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롭 마샬 감독의 <인어공주>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그저 시끌시끌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찬반 논란을 넘어 비난전으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논란은 오히려 진짜 본질을 가리고 혼란만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그 자체만으로 다양한 평가가 오가는 상황이 아니라 영화를 보지도 않고 비판부터 하는 반응도 많다. 과연 디즈니와 롭 마샬 감독은 <인어공주>의 실사화 프로젝트를 완성하면서 어떤 목표를 두었을까. 지금의 국내외 반응이 과연 그들이 바랐던 목적지를 향해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영화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문제점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해봤다.


현재 국내외 개봉 반응 상황

롭 마샬 감독의 <인어공주>는 역대 디즈니 실사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에리얼을 연기하는 배우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진 이후, 예고편이나 포스터가 공개될 때마다 끊임없이 반대 여론에 부딪쳐야 했기 때문이다.

<인어공주>는 5월 24일 국내 개봉 당일, 1300여 개 스크린에서 대대적인 상영횟수를 갖고 관객과 만났지만 1위로 박스오피스에 진입하지는 못했다. 예매율도 개봉 첫 주를 맞이한 신작임에도 아직 개봉하지 않은 <범죄도시3>의 예매율에 뒤처지고 있는 상황. 실제 관람한 관객들이 평을 올리는 CGV 에그지수도 골든 에그지수가 75%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 개봉작의 경우 보통 첫 주에는 8-90% 이상 지수로 시작하는 작품이 많았던 이전 사례와 비교해도 평가 지수가 낮게 나오고 있다. 물론 첫 주말 관객 반응에 따라 흥행 성적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개봉 직후 <인어공주> 로튼토마토(왼쪽), 메타크리틱 지수

해외 반응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관객과 비평 반응을 알 수 있는 로튼토마토 지수는 북미 기준 5월 26일 개봉 이후 68%, 메타크리틱 지수는 46명의 비평가가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59점을 매겼다. 좋은 평을 남긴 비평가들은 대부분 할리 베일리의 연기를 칭찬했다. 필름매거진 「토탈필름」은 “할리 베일리의 완벽한 퍼포먼스는 원작을 뛰어넘었다”고 썼고 「버라이어티」의 수석비평가 피터 드부루지는 할리 베일리가 “디즈니가 고전을 다시 만드는데 있어 정당성을 부여했다”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반면에 비주얼 측면에서는 평가가 좋지 않다. 「뉴욕 포스트」의 조니 올렉신스키 비평가는 “2차원의 평면적인 그림보다 더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고, 「베니티페어」의 힐러리 버시스는 “복사본에 과한 재료를 첨가해서 이상한 조합이 되었다”고 평했다. 국내에서는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해저 세계가 전반적으로 어둡게 묘사되어 불편하다는 평도 있다.


정말 캐스팅이 문제였나

주인공의 얼굴을 보기 힘든 영화 포스터마저 화제였다.

개봉 전부터 <인어공주>의 주연을 맡은 할리 베일리의 캐스팅에 반대하는 해시태그 ‘#NotMyAriel’이 SNS을 달굴 정도로 논란이었다. 롭 마샬 감독과 프로듀서 존 드루카 두 사람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캐스팅 당시 할리 베일리가 얼마나 매력적인 배우였는지에 대해서 언급했다. 에리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배우여야 했고, 존 드루카 프로듀서에 따르면 할리 베일리는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의 힘이 모두 느껴지는 매력이 있는” 배우였기 때문에 캐스팅했다고. 하지만 영화가 공개되기 전에는 어쩔 수 없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인어공주>의 개봉 포스터에는 주연을 맡은 배우 할리 베일리가 관객을 향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샷이 담긴 포스터를 제작하지 않았을 정도다. 이는 다른 실사 프로젝트 작품들의 포스터와 비교해도 이상할 정도로 차이가 있다. 디즈니가 캐스팅 자체에 대한 대중적 반발, 논란을 의식한 것 같다는 인상도 받게 되는 대목이다.

그간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의 인물을 강조한 포스터들과 비교하면 <인어공주>의 포스터는 확실히 특이하다.

캐스팅 자체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최근 디즈니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예술 영역에서 운동처럼 번지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의 영향 아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변화하는 다양한 문화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주장만을 위한 주장, 즉 정치적 올바름만을 강조하는 수단으로서 각색 방향이 결정됐을 때 반감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는 부분, 이를테면 애니메이션에서 묘사되는 주인공의 피부색을 달리 표현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왔다. 변화하는 시대성에 따라, 달라진 여성과 인종 등의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기 위해 고전을 재해석하는 경향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아이들의 교육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디즈니의 영향력을 이용해 원작 자체에 대한 달라진 관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는 과연 성공적인 것일까. 아니, 원작 자체를 다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원작을 훼손하는 행위인 것일까.

