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
아이 캔 스피크

감독 김현석

출연 나문희, 이제훈

개봉 2017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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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다. <아이 캔 스피크>의 나옥분 역은 처음부터 나문희가 내정돼 있었다. <아이 캔 스피크>의 공동제작사인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매거진 M>에 기고한 글('아이 캔 스피크' 심재명 제작자가 말하는 배우 나문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들에 앞서 나옥분 역엔 이미 나문희 배우가 내정돼 있었다. 강지연 대표의 선택에 어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감독의 말대로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나문희라는 오직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

강지연 대표는 <아이 캔 스피크>를 기획·개발한 원안자다. 영화사 시선의 대표인 그는 2014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에 <아이 캔 스피크>를 응모할 때부터 나옥분 역에 나문희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 캔 스피크>

나옥분은 왜 나문희가 아니면 안 될까. 영화를 본 사람은 이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잘 알 걸로 믿는다. 나문희는 나옥분을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그가 연기하는 나옥분을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나문희라는 배우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분명하다. 엄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1941년생으로 만 75세인 나문희는 언제부터인가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에서 극중 이름보다는 누군가의 ‘엄마’로 대중 앞에 섰다.

<화려한 휴가>

배우 나문희를 단순히 ‘엄마’로 호명하는 것을 비판할지도 모른다. 너무 쉬운 접근, 편협한 시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배우 나문희가 보여줄 수 있는 더 많은 면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모두 틀린 말이 아니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문희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편협한 시선을 굳이 거두고 싶지 않다. 나문희는 엄마일 때 가장 완벽하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 엄마가 아닌 나문희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줬다. 나옥분의 영어 선생님이 되는 구청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영재(성유빈) 형제의 저녁 끼니를 챙겨주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엄마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자신도 자신이 가장 잘하는 역할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문희는 최근 <매거진 M>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꼽았다. 노희경 작가의 4부작 MBC 특집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1996)과 문영남 작가의 KBS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1995~1996)이다. 그는 두 작품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고마운 작품”라고 말했다.

<바람은 불어도>
바람은 불어도

감독 이영희

출연 최수종, 유호정, 윤손하

개봉 199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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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와 죽음을 앞둔 ‘엄마’
<바람은 불어도>는 나문희라는 배우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드라마다. 1961년 MBC 성우 1기로 데뷔한 나문희는 배우로 전향했다. 1975년 국내 최초 옴니버스식 일일연속극 <여고 동창생>으로 첫 드라마에 출연했다. 나문희는 오랜 시간 동안 주목받지 못하는 엄마, 다방 마담, 술집 주인 등의 역할을 맡아왔다. 그렇게 30년이 지나 이북 사투리을 쓰는 ‘할머니’ 역으로 출연한 <바람은 불어도>를 통해 나문희는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바람은 불어도>는 시청률 50%를 기록했을 정도로 당시 인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미지 준비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감독 박종

출연 주현, 나문희

개봉 199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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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민규동 감독의 영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노희경 작가와 나문희, 주현, 김영옥이 출연한 드라마가 원작이다. 나문희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돌보는 며느리, 무심한 의사 남편의 아내, 철없는 재수생 아들과 유부남과 사귀는 딸의 어머니인 인희를 연기했다. 정작 저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인희는 암에 걸려 시한부 진단을 받는다. 인희는 자신이 죽으면 시어머니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시어머니의 목을 조르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드라마’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엄마 나문희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노희경 작가와 나문희의 인연이 시작된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두 사람은 <내가 사는 이유>(199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 <굿바이 솔로>(2006),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2011), <디어 마이 프렌즈>(2016) 등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디어 마이 프렌즈>
디어 마이 프렌즈

감독 홍종찬

출연 고현정, 김혜자, 고두심, 나문희, 윤여정, 박원숙, 신구, 주현, 김영옥

개봉 201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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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많은 배우, 거짓 없는 인간
나문희와 노희경. 많은 작품을 같이 한 두 사람만큼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남긴 말은 유명하다. 먼저 나문희가 노희경 작가에게 한 말을 들어보자.

