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인 조에 부스케(Joe Bousquet)는 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탄환이 척추를 관통하는 부상을 당하곤 평생 하반신 불구로 살았다. 그가 쓴 산문집 『달몰이』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스무 살에, 나는 포탄을 맞았다. 내 몸은 삶에서 떨어져 나갔다. 삶에 대한 애착으로 나는 우선은 내 몸을 파괴하려 했다. 그러나 해가 가면서, 내 불구가 현실이 되면서, 나는 나를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상처받은 나는 이미 내 상처가 되어 있었다. 살덩이로 나는 살아남았다. 살덩이는 내 욕망들의 수치였다.

『달몰이』, 조에 부스케 지음, 류재화 옮김, 봄날의 책, 2015


전쟁은 자연의 필요조건인가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수두룩하다.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선험적으로 여겨질 정도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는 사실은 새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전쟁은 실제로 존재해온 역사적 사건이자 삶과 세계에 대한 거대한 환유 체계다. 삶 자체가 이미 전쟁터라는 것 역시 해묵은 비유가 되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 하는 인간의 유별난 조건. 흔히 정글로 비유되는 만큼 자연 또한 그러하다. 자연은 만물이 죽고 죽이는 질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원환(圓環)의 체계다. 인간 역시 자연의 한 조각인 만큼 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쟁은 그래서 필연일지도 모른다.

조에 부스케는 21살 때 전쟁터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엔 불구가 되어 53살에 세상을 떴다. 부상 이후 30여 년의 삶이 어땠을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은 전쟁 이후를 더 공포로 몰아넣는 괴력을 지녔다. 죽지 않은 게 죄가 되거나 치욕이 되거나 원한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테렌스 멜릭 감독의 <씬 레드 라인>(1998)은 바로 그러한 전쟁의 상흔이 개인을 얼마나 파괴하는지를 세밀하게 다룬 영화다.

전쟁의 참혹성을 고발한 영화는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될 만큼 허다하다. 주로 정치나 이념, 권력자의 탐욕으로 발발하는 전쟁의 이면을 훑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쟁터에서 겪게 되는 개인의 고통이나 특유한 주체적 사고 능력은 뒷전이다. 전쟁터에선 한 개인이 얼마나 특수하게 잘나고 못났는지를 분간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모두 죽음을 코앞에 둔 파리 목숨이자, 적의 총알 앞에서 비굴해지거나 무력해지는 한낱 졸(卒)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사람은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인식과 사고 능력을 지녔다. 그런 까닭에 전쟁은 물리적 상처뿐 아니라 정신적 균열과 파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간 조건에 대한 철학적인 잠언과 영상

<씬 레드 라인>은 전쟁에 참전한 개인들에게 각기 다른 사고방식과 태도로 조밀한 디테일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쟁이란 매개로 다시 파괴시킨다. 다 보고 나면 전쟁의 참상을 넘어 인간의 존재 조건을 되짚는 철학적 에세이를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게 이 영화의 극점이자 한계이자 독특한 개성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남태평양 과달카날이 배경이다. 전쟁사적으로 유명한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군이 점령한 과달카날 섬은 향후 전쟁의 향방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미 육군 25사단이 그곳을 탈취하기 위해 전면전을 펼친다. 지휘관급 장성부터 일개 이등병까지 목숨을 건 사투가 필연적이다. 일본군은 섬 전체를 요새처럼 만들어 주요한 고지를 필사적으로 방호한다. 미군 돌격 중대가 밀고 올라가려 하나 거의 철옹성이다. 일본군은 보이지도 않고 기관총과 포격만 퍼붓는다. 명백하게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셈이다. 2시간 50분 러닝타임의 초중반 4~50분이 그 지리한 고지전을 다룬다.

가끔씩 총 맞아 죽는 실루엣만 보일 뿐, 일본군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건 영화 중반을 넘기면서부터다. 결국 미군이 고지를 빼앗고 일본군 진지를 발견해 초토화시킨다. 그러는 동안 카메라는 전투 장면을 핍진하게 좇는 동시에 섬 곳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포착한다. 풀숲을 휘감아 병사 앞에서 꿈틀대는 뱀, 총소리에 흩어지는 새 떼, 파편에 맞아 풀숲 사이에서 푸덕거리며 죽어가는 작은 새 등, 인간의 싸움터에 동물들마저 신음한다. 아니, 때론 동물들이 사람을 교란시키기도 한다. 한 병사는 후다닥 날아오르는 새에 놀라 허공에 헛총질을 해댈 정도다. 만물이 카오스 상태다. 자연에 대한 명백한 알레고리다. 그 안에서 인간들은 인간 나름의 갈등을 겪는다. 지휘 계통을 깨뜨리며 명령에 반항하는 중대장과 목표를 위해 어떤 희생도 불사하려는 사령관의 모습은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더 극렬하게 다가오는 건 병사들 각각 품고 있는 희망과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아스라한 감정들이 격전들 사이에서 꿈결처럼 떠오르는 지점이다.


