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최고령 상군 현순직 해녀와 막내 채지애 해녀가 바닷속 비밀 화원에만 핀다는 물꽃을 보기 위해 떠난 여정을 그린 <물꽃의 전설>(감독 고희영)이 8월 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전작 <물숨>에서 제주 해녀만의 커뮤니티와 배려 등 독특한 문화를 알렸던 고희영 감독의 두 번째 해녀 영화다.
<물숨> 때 10년의 제작 기간 동안 해녀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던 고 감독에게 아직도 해녀에 대해 할 이야기가 남아 있던 걸까? 그는 <물숨>이 해녀에 대한 개론 성격의 영화였다면, <물꽃의 전설>은 각론으로 들어간 영화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 영화에는 8살에 물질을 시작해 87년의 경력 기간 동안 상군(작업수심 10m 이상)으로 살아온 현순직 할머니와 뭍으로 떠났다가 고향 제주로 돌아와 늦깎이 해녀가 된 막내 채지애의 아름다운 우정이 원시의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고 감독은 여기에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는 제주 바다의 민낯까지 담아냈다.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고희영 감독을 만나 <물꽃의 전설> 이야기를 들어봤다.
6년 작업의 결실 <물꽃의 전설>이 8월 30일 개봉합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그냥 감독들은 다 똑같을 거 같은데요, 이 순간을 위해서 그 시간을 견딘다는 점에서요. 막상 이 시간이 오면 행복할 거 같은데, 또 막 그렇지만은 않아요. 긴장도 되고, 부족한 건 없었나 되돌아보기도 하죠. 그래도 이날만 기다리면서 6년간 모든 팀이 작업을 했던 거 같네요.
두 번째 ‘해녀’ 영화입니다. <물숨>(2016)에서 이미 해녀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찍으셨는데, 또 <물꽃의 전설>을 찍으려고 한 계기가 있을까요?
<물숨> 작업 때 사실 너무 고생했어요. 저는 진짜 바닷속 해녀의 삶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냥 해녀가 바다에서 나오면서 전복을 손에 들고 있는 걸 찍어도 되는데, <물숨>은 수중 촬영이 50%에요. 목숨을 걸고 찍은 거죠. 저도 스태프들도 <물숨>으로 ‘해녀는 끝!’이라고 했죠.
<물숨> 이후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어요. 덕분에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저도 특강 등에 초청받아서 관객들에게 수확물을 나누고 배려하는 그 문화가 너무 훌륭하다고, 보존되고 전승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그러면서도 제주가 고향이다 보니, <물숨>을 마치고도 자주 내려갔죠. 아무 바다에나 가서 해녀들을 만났어요. 자꾸만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그게 뭐냐면, 해녀 수는 계속해서 급감하고 있어요. 젊은 해녀가 들어오지 않는데, 인위적으로 수를 늘리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예전에는 물숨을 잘하는 해녀라면 망사리에 소라 100kg은 거뜬히 짊어지고 나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망사리가 텅텅 비어서 나오는 거예요. 노동 수익이 줄어든 거죠.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힘들어서 해녀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바다가 황폐해졌다는 겁니다. 바다가 이렇게 된 걸 몰랐던 거죠. 바다는 언제까지나 내어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런 매일의 바다를 관찰한 분들이 해녀잖아요. 그래서 해녀가 말하는 바다의 소멸 이야기를 영화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두 분의 매력적인 해녀를 만난 거고요.
지금도 <물숨>이 유럽에 계속 상영되고 있어요. 외국 관객들에게 “제주해녀는 자기 숨만큼만 머물면서 바다와 공존하기 위해 살아온다”라고 말씀드리면 우세요. 그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냐면서요. 이 광경을 보고 제가 얼마나 가책을 느꼈겠어요. 이게 제가 두 번째 해녀 영화인 <물꽃의 전설>을 찍게 된 이유입니다.
그렇군요. 말씀하신 두 분의 매력적인 해녀 이야기는 조금 뒤에 여쭤볼게요. 우선 전설처럼 전해오는 ‘물꽃’은 언제 알게 되신 건가요?
지금은 보통명사처럼 사용하는 ‘물숨’이라는 단어도 사실 당시만 해도 검색해도 나오지 않던 말이에요. 제가 해녀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말에서 건져낸 거죠. 드라마에 대사로 나오니 뿌듯하더라고요.(웃음) 사실 해녀는 커뮤니티가 워낙 강해서 외부인이 들어가기 힘들어요. 들어간다고 해도 본인의 이야기를 안 해주죠. 다행히 <물숨> 덕분에 저는 벽은 없었어요.