“너무 잘난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놀지마. 책 많이 읽어. 버스나 전철 타면서 많은 사람들을 봐. 재래시장에 많이 가. 그곳에서 야채 파는 아줌마들을 봐. 할머니들 손을, 주름을 봐봐. 그게 예쁜 거야. 대중목욕탕에 가. 대본 제때 주는 작가가 돼. 우리 자주 보지 말자. 그냥 열심히 살자, 희경씨.”

노희경 작가는 나문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누가 배우 나문희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욕심 많은 배우라고 대답할 거예요. 그리고 또 누가 인간 나문희를 말하라면, 저는 화면에 단 한 컷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었던 인간이라고 답할 거예요.”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한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면 배우 나문희와 인간 나문희를 짐작 가능하게 한다. 욕심 많은 배우 나문희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서른살 때도 할머니 역을 하는 설정배우였던 나문희의 내공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나문희가 연기하는 엄마는 ‘재래시장에서 본 할머니 손의 주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연습하고 단련한 결과물이다. <열혈남아>(2006)에 함께 출연한 설경구가 전한 “대본 연습 때 나문희 선생님의 대본이 벌써 너덜너덜했다”는 이야기는 으레 하는 대선배에 대한 칭찬이나 과장이 결코 아닐 것이다. 

열혈남아

감독 이정범

출연 설경구, 조한선, 나문희

개봉 200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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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한 노력으로 만든 나문희가 연기하는 엄마라는 이미지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2007년, 꼭 10년 전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개봉 당시 <씨네21> 인터뷰에서 나문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어머니라는 이름의 무게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나는 어머니가 참 좋아요. 평소에도 그쪽으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냥 동네에 사는 좋은 엄마, 좋은 할머니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연기할 때도 그런 모습이 묻어나오니까. 10년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연기한 인희 같은 엄마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한번 더 해보고 싶어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감독 김상진

출연 나문희, 강성진, 유해진, 유건

개봉 200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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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배우 나문희와 함께 노희경 작가가 말한 거짓 없는 인간 나문희의 면모도 살펴보자. 최근 <씨네21> 인터뷰에서 나문희는 “70대까지 지치지 않고 연기를 하고 오랜 시간 배우로서 사랑받고 있는 비결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인터뷰에서 인간 나문희를 짐작해볼 수 있다.

“뭔 비결이 있겠나. 라디오에서 고전음악 들으면 힐링이 되고, 영감이 못되게 굴면 정신이 바짝 들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제일 신이 나고 그런 거지. 행복한 순간이 많다. 그래서 뭘 하더라도 마음이 미워지지 말자는 생각을 한다.”

‘마음이 미워지지 말자’는 말이 마음에 박힌다. 배우가 아닌 인간 나문희로서의 삶의 태도가 그가 연기하는 엄마, 할머니로 자연스레 투영되는 듯하다. 결국 배우 나문희와 인간 나문희를 따로 놓고 볼 수가 없다. 나문희가 연기하는 엄마를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또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이유가 된다. 과장해서 말하면 <거침없이 하이킥>(2006)에서 나문희가 “호, 박, 고, 구, 마!”를 외치는 모습마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 한편이 찌릿해온다. 우리의 엄마도 그렇게 말실수를 하고, 그걸 지적하면 울컥해서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놀리기라도 하면 서러워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언제 그랬냐 싶게 또 밥을 먹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감독 김병욱, 김영기, 김창동

출연 이순재, 나문희, 박해미, 정준하, 김혜성, 정일우, 최민용, 신지, 서민정

개봉 200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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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엄마 나문희
나문희는 다음 영화에서도 누군가의 엄마가 될 듯하다. 유해진, 이성경이 출연하는 <러브 슬링>이라는 작품에 출연할 예정이다. <아이 캔 스피크>처럼 주인공이 아니어도 나문희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이왕이면 주인공인 나문희, 엄마인 나문희를 보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그랬던 것처럼. 지난 8월 “나문희가 15년 만에 소속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40년이 훌쩍 넘은 그의 연기 인생은 아직 끝을 보기에 이르다. <아이 캔 스피크>가 그랬듯이 누군가 나문희를 캐스팅하기로 내정하고 시나리오를 써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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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슬링

감독 김대웅

출연 유해진, 김민재, 황우슬혜, 이성경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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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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