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매체 선정 ‘1990년대 베스트 영화 50편’

묘하게 재밌다. 다른 사람이 정한 ‘베스트 리스트’를 보는 것에 대해 애기하려 한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가 등장하면 반갑고, 당연히 나와야 할 영화가 없으면 신뢰도가 떨어지기도 한다. 전혀 새로운 영화가 리스트에 있다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씨네플레이’가 꾸준히 해외 매체가 선정한 베스트 리스트를 소개하는 것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다. 이번엔 1990년대 영화 베스트 50이다. ‘인디와이어’라는 매체가 선정했다. 그들이 뽑은 50편의 영화들은 1990년대 흥행작, 시네필들이나 들어봤을 법한 영화, 선정 매체의 정체성을 담은 인디영화, 아시아 영화까지 고루 섞여 있다.

리스트를 보다가 이전에 봤던 영화가 눈에 밟힌다면 다시 한번 챙겨보고, 제목만 들어본 영화인데 보고 싶어진다면 시간을 내서 관람해보면 좋겠다. 50편의 영화 가운데 10위부터 1위까지만 따로 언급하려고 한다. 전체 리스트는 글 맨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위 히트(1995)
감독 마이클 만 출연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의 만남만으로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사실 <히트>를 말할 때 더 주목해야 하는 사람은 마이클 만 감독이다. <히트>는 결코 연기 잘하는 톱스타만을 내세운 영화가 아니다. 평범한 갱스터 무비처럼 보이는 <히트> 안에는 하이스트 무비, 진지한 드라마, 멜로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히트>가 강렬하게 기억되는 장면은 LA 도심에서 촬영한 총격전이다. 

9위 존 말코비치 되기(1999)
감독 스피아크 존즈 출연 존 쿠삭, 카메론 디아즈

제목이 조금은 이상한 <존 말코비치 되기>는 스파이크 존즈 연출, 찰리 카우프먼 각본의 영화다. 배우 존 말코비치도 자신의 이름으로 출연한다. 주인공은 인형술사 크레이그(존 쿠삭)다. 그는 7 1/2층에 위치한 기묘한 회사에 입사한 뒤 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통로를 알게 된다. <존 말코비치 되기>는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스파이크 존즈의 세련된 감각과 찰리 카우프먼의 천재성이 만난 영화다.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와 찰리 카우프먼의 <이터널 선샤인>을 본 사람이라면 <존 말코비치 되기>를 통해 그들의 초창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8위 아름다운 직업(1999)
감독 클레어 드니 출연 그레고리 콜린, 드니 라방

시네필이라면 <아름다운 직업>의 등장이 반가울 테다. 시네필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기억해두자. 클레어 드니 감독은 허먼 멜빌의 소설 <수병 빌리 버드>를 토대로 아프리카 지부티의 프랑스 외인부대의 모습을 담았다. 여성이 보는 남성성을 정면에서 다룬 영화다. 드니 라방의 연기가 눈부시다.

7위 멍하고 혼돈스러운(1993)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제이슨 런던, 조이 로렌 애덤스, 밀라 요보비치

<비포> 시리즈, <스쿨 오브 락>, <보이후드> 등을 통해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팬이 됐다면 <멍하고 혼돈스러운>을 챙겨봐야 한다. 이 영화가 그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링클레이터 영화의 시작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멍하고 혼돈스러운>은 여름 방학을 앞둔 텍사스의 한 고등학교의 학기 마지막날을 보여주는 영화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고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풍경이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들뜬 분위기 속에서의 짧은 일탈을 경험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 나이대의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2016년에는 <멍하고 혼돈스러운>의 후속편격인 <에브라비디 원츠 썸!!>이 개봉했다. <멍하고 혼돈스러운>은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았고 <라스트 스쿨데이>라는 제목으로 DVD로 출시됐다. 원제 ‘Dazed And Confused’는 레드 제플린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6위 후프 드림스(1994)
감독 스티브 제임스 출연 윌리엄 게이츠, 아서 어기

