 총매출은 2조 5093억 원 규모였다.

여가생활에 있어서 극장의 영화 관람 경험과 경쟁 상대는 점점 늘어난다. 뮤지컬이나 전시, 도시 외곽으로 나가 지역 축제 행사에 참여하는 등 답답한 실내보다는 야외 활동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다 못해 뉴노멀의 놀이 형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2021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보고서 ‘MZ세대의 미디어 이용행태’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1982~1995년생(30세 전후) 중 최근 3개월 동안 OTT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비율은 95.4%였다.


2019년 연평균 극장 관람 횟수 전 세계 1위,

2022년 연평균 극장 관람 횟수 -50%

돈을 번 한국영화가 없다

'잘 안 됐다'고 소문난 <교섭>(왼쪽), <드림>이 그래도 올해 개봉작 중 100만을 넘은 유이한 영화다.

최근 극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한국영화가 없다. 올해 100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영화는 현재까지 172만 관객을 동원한 <교섭>, 그리고 현재 108만 관객을 동원 중인 <드림>이 전부다. 작년 12월에 개봉해 올 초까지 326만 관객을 동원한 <영웅>까지 더해도 3편 밖에 안되는 상황. 그리고 이 영화들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물론 2022년 한 해 동안 전체 한국영화가 벌어들인 금액은 6310억 원, 한국영화 전체 관객수는 6279만 명 규모로, 2021년의 한국영화 총 매출 4576억 원, 관객수 4457만 명 수치와 비교하면 크게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2022년 인구 1인당 연평균 극장 관람 횟수는 2.19회로, 2019년 세계 1위 수준에 달했던 극장 관람 횟수인 4.37회와 비교하면 절반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대와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중의 영화 매체에 대한 관심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예 영화 자체를 안 보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도 인기를 얻은 작품은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1위 자리 놓고 경쟁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자꾸 우울한 업계의 하락 수치만 보여줘서 마음이 무겁다. 이번에는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다. 2023년은 애니메이션 장르에 있어서 한국 극장가 사상 가장 흥미로운 기록을 남긴 해로 꼽힐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현재까지 539만 명이 관람해 올해 개봉한 전체 영화 중 흥행 1위, 그리고 역대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수를 동원한 작품으로 기록됐다. 더욱 흥미로운 건 <스즈메의 문단속>이 신기록을 수립하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일본 애니메이션 개봉작 1위 기록을 달성 중이었다는 것이다. 한국 극장가에서 두 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한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현재까지 누적 매출액 485억 원에 관객수 465만 명, <스즈메의 문단속>은 누적 매출액 553억 원에 관객수 539만 명을 동원했다.


이제 화제의 중심은 드라마

일본 애니메이션은 사상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영화는 개봉하는 족족 흥행 부진을 겪는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영화진흥위원회의 4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는 이에 대해 “영화제작 인력이 OTT용 영화영상물 제작에 참여하게 되면서 OTT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쟁력이 강화되었고, 올해 극장 개봉한 한국영화들도 젊은 관객층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4월까지 3개월 연속으로 한국영화 월 관객 수는 100만 명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극장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던 작년부터 기대를 모았던 여러 한국영화 대작들이 줄줄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이면서 한국영화에 대한 피로도가 점점 쌓여가고 있었던 것도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OTT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대중적인 화제의 중심에 놓였던 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였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구가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나 16부작 드라마를 두 개 시즌으로 쪼개 공개했던 <더 글로리> 같은 작품에 비하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점점 낮아지는 상황.

시청률 21퍼센트를 넘기며 종영했던 <모범택시2>나 4월 한 달 내내 화제의 중심에 놓여 있는 <닥터 차정숙>이 관객을 더더욱 극장이 아닌 TV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의 주역들인 배우나 제작진이 과거 영화를 통해 인기를 끌었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드라마와 영화 시장의 판도가 이렇게 달라질 거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했을 것 같다.