물꽃 역시 나이 든 해녀의 이야기 속에서 건진 단어입니다. 매일 찾아갔고, 작업을 할 수 없는 추운 날에는 할머니들 방 구들장에 발 넣고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사실 할머니들 주무시는 거 찍으려고 했는데, 그러다 제가 잠이 들기도 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영화에서 상군해녀로 나오는 현순직 할머니가 허공을 바라보시며, 옛날 곳간의 비밀 이야기 같은 걸 풀어놓으시는 거예요. 마치 그 바다에 가 있는 느낌으로요. “나만 아는 바다가 있어. 들물여인데,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아. 조류가 세서 아무도 못 가. 거기 깊숙이 들어가면 빨갛고 파란 물꽃이 피어 있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연세가 있으니 인지 문제가 있으신가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몇 번을 여쭤봐도 같은 묘사를 하는 겁니다. 가보면 예쁜 물꽃들 사이로 손바닥보다 훨씬 큰 전복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물꽃을 탐구하셨겠군요.
맞아요. 꿈결처럼 들은 이야기였죠. 이제는 연세가 있으니 바다로 못 가세요. 더 그리워하시는 거죠. 그래서 할머니가 말씀하신 물꽃을 공부하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는 해양생물도감을 찾아봤어요. 그다음에는 국립수산연구원을 찾아가 박사님들을 만났고요. 도대체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니 아마 산호인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산호책을 들고 가 할머니께 보여드렸어요. 아니래요. 나중에 알게 되었죠.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밤수지맨드라미’였어요. 청정지역에만 피고, 멸종위기종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아, 할머니가 가셨던 바다는 정말 깊고 맑은 물이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저만의 물꽃을 상상하며 즐거워했어요. 그런데 막내 해녀가 그 상군 할머니 해녀를 자주 찾아왔어요. 워낙 살뜰히 잘하니, 딸에게도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바닷속 지식을 그 막내 해녀에게 전수해주시는 겁니다.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살아있는 지식을요.
바닷속 지도, 바다에서 조류가 셀 때 어떻게 피하는지, 안개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길을 찾는지, 이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는 거예요. 그걸 막내 해녀에게 하나하나 알려주신 거죠. 물꽃 이야기까지요. 거기서 저는 전율을 느꼈어요. ‘아, 이건 기록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기도 한 상군해녀와 막내 해녀 이야기를 여쭤볼게요. 먼저 8살부터 87년 동안 물질을 한 현순직 해녀는 촬영 당시 현역 최고령이셨나요?
사실 나이로 치면 마라도에 고령인 해녀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자주는 안 들어가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매일 바다로 들어간 현순직 해녀가 진정한 의미에서 최고령 해녀가 아닐까 싶어요.
현순직 해녀와의 첫만남은 어땠나요? 촬영을 흔쾌히 허락하신 건지도 궁금해요.
먼저 막내해녀인 채지애 해녀와 인연을 소개해야 해요. 막내인 채지애 해녀는 <물꽃의 전설> 영화에 들어가기 전에 제게 SNS로 자주 연락했어요. 그때가 고향인 제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죠. 처음 물질을 하는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는 거예요. “감독님, 엄마가 바다에 나가니 오늘도 저희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느라 바닷가에 앉아 있어요”, “오늘은 눈이 많이 왔지만, 바다에 들어갔어요”, “아이들이 엄마가 따온 전복을 보고 너무 신기해하네요” 등등의 글들과 함께요. 너무 좋아서, 이걸 모아서 2017년에 『엄마는 해녀입니다』(난다)로 펴냈습니다. 에바 알머슨이 그림을 그렸죠. 그렇게 인연을 이어가다가 채지애 해녀를 보러 간 제주의 어느 바다에서 현순직 삼촌을 만난 거예요. 한 겨울에 볼이 발갛게 얼어있었죠. 저 연세에, 이 추위에 바다를? 눈이 내리는데 마치 인어공주처럼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반하고 말았어요.
그때가 현순직 상군해녀가 몇 세 때인가요?
89세셨죠.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해녀들 커뮤니티가 워낙 강해요. 저는 <물숨> 덕을 많이 봤죠. 그때 촬영만 7년에 총 제작 기간이 10년이었어요. 엄청 구박받으며 찍었어요. 돌을 던지는 분들도 있었을 정도로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촬영하는 것이 싫다는 이유였어요. 그런데 <물숨>이 상영되고, 영화를 본 제주도지사가 해녀분들이 이렇게 훌륭한 분들인 줄 이제야 알았다고 말해주기도 했고요,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되기도 하니 자부심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제 영화 작업도 믿을 만하다고 여겨주신 거죠. 이후 어느 바다를 가도 반겨주셨어요. 그때 어떤 바다에서 현순직 상군해녀를 만난 거죠.
