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의 이준영(정우) 변호사와 <조작된 도시>의 민천상(오정세) 변호사

극장가에 상반된 타입의 두 변호사가 나타났습니다! <재심>의 이준영 변호사와 <조작된 도시>의 민천상 변호사인데요. 이 사람들이 겉과 속이 참 다르더라고요. 얼핏 뺀질뺀질해보이는 이준영 변호사는 알고 보니 억울하게 누명을 쓴 청년의 구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속 깊은 사람이었고, 유약한 외견의 국선변호사 민천상은 무차별적으로 타인의 개인정보를 수집, 악용하는 대담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두 사람을 포함한, 한국영화 속 여러 변호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보았는데요. 자기 밥그릇 챙길 궁리만 하다 어느 순간 각성하고 공공선을 위해 몸바쳐 고생길을 걷는 개과천선형, 남들이 뭐라건 성실하게 변호사로서의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물심양면형, 그리고 당최 변호사인지 범죄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정체불명형입니다.


 
개과천선형

<재심> 이준영(정우)
너 책임감이란 게 있는 거니?

<재심>의 이준영(정우)
'일치미스트'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배우 김소진(aka <더 킹>의 안희연 검사, <더 테러 라이브>의 이지수 기자)이 이준영 변호사의 아내로 출연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일침을 놓습니다. “(영화에 의하면)지잡대를 중퇴하고 돈도 빽도 없는 변호사 준영은 변호사만 되면 인생 탄탄대로가 펼쳐질 거라 예상하고 변호사가 된, ‘밥그릇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떨치고자 무리한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하고 난 뒤 더더욱 곤경에 빠집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주고 또다시 한방을 노리게 되죠. 억울하게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의 범인이란 누명을 쓰고 십년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낸 청년 조현우(강하늘)의 사연을 듣고는, 세상 한번 뒤집어보기 위해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합니다. 뜻밖에도 준영은 현우 모자와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서 현우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현우를 다시 인간답게 살게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게 됩니다.
 

<성난 변호사> 변호성(이선균)
재판의 주인공은 나야!

<성난 변호사>의 변호성(이선균)
세상 관심이 자기에게 오지 않으면 안되는 관종 변호사 변호성은 이기는 게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약삭빠른 인물입니다. 그런데, 승소길만 걸어온 그에게 최대 난관이 닥쳐옵니다. 시체도 증거도 없는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의 변호를 맡고 작전대로 착착 밀어붙여 승소를 코앞에 둔 상황! 그런데 용의자가 갑작스레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해버린 겁니다. (...)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위기에 빠진 변호성! 결국 변호성은 사건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차근차근 진짜진범을 찾아나가게 됩니다.
 

<변호인> 송우석(송강호)
당신의 돈을 지켜드립니다!

<변호인>의 송우석(송강호)
송우석은 부동산 등기나 세금 자문 등을 주로 맡아 해결해주는 사업가형 변호사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던 때, 동료들이 무얼 위해 싸우든 관심 두지 않고 안정적인 생활형 업무만 주로 해나가던 우석은 어려웠던 고시생 시절, 따뜻한 마음으로 국밥을 대접해주었던 국밥집을 찾아가 은혜를 갚으려 합니다. 그런데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국밥집 아주머니의 간곡한 호소에 못 이겨 함께 구치소 면회를 간 우석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진우의 몰골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이 눈 감고 귀 닫았던 동안 어떤 일들이 자행돼오고 있었는지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게 속물 변호사 우석은 법과 상식을 수호하는 진정한 변호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물심양면형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김판수(성동일)
가발...또 돌아갔냐?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김판수(성동일)
이 사람 하는 일이 변호사인지 수사관인지 조금 헷갈리기는 합니다만, 김판수 변호사는 없는 싸가지만큼이나 돈 되는 일 물어오는 실력만큼은 알아주는 형사 출신의 사건 브로커 최필재(김명민)모시며일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권력과 돈으로 살인사건의 진실을 덮어버린 재벌가에 대항해 싸우게 됩니다. 필재가 자존심 회복을 위해 독기를 드러냈다면, 김판수 변호사는 소신껏 진득하게 사건의 증거를 모아 나갑니다. 독보적인 생활 연기를 뽐내는 배우답게 성동일은 소시민형, 직장인형 변호사를 성실히 연기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벌써 머리가 벗겨져서 가발을…(말잇못)…
 

<의뢰인> 강성희(하정우)
이건 옳고 그름의 싸움인 것 같은데?