‘인디와이어’스럽다고 해야 할까. 1990년대에 나온 많고 많은 영화 가운데 6위에 오른 다큐멘터리 <후프 드림스>는 다소 낯선 영화다. 미국 시카고에 사는 가난한 두 명의 흑인 고등학생 농구 선수의 삶을 담았다. 인종, 계급 등 현대 미국 사회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5위 중경삼림(1994)
감독 왕가위 출연 임청하, 양조위, 금성무

왕가위 감독의 1990년대 영화는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4), <타락천사>(1995), <해피 투게더>(1997) 등이 있다. <화양연화>는 2000년 작품이다. ‘인디와이어’는 <중경삼림>을 5위에 올려놨다. 다른 왕가위의 영화와 달리 <중경삼림>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스타일일 거다. 특히 <중경삼림>에서 왕가위 스타일이 빛을 발한다. 이야기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한 영화다. 특유의 슬로우 모션 화면은 1990년대 초반 기준으로 매우 감각적인 영상 기법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이 새로운 스타일에 반했다. 이후 개봉하는 국내 영화에서는 왕가위의 그림자가 짙게 드러났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왕가위 스타일에 매료된 대표적인 사람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있다. 반면 이별과 고독의 감정을 과도하게 탐미하는 <중경삼림>을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과대평가된 영화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4위 사랑의 블랙홀(1993)
감독 해롤드 래미스 출연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

<사랑의 블랙홀>은 재밌는 로맨틱 코미디영화다. 아직 안 봤다면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직까지 이 영화를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다만 199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 4위라는 성적은 조금 과한 느낌이 든다. 성깔 있는 기상 캐스터 필 코너스(빌 머레이)가 폭설로 고립되고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해서 살게 되면서 진정한 사랑을 하고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사랑의 블랙홀>은 빌 머레이의 연기부터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정말 재밌는 영화지만 에디터에게 10위 안에 로맨틱 코미디를 하나 넣으라고 한다면 <노팅 힐>(1999)을 꼽겠다. 너무 뻔한 거 아니냐고? 그렇다면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1994). 에디터는 ‘워킹타이틀’이 만든 영국식 로맨틱코미디를 더 좋아한다.

3위 펄프 픽션(1994)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존 트라볼타, 사무엘 L. 잭슨, 우마 서먼

쿠엔틴 타란티노를 세계적 거장으로 만들어준 <펄프 픽션>이 3위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인 <필프 픽션>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홍콩에 <중경삼림>이 있었다면 미국엔 <펄프 픽션>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기승전결식의 기존 내러티브를 해체했다. 3개의 사건이 뒤죽박죽 섞이고 각각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엮이는 새로운 이야기 방식은 평론가들을 열광하게 했다. 관객들도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평론가들은 이를 두고 1990년대를 상징하는 ‘시대 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의 춤 장면(위 사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2위 클로즈업(1990)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모흐센 마흐말바프

<클로즈업>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일 듯하다.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이름을 들어본 이라도 <클로즈업>을 본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아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대체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올리브 나무 사이로>(1994), <체리 향기>(1997) 등이 아닐까 싶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이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다. ‘인디와이어’는 <클로즈업>을 2위에 올리면서 자신들의 영화 취향을 확실하게 피력하려고 한 듯하다. 안타깝게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지난해 숨을 거뒀다.

1위 좋은 친구들(1990)
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로버트 드 니로, 레이 리오타, 조 페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갱스터 영화의 계보를 한번 살펴보자. 1970년대 <대부>, 1980년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스카페이스>가 있다. 1990년대에 이르면 <좋은 친구들>이 뒤를 잇는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좋은 친구들>이 어떤 영화인지는 <대부>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부>의 경우 마피아를 신화적인 존재처럼 미화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좋은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마틴 스콜세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품고 있는 범죄와 폭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거기에는 의리나 품위따위는 없다. 로버트 드 니로보다 조 페시의 연기가 뛰어나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인디와이어’ 선정 1990년대 영화 베스트 50

50위 비포 선라이즈(1995)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호크, 줄리 델피

49위 트레인스포팅(1996)
감독 대니 보일 출연 이완 맥그리거, 이완 브렘너

48위 쥬라기 공원(1993)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샘 닐, 로라 던

47위 광란의 사랑(1990)
감독 데이빗 린치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로라 던

