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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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미키 타카히로
출연 후쿠시 소우타, 고마츠 나나
개봉 2016 일본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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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츠키카와 쇼
출연 하마베 미나미, 키타무라 타쿠미, 키타가와 케이코, 오구리 슌
개봉 2017 일본
2017년 가을, 일본 멜로 영화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영화다. 특히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의 깜짝 흥행은 조금 놀라웠다. 10월 12일 개봉한 이 영화는 입소문만으로 16만 5000명(이하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11월 2일 기준)을 불러 모았다. 이 여파는 특이한 제목으로 시선을 끌었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로 이어졌다. 파급력은 더 커졌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10월 25일 개봉해서 25만 9000명 관객 동원을 기록 중이다.
손수건을 준비해야 하는 일본 멜로 영화는 과거의 히트 상품이었다. 최근 몇 년간은 일본 영화 자체가 관객 동원에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일본 멜로 영화가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의 소녀시대>로 대표되는 2016년의 대만 멜로 영화 붐이 연상되기도 한다. 신흥 강자였던 대만 멜로 영화보다 깊은 역사를 가진 일본의 멜로 영화 계보를 살펴보기에 지금이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
이 계보에서 특별함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든 ‘일본 멜로 영화’를 검색하면 비슷비슷한 영화들이 검색된다. 특별함이 없다는 걸 다르게 얘기하면 그만큼 이 영화들이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는 뜻도 된다. 특히 거의 모든 검색 결과에서 가장 첫 번째 위치하는 <러브레터>를 일본 멜로 영화 계보의 시작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러브레터 (1995)
<러브레터>는 1999년 국내 정식 개봉했다.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이미 볼 사람은 다 봤기 때문이다. <러브레터>는 그야말로 열풍이었다.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1990년대 말 대학가에서는 수십 번도 더 복사했을 법한 비디오테이프 버전의 불법 상영회가 성행했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영화는 <러브레터>였다. 복사를 너무 많이 했나 싶은 뿌연 화면은 그전에 보지 못한 비주얼이었다. 영화의 분위기와 꼭 어울렸다. 그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였다. 무엇보다 1인 2역을 연기한 나카야마 미호에게 관객들은 빠져들었다. <러브레터>의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는 역대 일본 영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대사다.

-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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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와이 슌지
출연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
개봉 1995 일본
4월 이야기 (1998)
<러브레터>를 이야기하면서 감독 이와이 슌지에 대한 부분을 빼놓았다. <4월 이야기> 역시 이와이 슌지가 연출한 영화다. <러브레터>에 비해 단순한 구조와 6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의 이 영화는 이와이 슌지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화면이 인상적인 영화다.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진학한 우즈키(마츠 다카코)의 풋풋함, 첫사랑의 두근거림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개학을 맞은 캠퍼스의 벚꽃, 빨간 우산 등이 진짜 주인공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마츠 다카코는 나카야마 미호를 이어 일본 여배우를 대표하게 됐다.

- 4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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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와이 슌지
출연 마츠 다카코, 다나베 세이치
개봉 1998 일본
비밀 (1999)
나카야마 미호, 마츠 다카코. 그다음은 히로스에 료코다. 엄마와 딸의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의 영화 <비밀>을 통해 히로스에 료코는 일본 청춘스타로 국내에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 엄마 나오코(키시모토 가요코)의 영혼을 가진 딸 모나미를 연기한 히로스에 료코는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비밀>의 결말에 대해서는 보는 이에 따라 다소 의견이 갈렸다. 히로스에 료코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영화로는 <연애사진>(2003)도 있다.