저도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요, 현순직 상군해녀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너무 정정하시더라고요. 허리가 하나도 굽어있지 않고, 눈빛도 말투도 보통 성인처럼요. 직접 만나 보니 어떠셨어요?
아까 눈 내리는 겨울날 처음 뵈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흰머리를 휘날리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정말 담고 싶었어요. 그 어떤 애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저렇게 사랑스러울까, 한참을 봤어요. 볼은 발갛게 얼어있는데 말이죠. 그리고나서 막내 해녀와 함께 매일 현순직 할머니 집에 놀러 갔어요. 현순직 해녀는 기억이 너무 또렷하고요. 다른 해녀와는 좀 달라요. 보통 1분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일해야 하니 그만하라고 하시거나요(웃음). 그런데 현순직 상군해녀는 정말 외할머니 같았어요. 집으로 찾아가면 항상 방석을 내주면서 이리 앉으라고 하시고요. 그렇게 점점 더 할머니에게 더 빠져들게 된 거죠. 정말 특별한 해녀입니다. 아직 건강하시고요. 영화를 아직 못 보셨는데,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정말 궁금해요.
아직 영화를 못 보셨군요. 저도 정말 반응이 궁금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 후반부에서 물꽃을 찾으러 들물여를 찾잖아요. 장비를 써서라도 현순직 해녀가 들어가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내가 저기까지 헤엄쳐 갈 수만 있으면 가겠다”라고 하시는데 너무 무리였어요. 위험하기도 했고요. 저는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슬프고 안타까웠던 촬영 현장이 바로 현순직 할머니께서 들물여로 가실 때 표정이에요. 편집에서 결국 빠지긴 했지만, 너무 눈물이 났어요. 들물여에 다녀오시고 “나는 정말 내일 죽어도 원이 없어. 들물여 다녀왔잖아”라고 하시더라고요. 들물여 수중 촬영을 한 촬영감독님들도 거의 죽다 살았어요. 그렇게나 위험한 바다더라고요. 들물여라는 말 뜻이 그래요. 들물이 오는 바닷속 암초라는 뜻이거든요. 조류의 교차지점이라 워낙 물살이 세고요. 그곳에 물꽃이 있다고 계속 믿으셨던 거죠.
딱 서른 살 차이가 나는 해녀 모녀인 채지애(39세)와 강영희(69세)에 대한 에피소드도 눈길이 가던데요. 좀 더 담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셨는지, 또 다른 해녀의 에피소드 촬영분 중 최종 편집에서 빠진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기본적으로 현장에 가면 스케치는 다 하죠. 그런데 <물숨>이 해녀에 대한 ‘개론’이었다면 물꽃은 ‘각론’으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물숨> 전에는 해녀가 숨을 참는다는 걸 몰랐어요. 그렇게 숨을 참으며 욕망을 견제하는 줄 몰랐다는 이야기죠. 그랬으니 <물꽃의 전설>에서는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해녀의 눈으로 바라본 바다의 이야기, 그러니까 주인공은 바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 거예요.
감독님 고향도 제주잖아요. 영화에서도 고래상군, 애기상군, 삼촌, 이어도, 영등할망, 영등굿, 용왕할머니, 들물여 등 지역어와 문화들이 많이 나옵니다.
해녀들은 이 첨단의 시대, 별나라 가는 과학의 시대에도 철저히 다른 시간을 따라 살아요. 달을 따라서요. 태양은 아무 상관이 없죠. 조수 간만의 차를 달이 만들어주잖아요. 해녀들 집 달력은 다 물때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늘 달의 시간에 맞춰 사는 분들이죠. 또 해녀들은 여전히 영등신에게 기도해요. 파도가 거칠 때면 신이 노했다고 완벽하게 믿으시죠. 단 1의 의심도 없이요. 원시적인 제주도 풍습이긴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물꽃의 전설>에서 제주 지역어와 문화들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을까요?
부산국제영화제 첫 관객과의 대화에서 했던 이야기인데요. 제주에 소멸해가는 세 가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첫째는 제주 바다이고 둘째는 해녀에요. 이제 3,200여 명 남았다고 해요. 그중에도 70대 이상이 과반수고요. 마지막은 제주어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언어 5등급 중에서 제주어가 4등급이라고 하더라고요. 언어학자들이 제주어에는 우리나라 고어의 뿌리가 많이 남아있어서 주목한다고 하는데 말이죠.