과거가 천국 같았었기에 오늘이 더 지옥이다

그들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천국 같았던 과거를 그리워한다. 아니, 당장이 지옥이기에 과거가 전부 천국처럼 여겨지는 것일 테다.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에, 죽음이 삶보다 훨씬 가까운 상태이기에 현실이 꿈이길 바라고, 꿈이 현실이길 바라는 것이다. 한 병사는 시종일관 고향에 두고 온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견뎌내다가 중요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뒤, 공군 장교와 눈이 맞아 이혼을 통보하는 아내의 편지를 받는다.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던 천국의 마지막 기둥마저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그 위로 무슨 교리문답 같은 내레이션이 흐른다. 삶과 죽음, 신의 명령 앞에서 일개 벌레만도 못해진 인간 조건에 대한 잠언 같은 내용이다. 묵직한 동시에, 그리고 너무 당연한 질문이기에 외려 더 상투구에 가깝게 여겨지는 건 이 영화의 특징이고 개성이자, 단점이 되기도 한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철학적 질문을, 그 어떤 말도 사유도 무의미해진 전쟁터 위에 뇌까리는 게 얼토당토않은 허세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내레이션이 없었다면, 이 영화가 지닌 육중한 무게감은 반감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유 불능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더 크게 근본적인 질문 앞에 놓이게 되는 법이다. 일설로 풀 수 없으나 결국에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는 삶과 세계의 기본 조건에 대한 자각. 이 영화가 단순한 전쟁 영화를 뛰어넘어 인간과 자연의 생태에 대한 내밀한 고찰로 여겨지는 건 그 까닭이다.

테렌스 멜릭은 영상을 통해 시적 아날로지를 표현해내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참혹한 전쟁터를 다루면서도 그는 자연과 인간이 때로 교감하고 때로 상극하는 현장들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그의 여느 작품들이 그랬듯 한 편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영상미는 이 영화에서도 절륜하다. 그래서 전쟁의 참화가 더 부각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이 결국 자연의 질서 안에서 영욕과 미추를 뒤섞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명확해진다.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이 영화는 인간의 가장 깊은 밑바닥과 가장 지고한 성찰 사이의 크나큰 진폭을 유려하게 펼쳐 보인다. 미군이 급습하여 초토화돼버린 일본군 진지에서의 장면 또한 그러하다. 격렬한 백병전 중에도 색색의 새가 보이고, 죽음 앞에서 기도하는 일본군의 모습도 보인다. 장엄한 자연의 한 골짜기에 시산(屍山)이 쌓인다. 죽기 직전의 한 일본군 장교에게 멀리 새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가리키며 한 미국 병사가 지껄인다. “저거 잘 봐 둬.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테니까.” 그 병사는 시체 냄새를 막으려 콧구멍에 담배를 꽂은 상태다. 조롱 같기도 위로 같기도 한 말이다. 상대를 향한 것이기도, 자신에게 중얼거린 것이기도 하다. 죽음과 삶이 서로 속삭이는 대화처럼 들리기도 한다.


죽음은 늘 곁에서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다

죽기 직전의 한 일본군 장교에게 멀리 새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가리키며 한 미국 병사가 지껄인다. “저거 잘 봐 둬.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테니까.” 그 병사는 시체 냄새를 막으려 콧구멍에 담배를 꽂은 상태다. 조롱 같기도 위로 같기도 한 말이다.

이 한 컷만으로 이 영화의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전쟁터에선 백 마디의 교설이 불필요하다. 그래서일까. 후덜덜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함에도 특별한 누구에게 시선 집중이 안 된다. 군인으로서의 냉정함과 인간으로서의 섬세한 배려심을 동시에 지닌 웰쉬 상사 역의 숀 펜이나 톨 중령 역의 닉 놀테 정도가 눈에 뜨이나 결국엔 잿빛 누더기가 된 군복 차림의 무수한 병사들만 하나로서 전체일 뿐이다. (존 트라볼타와 조지 클루니가 카메오 급이고 게리 올드만, 미키 루크, 비고 모텐슨 등도 출연했으나 편집 과정에서 통째로 잘려 나갔다는 사실만 살짝 밝힌다) 영화는 늪으로 슬그머니 잠수해 들어가는 악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푸른 늪. 어쩌면 그 ‘늪’이 사람들이 사는 진짜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각성은 끔찍하나 어째 통렬하다. 그렇게 죽음은 늘 삶 바로 옆에서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러하다.


강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