<의뢰인>의 강성희(하정우)
유죄임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모든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 강성희 변호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은 피고인 한철민(장혁)의 변호를 맡아 특유의 언변과 재치로 한철민의 무죄를 입증해 나갑니다. 배심원 제도를 소재로 삼은 영화답게 <의뢰인>은 검사와 변호사의 불꽃튀는 법정 공방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는데요. 한철민은 자주 묻습니다. “저 정말 믿으세요?” 변호사에게 피고인이 진범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피고인을 무죄로 만드는 것만이 최우선 목표이지요. 한철민이 정말 아내를 살해했는지 아닌지는 변호사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강성희 변호사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대로 한철민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검사와 치열한 논리 대결을 펼칩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국… (눈물)
 

<소수의견> 윤진원(윤계상), 대석(유해진)
저희는 검찰이 무엇을 감추고 싶어하는지 그것을 밝히겠습니다.

<소수의견>의 윤진원(윤계상), 대석(유해진)
아무런 연줄도 없는 2년차 국선변호사 윤진원은 강제 철거 현장에서 농성 중 아들을 잃자 보복성으로 경찰을 죽이고 현행범으로 검거된 철거민 박재호(이경영)의 변론을 맡게 됩니다. 박재호는 꾸준히 아들을 죽인 건 철거 용역이 아닌 경찰이었다. 그래서 경찰을 죽였고 이는 정당방위다라는 주장을 합니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진원은 경찰 기록을 보고자 하지만 변호사에게조차 기록 열람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진원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님을 직감하고 선배 변호사 대석에게 협력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죠. ‘윗선을 보호하고자 공권력은 알아서 움직이고, 법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만 관대합니다. 진원과 대석은 거대한 바위와도 같은 국가 권력에 맞서 약자의 권익을 수호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국민참여재판과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합니다. 성실하고 용감한 변호사들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불러왔을까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과연, 성공했을까요?
 

<부러진 화살> 박준(박원상)
재판은 이렇게 끝나겠지만 부끄러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부러진 화살>의 박준(박원상)
대입시험의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 해고 당한 김경호(안성기) 교수는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 패소하고 항소심마저 기각되자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담당 판사를 위협하기에 이릅니다. 사법부는 판사에게 화살을 쏘았다는 이유로 김 교수를 압박하고, 김 교수는 화살을 쏜 일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합니다. 실제 일어난 사건이었던 석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인데요. 깐깐한 김 교수와 고통스러운 법정 공방 레이스를 펼치던 변호사들이 모두 나가떨어지고, 웬 변호사가 레이스에 뛰어듭니다. “법은, 쓰레기라고 단언하는 괴짜 변호사 박준입니다. 실존인물 박훈을 영화화한 인물로, 법으로 밥벌이를 하지만 법을 신뢰하지는 않는 냉소주의자입니다. “그럼에도 법은 아름답다는 원칙주의자 김 교수와는 법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관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끝까지 그의 곁에 서서 정의 구현을 위해 힘쓰는 믿음직한 변호사입니다.
 



정체불명형

<조작된 도시> 민천상(오정세)
이거 게임 아니야!