제주 바다, 해녀 그리고 제주어의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우리가 지킬 수 있었는데, 지키지 못한 것들이죠. <물꽃의 전설>에서 현순직 삼촌의 말은 100% 제주어입니다. 제주가 고향인 저도 80% 정도 알아들어요. 사전을 참고했죠. 이 영화는 100% 제주어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될 겁니다.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담은 부분이 있을까요?
해녀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그래서 달을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 컸죠. 제가 방송, 영화 일을 30년 넘게 하면서 안 찍어 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달은 많이 안 찍었더라고요. 일출은 많이 찍는데 말이에요. 달이 뜨는 걸 찍으면 되지 하고 쉽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달이 안 뜨는 거예요. 그러다 엉뚱하게 저 뒤에서 달이 뜨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죠. 달이 뜨는 시간, 위치가 있었던 거예요. 국내 사이트에서는 검색이 안 되어서, 구글에 달 뜨는 위치를 찾아주는 사이트를 검색했죠. 그런데 카메라를 세팅한 순간 달이 다 떠버려요. 해도 마찬가지지만요.
저는 바다를 프레임 안에 넣어서 바다 위에 뜬 달을 해녀가 바라보는 바로 그 모습을 찍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1년 동안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더라고요. 1년을 더 보내고 2년 만에 위치와 시간을 찾았어요. 현순직 할머니가 원시의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어요.
영화가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환경 오염 이슈로 주제가 전환되더라고요. 처음부터 물꽃에 대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셨던 건지, 그렇다면 환경오염 부분을 좀 더 파헤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으셨는지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여쭙고 싶습니다.
구성은 많이 했죠. 해녀들이 도청 앞에서 시위하는 장면, 바다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찍은 장면들도 있고요. 마라도 바닷속은 이미 다른 종이 다 점령했어요. 제주 바다 곳곳에 풍력단지가 선정되면서 해녀들이 반대하는 모습도 있었고,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하수폐수처리장을 더 설치하는 걸 반대하는 것도 다 찍었고요. 1차 편집에서는 다 넣었어요.
제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몇십 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은, 어떤 주장으로 몰아가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 ‘그것이 알고 싶다’ 류의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 눈치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자극적이고 센 내용들요. 그래서 영화에서만은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고요. 오히려 물꽃이 상징하는 걸로 가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메타포적으로요. 청정바다에 피는 물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숨> 때와는 달리 이번 <물꽃의 전설>에는 나레이션을 안 쓰셨어요.
관객이 현순직 삼촌과 채지애 해녀에게 몰입하길 원해서요. 저는 늘 해외 상영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해요. <물숨> 때 나레이션을 넣었더니 너무 설명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국내 다큐멘터리랑 해외 다큐멘터리가 좀 성격이 다른 거 같아요.
대신 음악으로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로 익숙한 예민 감독님이 참여하셨어요. 특별한 인연이 있을까요?
예민 음악감독님을 아는 나이시면?(웃음) 저도 어릴 때부터 워낙 좋아했고, 팬이었어요. 제주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주변 분들이 저랑 결이 맞을 것 같다고 같이 작업을 해보라고 권하셨어요. <시소>(2016) 시사회 때 초청했죠. 예민 감독님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정말 몇 년만에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셨대요. 그전까지는 음악 작업을 쉬었던 거죠. <시소>가 뭔가 그분에게 음악을 다시 해야겠다는 마음을 준 거예요.
그 후로 자주 만났어요. <불숨>(2019) 작업할 때는 정말 제작비가 너무 부족해서 같이 하자는 요청을 못 드렸는데, 예민 감독님이 먼저 음악을 해도 되겠느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정말 고마웠죠. 음악도 좋았고요. 그래서 <물꽃의 전설> 때는 정식으로 음악 작업을 요청드렸어요. 촬영 현장도 자주 찾아오셨고요, 김밥도 사오시고, 해녀들과 이야기도 나누셨죠. 영화 후반부물꽃 장면에서 나오는 마지막 피아노 곡은 예민 감독님이 바다를 바라보며 물방울 소리를 듣고 작업한 곡이예요. 지금은 제주에 예민 음악감독님, 저, 촬영감독님 이렇게 셋이 나란히 집을 지어 살 정도로 친해졌습니다(웃음).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음악도 좋지만 영상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해요.