물론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는 배우 할리 베일리는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그녀의 연기 자체를 두고 지적하는 관객 반응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번 영화에서도 나름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인어공주>를 둘러싼 논란이 연기력 논란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


주인공 에리얼의 피부색만이 문제인가

원작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에리얼의 캐릭터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인어이기 때문에 인어의 피부색 표현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인어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금발 머리의 백인 여성처럼 묘사해야 될 필요도 없고 애니메이션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머리색까지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의무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면 애초 디즈니가 원했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인종이나 피부색에 구애받지 않고 에리얼이란 캐릭터를 대하고자 했던 의도가 읽힌다. 과거의 편견과 관습으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묘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던 것이었을테다. 수많은 흑인 어린아이들이 나와 같은 피부색을 지닌 인어공주의 모습을 보며 세상을 다채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를 수도 있다. 작품을 보는 이러한 관점은 유색 인종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7명의 인어공주들은 실제로 7대륙을 상징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고, 그러므로 할리 베일리가 연기하는 에리얼 역시 설정상으론 당연한 캐스팅이자 납득할 만한 묘사라고 볼 수 있다.

원작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자매들을

디즈니는 이번 실사 영화에서 '7대륙'이란 상징으로서 다양한 인종을 캐스팅했다.


왜 왕자는 여전히 백인 남성인가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

심지어 디즈니가 원작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면서 주인공을 흑인 배우에게 맡긴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7년 디즈니가 TV용으로 제작한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란 작품은 주인공 신데렐라와 왕비, 요정을 흑인 배우에게 맡겼다. 신데렐라에게 도움을 주는 요정 역할은 휘트니 휴스턴이 연기했고 왕자 역할에는 필리핀계 배우인 파올로 몬탈반이 연기해 아시아계 왕자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캐스팅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그럼 역으로 이런 의문도 가능하다. 왜 인어공주 에리얼은 흑인 배우에게 맡기면서 왕자는 여전히 백인 배우가 연기하는가. 사실 이번 <인어공주>의 지중해섬 왕국 설정을 포함한 여러 캐릭터의 피부색 설정은 원작 애니메이션과 상당히 다르다. 해저 왕국의 트리튼 왕을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스페인 배우다. 또한 지중해섬을 다스리는 인물은 여왕으로 묘사되며 남아공 출신의 영국 흑인 배우 노바 드메즈웨니가 맡았다. 세바스찬의 목소리 연기를 한 다비드 디그스 역시 흑인 래퍼이자 배우이고 스커틀의 목소리를 맡은 아콰피나 역시 아시아계 여성 배우다. 전체 캐스트 목록만 놓고 보면 단지 인어공주의 원작 설정이 백인 여성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으니 이를 흑인으로 바꾸자는 식의 접근이 아니었을 거라는 점이다.

주역 캐스팅에서 여러 인종에게 비중을 나누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모든 캐릭터를 묘사함에 있어서 어떤 한계를 두지 않으려는 시도 자체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따라서 그럼 왜 왕자 역할은 꼭 백인 남성이 맡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은 보는 관객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남길 여지가 있다. 연기하는 배우의 인종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 그 의문은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


각색 방향은 시대 변화를 얼마나 수용했나

<인어공주>를 연출한 롭 마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왜 이 영화 연출을 수락했는냐는 질문의 대답으로 이런 말을 들려줬다. 애니메이션이 워낙 상징적인 장면도 많고 팬들이 많으니 그것을 그대로 실사로 옮기는 것보다는 애니메이션이 묘사할 수 없는 실사 영화만의 진짜 감정 연기를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원작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각색을 해보려고 했다. 안데르센 작가의 원작 동화 자체는 200년 전에 쓰인 글임에도 삶의 방향을 잃은 젊은 여성이 새로운 인생을 찾고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여행을 떠난다는 그 설정을 다루고 있다. 그 여행을 통해서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의 어떤 장벽을 스스로 허물고 차이를 뛰어넘고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관용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제야 훨씬 깊이 있는 주제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에리얼이 어떻게 독립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지에 집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과거의 인어공주 에리얼과 2023년 버전의 에리얼이 얼마나 다른 결말, 다른 성장을 보여줬는지에 대한 해석과 이해는 보는 관객마다 다를 수 있다. 그 과정에 있어서 컴퓨터그래픽이나 프로덕션 디자인, 음악의 사용, 배우의 캐스팅 등은 사실 다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디즈니의 실사 프로젝트 컨셉 자체를 비판할 목적이 아니라면 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조금 더 나은 관람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롭 마샬 감독의 <인어공주>는 꽤 시끄럽고 도전적인 방식으로 시대의 변화를 품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런데 이제 시작이다. 디즈니는 다음 실사화 프로젝트로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원작으로 하는 <백설공주> 실사 프로젝트를 이미 추진했고 캐스팅까지 완료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각본에 참여하고 연출은 마크 웹 감독이 맡는다. 주연을 맡은 배우 레이첼 지글러는 라틴계 배우로 <인어공주>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공 캐릭터의 인종 묘사 문제가 이미 불거지고 있다. 디즈니의 선택이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다소 험난한 여정이 될 거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현수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