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은 온다, 가 아니라 끝나지 않았다. '바벤하이머'(바비+오펜하이머) 밈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바비>와 <오펜하이머>는 상영을 지속하며, 박스오피스 성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여기에 이번에 참전한 영화까지 이번 주는 신기록의 연속이다. 과연 <바비>와 <오펜하이머>가 어느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그들의 기록과 함께 살펴보자.
<오펜하이머>
8월 15일 한국 개봉한 <오펜하이머>는 미국에선 7월 21일 개봉해 벌써 한 달 넘게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엔 <바비>와 동시 개봉하면서 'R등급', '무거운 소재' 등으로 흥행이 될지 다소 불안하게 여겨졌는데, 막상 뚜껑을 까보니 <바비>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장기 상영은 물론이고 흥행까지 완전히 뒤집어놓았다(역시 놀란 선배님!).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비밀 원자폭탄 제조 프로젝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바탕으로 오펜하이머가 어떻게 미국에 양자물리학을 전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삶 속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으로 원자폭탄 제조에 일조했는지를 3시간 가량 풀어낸다. 현재 월드와이드 성적 7억 9천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주말이 지나면 8억 돌파는 기본이고 최대 8억 5천만 달러까지 예상되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 영화 중 역대 1위
현재 7억 9천만 달러를 기록 중인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중 월드와이드 성적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재밌게도 얼마 전까지 1위였던 <덩케르크>(약 5억 2천만 달러)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것이라 1, 2위 모두 놀란의 영화가 장식했다. 그 아래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약 4억 8천만 달러), <진주만>(약 4억 5천만 달러), <킹스 스피치>(재개봉 제외 4억 2천만 달러) 등이 줄을 섰다. 2차 세계대전 하면 아무래도 <덩케르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군인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떠오르기 쉬운데, 물리학자를 주인공 삼은 영화가 1위를 차지했다니. 놀란 감독의 영향력과 그의 작품이 가진 흥행 파워를 새삼 절감하게 한다.
2. R등급 영화 역대 2위
국내에선 15세 관람가지만, 북미에선 청소년관람불가에 해당하는 R등급을 받은 <오펜하이머>. 그래서 특히 흥행 성적에 영향이 가지 않을까 싶었으나, 기우였다. 사실 스토리가 무거워 유아, 청소년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가 아니었던 탓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오펜하이머>는 R등급으로도 승승장구하며 R등급 영화 역대 흥행 순위 2위에 안착했다. '대성공'이라고 불리던 <데드풀>과 <데드풀 2>를 모두 제친 결과다. 1위는 R등급 영화 최초로 10억 달러를 돌파한 <조커>다. 이번 주말에 <오펜하이머>가 예상대로 8억 5천만 달러를 돌파한다 해도 차이는 여전하기 때문에 과연 <조커>를 뛰어넘을지는 미지수.
3. '놀란 오리지널' 중 1위
또 예상대로 8억 5천만 달러를 달성한다면, <오펜하이머>는 놀란 감독의 영화 중 흥행 순위 3위에 안착한다. 그 위로는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 라이즈>만 있다. 다른 IP에 기대지 않고 만든 놀란 감독의 오리지널 영화 중에선 1위에 오르는 셈(물론 실존 인물이 있으니 원작이 있다고 하면 할 말 없지만). 현재 3위 <인셉션>은 개봉 당시 8억 2천만 달러 가량을 벌어들였다. 관람 등급의 차이, 전체적인 분위기 차이를 고려하면 <오펜하이머>가 얼마나 화제를 모으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다.
<바비>
한국 극장가에선 정말 별다른 이슈 하나 만들지 못하고 퇴장한 <바비>. <바비>의 주역들이 내한까지 했던 터라 특히 안쓰러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바비'라는 브랜드가 유구한 서구 문화권에선 <바비>야말로 올해의 승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이 연출한 <바비>는 바비와 켄밖에 없는 '바비월드'에 살던 한 바비가 어느 날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리얼월드'로 향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마고 로비가 주인공 바비를 맡고, 라이언 고슬링이 그에게 사랑받고 싶은 켄을, 아메리카 페레라가 바비 제조사의 직원으로 출연한다.
1. 워너브라더스 100년 사상 1위
올해 2023년은 워너브라더스 100주년이다. 워너브라더스는 100주년을 맞아 여러 콜라보 상품을 선보이거나 기획전을 열고 있는데, <바비>가 마치 생일선물이라도 안겨주듯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바비>의 성적은 워너브라더스가 100년 동안 배급한 모든 작품을 통틀어서 역대 1위라고 한다. 그전까지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완결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 2부>(약 13억 4천만 달러)였다. <바비>가 최근 13억 4천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1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물론 그럼에도 인플레이션 적용을 한다면 결과가 완전 다르겠지만, 만일 바비가 14억을 넘기만 한다면 그래도 기록될 만한 수치이긴 하다.
2. 아일랜드 최고 흥행 영화 등극
전 세계적으로 이 정도 흥행하고 있는 <바비>이기에 여기저기서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아일랜드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아일랜드 최고 흥행작은 <아바타>로 14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바비>가 개봉한 후 890만 유로를 기록하면서 <아바타>의 870만 유로 흥행 기록을 넘었다. 꼭 <바비>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아일랜드 내 월간 영화 지출비가 136% 증가한 움직임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시작일 뿐,
<더 이퀄라이저 3> 역대 노동절 흥행 2위
<그란 투리스모>, <블루 비틀> 등이 개봉했으나 '바벤하이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두 영화에 이어 '바벤하이머' 대전에 뛰어든 영화는 <더 이퀄라이저 3>. 덴젤 워싱턴 주연의 시리즈 영화 <더 이퀄라이저>는 은퇴한 첩보요원 로버트 맥콜(덴젤 워싱턴)이 모종의 사건으로 범죄를 소탕하는 해결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뤘다. 은퇴한 전설이 복귀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같은 해 개봉한 <존 윅> 시리즈와도 자주 언급되는 편. 그래도 <존 윅>이 화려한 건푸 액션에 치중한다면, <더 이퀄라이저>는 주변 환경을 이용한 전략적인 액션을 묘사한 것으로 차이점을 둔다.
<더 이퀄라이저 3>는 <더 이퀄라이저 2>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신작이자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현재 <더 이퀄라이저 3>는 개봉주 주말에 4천만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9월 첫째 주 미국 노동절 주간에 개봉한 영화 중 역대 2위라고 한다. 1위는 마블의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로 당시 9천만 달러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수치상으로 비교하면 <더 이퀄라이저 3>의 성적이 과연 축하할 만한가 싶지만, 미국 노동절은 영화관 소비가 많은 시기가 아닌 점(그러니까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도 마블의 힘이 컸다), 현재 배우조합(SAG-AFTRA) 파업으로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단 점, 시리즈 공백이 컸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 외의 호조라고 할 수 있다. 개봉 첫날 동시기 경쟁작(<그란 투리스모>, <블루 비틀>)을 모두 이기고 1위를 차지한 것도 좋은 징조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