영상이 아름다운 건 온전히 김형선 사진작가 덕분이죠. 수 년간 해녀를 찍은 사진을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세계 유수 언론 매체에 실으면서 해녀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한 분이죠. 저 역시 그 사진을 보고 반했고요. 아름다우면서 슬픈 느낌이랄까요? 같은 해녀를 봤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김형선 사진작가를 제가 온갖 감언이설로 꼬셨습니다(웃음).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완전 프로이신데, 조명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저는 빨리 찍으라고 닦달하고, 그분은 지금 어떻게 찍느냐고 다투면서 엇박자로 2년 반을 살았어요. 싸우고, 안 보고, 사과하고 그러면서요(웃음). 갑자기 제가 전화를 해서 “달이 이쪽에서 떠요. 저쪽에서 만나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수화기 너머로 깊은 한숨이 들려와요. 조명이 없어서 안 나온다고요. 그러면 전 또 찍어달라고 조르고요. 그렇게 현순직 할머니가 바라보는, 애인보다 더 소중한 바다를 찍을 수 있었어요.
여러 사람의 애정이 녹아 든 영화네요. 그래도 주인공은 현순직 할머니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어요.
아까 <물숨>은 개론 같은 영화라고 말씀드렸죠? 3명의 주인이 있었지만, 사실 해녀 커뮤니티와 문화를 보여줬어요. 한 명만 늦어도 절대 먼저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기다리는, 만장일치제로 움직이는 해녀 커뮤니티와 아름다운 바다를 조명했다면, 이번 <물꽃의 전설>은 어찌 보면 한평생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과 남을 위해 헌신한 한 여성, 현순직 해녀에게 받치는 헌시 같은 영화입니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거죠. 8살부터 물질을 시작해서 15세에는 독도 등 다른 바다를 다니면서 오빠들을 봉양했어요. 결혼해서는 남편을 봉양하고, 아들 셋을 혼자 힘으로 키웠죠. 그런 할머니에게 그 누구도 “정말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힘드셨을 텐데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대단하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거죠. 이 영화가 할머니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전하는 영화가 되면 좋겠어요. 현순직 할머니가 영화를 볼 때 어떤 마음일지, 할머니 반응이 제일 궁금하거든요. 아드님은 완성본을 보고 많이 우셨어요. 엄마가 한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감독님 만나서 이번에 꽃을 피우신 거 같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고마웠어요.
해녀를 소재로 벌써 두 번째 작품인데,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상업영화에 도전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최근 류승완 감독의 <밀수>처럼요.(웃음)
시의적절한 질문이네요. <물꽃의 전설> 경쟁상대가 <밀수>거든요.(웃음) 어쩌면 그런 날도 오겠죠?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배급사인 영화사진진에 미안하더라고요. 명확하게 수익이 보이는 영화도 아니고, 본전이면 고마울 영화를 배급해주니 정말 고맙죠. 그러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뭐 대단하다고 아직도 고리타분하게 갓 쓰고 선비 행세를 하는지 반성도 하고요. 사실 영화가 제 손에서 넘어가면 시장에서는 상품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세상의 진실 같은 게 있잖아요. 젊은 사람은 빠른 걸 쫓기에 모를 수 있지만, 제 나이의 감독이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할 테고요. 그 공백을 매꾸는 것도 상업영화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을까요?
차기작은 뭐로 준비 중이신가요?
편집 중인 작품이 하나 있어요. 제주 4.3과 여성 희생자의 이야기입니다. 30년 전 고향 제주로 강제 귀국하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 이야기죠. 젊을 때는 금기시되었던 이야기죠. 집을 짓는 곳이 대표적인 4.3 학살지였다고 하더라고요. 소용돌이처럼 마주하게 된 이야기인데, 여성들을 가장 잔인하게 죽인 살인마를 찾는 이야기예요. 제목은 <사월, 초사흘>(가제)로 정했고요. 9월에는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추방된 구와바라 시세이라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에요. 60년간 한국 현대사를 기록했는데, 양쪽에서 추방당하고 찍은 것은 무엇인지, 그의 눈은 무엇을 보았는지 추적하는 영화죠. 제목은 <어쩌면, 마지막>이고 9월 19일 크랭크인 해요.
<물꽃의 전설>을 볼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해녀는 탄광에서 광부에게 위험신호를 알리는 카나리아 같아요. 그런 해녀 수가 급감하고, 바다에 들어가도 더 이상 캐낼 것이 없는 상황이 닥쳤죠. 바다는 영원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동안 바다로부터 물 한 방울 신세 안 진 사람은 없잖아요. 제주 바다에서 휴가만 즐기지 말고, 회복하기 위해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환경학자 최재천 교수 말 중에 환경은 혼자서는 안 되고, 반드시 함께 해야 실행이 가능하대요. 그런 마음을 거지면 좋을 거 같아요. 해녀들이 다시 신나게 바다에 풍덩풍덩 들어가고, 해산물로 가득 차 무거운 망사리를 끌어드리고 싶어요.
윤상민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