46위 스타쉽 트루퍼스(1997)
감독 폴 버호벤 출연 캐스퍼 반 디엔, 디나 메이어

45위 JFK(1991)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케빈 코스트너

44위 스피드(1994)
감독 얀 드봉 출연 키아누 리브스, 데니스 호퍼, 산드라 블록

43위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세실라 로스, 마리사 파레데스

42위 일렉션(1999)
감독 알렉산더 페인 출연 매튜 브로데릭, 리즈 위더스푼

41위 쥐잡이(1999)
감독 린 램지 출연 토미 플래너건, 맨디 매튜스

40위 도터 오브 더 더스트(1991)
감독 줄리 대쉬 출연 코라 리 데이, 엘바 로저스

39위 세븐(1995)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모건 프리먼

38위 셀레브레이션(1998)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율리히 톰센, 헤닝 모리츤

37위 폭풍속으로(1991)
감독 캐스린 비글로우 출연 키아누 리브스, 패트릭 스웨이지

36위 밀러스 크로싱(1990)
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출연 가브리엘 번, 마샤 게이 하든

35위 클루리스(1995)
감독 에이미 헥커링 출연 알리시아 실버스톤, 폴 러드

34위 아이다호(1991)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리버 피닉스, 키아누 리브스

33위 원더풀 라이프(1998)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아베 사다오, 아라타

32위 씬 레드 라인(1998)
감독 테렌스 맬릭 출연 숀 펜

31위 부기 나이트(1997)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마크 월버그, 줄리안 무어

30위 저수지의 개들(1992)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하비 케이틀, 마이클 매드슨

29위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6)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에밀리 왓슨, 스텔란 스카스가드

28위 용서받지 못한 자(1992)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진 핵크만

27위 롱 데이 클로즈(1992)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 출연 마저리 예이츠, 니콜라스 라몬트

26위 파고(1996)
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윌리엄 H. 머시

25위 홍등(1991)
감독 장예모 출연 공리

24위 토이스토리2(1999)
감독 존 라세터 목소리 출연 톰 행크스, 팀 알렌

23위 크럼(1994)
감독 테리 즈위고프 출연 로버트 크럼브, 엘라인 코민스키

22위 양들의 침묵(1991)
감독 조나단 드미 출연 조디 포스터, 안소니 홉킨스

21위 표적(1998)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조지 클루니, 제니퍼 로페즈

20위 세 가지 색: 레드(1994)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출연 이렌느 야곱, 장-루이 트린티냥

19위 매그놀리아(1999)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멜로라 월터스, 톰 크루즈

18위 언더그라운드(1995)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출연 미키 마뇰로비치, 라자르 리스토브스키

17위 매트릭스(1999)
감독 릴리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16위 세이프(1995)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줄리안 무어, 피터 프리드먼

15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감독 에드워드 양 출연 장구주, 금연령

14위 쉰들러 리스트(1993)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리암 니슨, 벤 킹슬리, 랄프 파인즈

13위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1998)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제이슨 슈왈츠먼, 빌 머레이

12위 위대한 레보스키(1998)
감독 조엘 코엔, 에단 코엔 출연 제프 브리지스, 존 굿맨, 줄리안 무어

11위 아이즈 와이드 샷(1999)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

10위 히트(1995)
감독 마이클 만 출연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9위 존 말코비치 되기(1999)
감독 스피아크 존즈 출연 존 쿠삭, 카메론 디아즈

8위 아름다운 직업(1999)
감독 클레어 드니 출연 그레고리 콜린, 드니 라방

7위 멍하고 혼돈스러운(1993)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제이슨 런던, 조이 로렌 애덤스, 밀라 요보비치

6위 후프 드림스(1994)
감독 스티브 제임스 출연 윌리엄 게이츠, 아서 어기

5위 중경삼림(1994)
감독 왕가위 출연 임청하, 양조위, 금성무

4위 사랑의 블랙홀(1993)
감독 해롤드 래미스 출연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

3위 펄프 픽션(1994)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출연 존 트라볼타, 사무엘 L. 잭슨

2위 클로즈업(1990)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모흐센 마흐말바프

1위 좋은 친구들(1990)
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로버트 드 니로, 레이 리오타, 조 페시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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