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주목한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여자의 독특한 인생 계획을 다룬 영화 <매기스 플랜>입니다.
매기의 첫 번째 계획
혼자 임신할 거야
뉴욕 시내를 함께 걷는 여자와 아이. <매기스 플랜>이란 영화를 이미지 한 컷으로 압축해본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군요. '아이'는 주인공 '매기'(그레타 거윅)라는 여성의 인생 계획입니다.
요새 혼밥, 혼영, 혼술 등등 온갖 혼자 하는 것들을 지칭하는 신조어 만들기가 유행인데 주인공 매기는 '혼임', 그러니까 혼자 임신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대학교에서 예술 비즈니스를 공부하는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기는 한데 애인과 연애를 하거나 결혼 같은 제도에 종속되거나 혹은 신체적 접촉을 통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싶어 하죠. 왜냐?
그녀는 불임의 나이도 아니고 얼마든지 임신이 가능한 건강한 사람이고 또 아이를 낳아서 키울 경제적 능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여성입니다. 매기와 같은 생각을 지닌 여성들은 결혼이 아니라 정자은행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겁니다. 매기 역시 정자은행을 선택합니다.
자칭 '소설가'를 만나다
매기가 이런 혼임 결정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일하는 학교에서 우연히 한 남자와 마주치죠. 이 남자의 이름은 존(에단 호크). 급여 지급 문제 때문에 우연히 만났지만 둘은 금세 말이 통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후 가끔 학교 주변에서 마주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친해지는데요.
매기는 인류학자인 존이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 (당연히 나이 차이가 있겠죠?) 그리고 이제는 소설을 쓰며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존은 기꺼이 매기에게 자신의 첫 독자가 되어줄 것을 부탁하죠. 자신의 새로운 인생 계획과도 같은 소설 쓰기를 편견 없이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매기의 모습에 유부남 존은 마음이 움직입니다.
매기가 드디어 혼임 거사(?)를 치르려 하던 순간에, 존이 느닷없이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면서 그녀의 계획과는 다른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매기의 표정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불분명하긴 하지만, 어쨌든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된 것 같고 다음 장면에 이르면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다음 둘 사이에 '릴리'라는 이름의 예쁜 딸이 태어납니다.
매기가 씩씩하게 자기 삶을 결정해 나가는 듯 보이다가 왜 갑자기, 그것도 우연히 마주쳤던 유부남과 덜컥 결혼을 선택하게 되는지 의아하죠? 영화는 뉴욕 배경의 흔한 로맨틱 코미디가 될 생각이 없음을 시작부터 내비치고 있는데요. 우디 앨런 감독 영화에서 종종 보곤 했던 경제적인 대화와 속도감 있는 편집, 경쾌한 음악으로 이루어진 오프닝 장면을 통해 매기라는 여자의 성격과 태도, 가치관 같은 것을 잘 보여줍니다. (나이 많은 중년의 남자와 어린 여자의 로맨스를 다루지 않는 건 우디 앨런 영화와의 큰 차이죠.)
덕분에 매기가 선택한 결혼이 평범하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어요. 매력적인 뉴욕의 풍경은 덤입니다. 맨해튼 유니온 스퀘어, 그리니치 빌리지, 워싱턴 스퀘어 파크, 브루클린 등등 뉴욕 곳곳을 오가는 오프닝에서 일단 무장해제.
뉴요커의 결혼 생활
자, 이제 새로운 시작. 존은 아내와 이혼한 뒤, 매기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릴리와 함께 새로운 집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합니다. 대학 강의와 연구,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뉴요커의 삶이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들긴 매한가지. 결혼 전의 예상과 달리, 육아는 매기의 몫이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존의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도 가끔 돌봐야 하는 처지라니요.
이쯤 되면 대체 매기의 성격이란 게 있기는 한 건가, 저렇게 당하고(?) 살아도 되는 건지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하죠. 그런데 매기는 원래 그 정도의 이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존과의 결혼 역시 존이 보여준 여러 적극적인 모습 때문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가 소설을 완성하는 걸 돕기 위해 매기가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심으로요.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가리라 믿었던 매기의 일상은 이처럼 계획에 없던 결혼과 가중된 육아의 무게로 짓눌려버리고 말아요. 존은 결혼 전에도 붙잡고 있던 소설을 아직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모든 걸 매기에게 떠넘긴 상황.
이런 결혼 이후의 모습, 다들 예상했겠죠?
하지만 매기는 '릴리'라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릴리와의 일상,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싶을 때 문득 매기는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존의 무책임한 '가부장적 태도'를 참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죠.
매기의 두 번째 계획
또 한 번의 계획
매기는 울분에 휩싸여 판단을 그르치거나 섣불리 행동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 와중에도 침착하니 말 다 했죠. 자기보다 훨씬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고 카리스마 넘치며 업계에서도 성공해 실력을 인정받은 학자이자 존의 전 아내였던 조젯(줄리안 무어)을 보면서 부러움도 느끼죠. 조젯은 결혼 이후에도 멋지게 성공했고 업계에 자리 잡은 학자이며 아이들도 잘 키운 엄마니까요.
매기는 여전히 미완성 소설을 붙잡고 있고, 또 아이들 육아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존의 모습을 보면서 조젯과 다시 이어줄 생각을 하게 됩니다. 헤어지되, 존에게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하는 거죠. 세상에 이런 오지랖 넓은 여자가 또 어디 있나요? 존을 붙잡고 책임을 물어도 모자랄 지경인데 존 스스로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게 만들 계획이라니요. 아무튼 매기의 두 번째 인생 계획은 조젯과 존이 다시 합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은 씩씩하지만 왠지 모르게 우유부단해 보이기도 하는 매기의 캐릭터는 그레타 거윅이라는 개성 강한 배우와 그녀의 유니폼과도 같은 빈티지 패션이 조화를 이뤄 탄생한 모습입니다. 저렇게 착할 수 있나 싶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도저히 싫어할 수는 없는 인물입니다. 오드리 토투의 <아멜리에>, 샐리 호킨스의 <해피 고 럭키> 등 사랑스러운 캐릭터 영화의 계보를 잇는 영화들 기억나시나요? 에단 호크와 줄리안 무어는 그레타 거윅을 든든하게 지원만 해줄 뿐입니다.
매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조금 황당해 보이지만 매기는 생각 없이 황당한 결정을 하며 사는 게 아니라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나 자신을 생각할 때에도 능동적으로 삶을 결정하는 여성입니다. 너무 현명해서 가끔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요.
또한 매기의 주변 인물들, 정자은행 기증자인 가이(트래비스 핌멜)와의 에피소드, 그녀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인생 조언자인 토니(빌 헤이더), 펠리시아(마야 루돌프)와의 에피소드, 그리고 온갖 복잡하고 고된 일들만 닥치는 육아 에피소드, 줄리안 무어가 연기하는 존의 전처 조젯과의 에피소드 모두 매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매기스 플랜>은 한 여성의 단단하고 긍정적인 삶의 방식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갖고 있는 가족 구조의 편견, 이를테면 편모슬하나 계모와 같은 케케묵은 것들을 녹여 없애주는 영화입니다. 매기의 진짜 계획은 그런 사회와 차근차근 맞서 싸우는 걸 이야기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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