특별상영관 시대라서 극장은 웃었다?

메가박스도 '돌비시네마관'을 열면서 특별상영관 경쟁에 뛰어들었다(사진 출처=메가박스)

최근 극장을 둘러싼 여러 변화 수치를 들여다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전국 극장수가 2021년에 비해 2022년에는 3.5% 증가했는데 좌석수는 0.8% 줄어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하나의 상영관에서 평균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관객 수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좌석 간 간격이 넓거나 특수한 박스 형태 좌석, 편안한 시트 등을 구비한 특별관이 늘어나면서 좌석수가 줄어든 것은 아닐까.

작년 연말과 올해 초까지, 멀티플렉스 극장의 특수상영관은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극장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줬던 <탑건: 매버릭>부터 시작해서 <아바타: 물의 길> 등 아이맥스, 4DX, 3D 상영관마다 인기를 끌었고 메가박스의 돌비시네마관도 사운드와 영상 모두에 특화된 관으로 인기를 끌었다.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의 수퍼플렉스관은 기존 628석이었던 상영관 좌석을 295석으로 줄이면서 소파베드, 컴포트 리클라이너 좌석 등으로 바꿨다. CGV 영등포의 스타리움관도 리뉴얼을 해서 프라이빗 박스 좌석 부스가 설치된 스크린엑스관으로 탈바꿈했다.

<아바타: 물의 길> 4DX 스크린 홍보 이미지 (사진 출처=CJ NEWSROOM)

2009년 <아바타> 1편이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거둔 수익이 1250억 원이었는데 <아바타: 물의 길>이 1080만 관객을 동원하고 얻은 수익은 1370억 원. 그 사이 십여 년의 간극이 있지만 <아바타> 1편 개봉 당시 아이맥스 상영 매출 점유율이 7.2%였던 반면, <아바타: 물의 길>은 아이맥스 매출 점유율이 14.5%, 그리고 1편 당시에는 없었던 돌비시네마관이 매출 점유 3.5%를 차지했다. 그만큼 특수상영 관람 비율이 과거에 비해 늘어났다는 것이다. 현재 CGV 용산 아이맥스관의 주말 프라임시간대 관람료는 25,000원 가량이다. 또한, 현재 286만 관객을 동원 중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의 매출액이 이미 3백억 원이 넘은 데 비해 2017년 273만 명이 봤던 2편의 매출액은 230억원 가량이었다. 그만큼 코로나19 이전보다 티켓값이 상승하고, 특별관 비중이 높아져 극장의 수익은 관객수 대비 이전보다 훨씬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 체인저가 나타날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범죄도시3>, <밀수>,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

드라마와 유튜브 등으로 눈길을 돌려 버린 관객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아 위기의 한국 극장가를 구할 게임체인저는 누가 될까. 정말 나타나기나 할까. 영화전문지 「씨네21」이 2023년 개봉 기대작으로 꼽은 한국영화 중에는 5월 31일 개봉하는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3>, 여름 개봉 소식을 확정한 류승완 감독의 <밀수> 그리고 개봉은 미정인 <베테랑2>, 8월 개봉 소식을 전한 김용화 감독의 <더 문>,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이 있다. 여전히 개봉이 밀린 영화들이 수십 편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개봉 소식을 최근에 알린 이 작품들은 배우와 감독 모두 작품성이나 화제를 어느 정도 담보하고 있는 작품들인 것 같다. 이들 영화들이 모두 잘되어 떠나간 관객의 발걸음을 다시 극장으로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신작 영화가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이미 비싸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영화관람료가 발목을 잡지는 않을지 우려도 된다. 빠르게 변해버린 대중의 기호에서 너무나 멀어져버린 영화들, 선뜻 구매 버튼을 누르기 어려워진 티켓값, 야외에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경험의 확장 등. 극장의 밝은 미래를 당당하게 꿈꿀 수 있으면 좋으련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험난하다.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