<조작된 도시>의 민천상(오정세)
지금까지의 모든 한국영화 중에서 민천상보다 악독한 변호사 캐릭터는 없었을 겁니다. 소탈한 국선변호사의 탈을 쓰고 곤경에 처한 주인공 권유(지창욱)의 변호를 맡아주는가 싶었으나 실은 뒤에서 온갖 추잡한 범죄행위를 벌이는 악당입니다. 어마어마한 기술력이 투입된 큐브안에서 전국민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해 이를 살인사건 조작에 이용하는 간악한 인물이죠. 민천상은 어디 하소연할 곳 없고,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약자들만 고르고 골라 돈과 권력을 양손에 쥔 자들이 저질러놓은 범죄의 뒷수습에 그들의 신원정보를 악용합니다. 법과 사회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되레 범죄 사건 조작에 이용당한 겁니다.
 

<세븐 데이즈> 유지연(김윤진)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증거는 진실만을 말합니다.

<세븐 데이즈>의 유지연(김윤진)
워킹맘의 고단한 현실은 변호사라고 예외가 없습니다. 변호사 지연은 승률 100%를 자랑하는 프로페셔널이지만 홀로 딸을 키우기 버거워하는 워킹맘이기도 합니다. 어느날 지연의 딸이 유괴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유괴범은 공판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살인범을 무죄로 석방시키지 않으면 딸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지연을 압박해옵니다. 지연은 딸을 살리기 위해 명백한 죄인을 무죄로 풀어줘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실력을 발휘해 용의자를 석방시키는 데도 성공합니다. 비록 살인범은 법에 의한 처벌보다 훨씬 괴롭고 잔혹한 대가를 치렀고, 지연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거지만 딸의 목숨을 위해 법의 맹점을 파고들어 살인범을 무죄로 만들었다는 것은 엄연히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명성기(안성기)
지금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법이 뭔지 알아? 남자들의 법이야.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의 명성기(안성기) 
재판은 별의별 이유로 이뤄지곤 합니다. 평소 과중한 업무로 인해 남편이 잠자리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분노한 아내 이경자(황신혜)는 남편이 근무하는 대기업을 상대로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을 벌입니다. 경자는 TV에도 나오는 스타 변호사 명성기에게 변호를 맡아달라고 하지만, 알고 보니 명성기는 돈만 밝히는 물질만능주의자였던데다 경자가 소송을 건 대기업의 법인 변호사이기도 했습니다. 경자는 할 수 없이 다른 변호사 이기자(심혜진)에게 자신의 변호를 맡깁니다. 그런데 이기자는 명성기의 아내입니다. 이때부터 상황은 명성기와 이기자의 대결이 됩니다. 경자에게 깊이 이입한(!) 이기자는 명성기에게 팽팽히 맞서지만 명성기는 치졸하게도 경자의 사생활, 가령 남편 앞에서 속옷만 입고 야한 춤을 췄다든가 음담패설을 적은 편지를 썼다든가 하는 일들을 들춰내며 경자를 지나치게 성욕이 넘치는 마녀로 몰아갑니다. 하는 작태가 치사스럽기 짝이 없죠? 신사 중의 신사인 배우 안성기의 비열한 모습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자 변호사(이경영)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죄입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가해자 변호사(이경영)
이경영이 연기한 가해자 변호사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변호사의 정석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 가해자 변호사 역시 실존하는 사람이죠. 한 주부가 귀갓길에 두 청년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주부는 격렬히 저항을 하던 중 키스를 시도한 청년의 혀를 깨물어 역고소를 당합니다. 이경영은 그 청년의 변호사를 연기하며 주부에게 인격적, 성적 모욕과 독설을 퍼붓습니다. 주부는과잉 방어라는 이유로 패소해 유죄 판결을 받죠. (결과적으로는 천만다행으로 항소심에서 승소해 무죄임이 입증됩니다.) “야밤에 술취해 흐느적거리면서 다녔고, 집안 문제로 불화를 일으키는 부도덕한 여성이 앞날 창창한 청년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혔다고 주부를 몰아붙였던 철면피 변호사는 많은 관객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주부의 변호사로는 손숙이 열연해 강직한 변호사의 표본을 보여주기도 했죠.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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