-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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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타키타 요지로
출연 히로스에 료코, 코바야시 카오루
개봉 1999 일본
냉정과 열정 사이 (2001)
<냉정과 열정 사이>는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했다.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번갈아가면서 여성과 남성의 시선으로 연재한 두 권의 소설이 원작이다. 쥰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와 아오이(진혜림)는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다.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추억을 쉽게 잊지 못한다.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날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함께하기로 한 약속을 이들은 지킬 수 있었을까. <냉정과 열정 사이>의 인기로 영화 속 장소인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여행객들의 성지가 됐다. 일본 연애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원작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도쿄타워>(2005)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 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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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나카에 이사무
출연 다케노우치 유타카, 진혜림
개봉 2001 일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일본 멜로 영화의 전형과는 어딘가 비켜나 있는 영화다. 헤어지고 만나고 그리워하고 가슴 아픈 사랑의 절절하고 애틋함하고 풋풋함과는 다른 먹먹함이 주된 정서다. 특히 다리가 불편한 조제를 연기한 이케와키 치즈루가 이런 차가운 정서를 만들어낸다. 또 일본 밴드 쿠루리의 음악도 영화 전체 분위기를 주도했다. 조제의 연인 츠네오를 연기한 츠마부키 사토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국내 관객에게 확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시켰다. 일본 청춘스타로 도약하기 전 우에노 주리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그는 츠네오를 좋아하며 삼각관계를 만든 카나에를 연기했다.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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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아라이 히로후미, 우에노 주리
개봉 2003 일본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2004)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조제, 호랑의 그리고 물고기들>과 달리 멜로의 전형을 담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리츠코(시바사키 코우)는 이삿짐 속에서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발견한다. 이 테이프의 내용을 듣고 그녀는 행방을 감춘다. 리츠코의 약혼자인 사쿠타로(오오사와 타카오)는 그녀를 쫓아 자신의 고향으로 찾아간다. 그곳은 자신과 첫사랑 아키(나가사와 마사미)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과 불치병. 이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다. 특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아키를 연기한 나가사와 마사미는 이후 <눈물이 주룩주룩> 등을 통해 일본 대표 청춘스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국내에서 <파랑주의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된 바 있다.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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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유키사다 이사오
출연 오오사와 타카오, 시바사키 코우, 나가사와 마사미
개봉 2004 일본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04)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비밀>과 비슷한 장르로 봐도 좋겠다. 판타지적 설정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내이자 엄마인 미오(다케우치 유코)는 1년 후 비의 계절에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빠 타쿠미(나카무라 시도)와 초등학생인 아들 유우지(카케이 아카시)는 어느 날 숲에서 산책을 하다가 거짓말처럼 미오를 다시 만난다. 문제는 미오가 6주 동안만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후반의 반전을 통해 눈물을 만들어낸다. 지금도 장마철이 되면 이 영화를 떠올리는 팬들이 많다고 한다. 다케우치 유코와 나카무라 시도는 이 영화를 계기로 결혼했다. 16개월 후에 나카무라 시도의 외도로 두 사람은 이혼했다.

-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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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도이 노부히로
출연 다케우치 유코, 나카무라 시도, 다케이 아카시
개봉 2004 일본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2006)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연애사진>을 계승한 영화라고 봐도 좋겠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원작을 쓴 이치카와 다쿠지는 <연애사진>을 바탕으로 <연애사진, 또 하나의 이야기>라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의 원작이다.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의 편지를 받은 마코토(다마키 히로시)는 크리스마스로 들뜬 뉴욕으로 향한다. 그를 보러 나온 사람은 시즈루가 아닌 미유키(쿠로키 메이사)였다. 시즈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즈루의 행방을 쫓는 미스터리의 구조로 진행된 <연애사진>에 비해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추억을 보여주는 데 집중돼 있다. 히로스에 료코와 마츠다 류헤이의 <연애사진>과 미야자키 아오이와 타마키 히로시의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를 비교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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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신조 타케히코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 타마키 히로시
개봉 2006 일본
태양의 노래 (2006)
<태양의 노래> 역시 불치병을 소재로 한 영화다. 색소성 건피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카오루(유이)는 아무도 없는 역 앞에서 홀로 하는 버스킹이 유일한 취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스토킹(?) 중이던 코지(츠카모토 카카시)를 발견하고 무작정 쫓아가 자신을 소개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불치병이라는 식상한 소재의 단점은 싱어송라이터 유이의 음악으로 보완됐다. 유이의 노래 ‘good bye days’가 큰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 <태양의 노래>는 뮤지컬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소녀시대 태연이 주인공이었다.

- 태양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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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코이즈미 노리히로
출연 유이, 츠카모토 타카시
개봉 2006 일본
새 구두를 사야 해 (2013)
<러브레터>의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가 출연한 <새 구두를 사야 해>로 일본 멜로 영화 계보를 마치면 어떨까 한다. 파리에 사는 프리랜서 에이터 아오이(나카야마 미호)는 파리로 여행 온 사진작가 센(무카이 오사무)을 우연히 만난다. 아오이는 길거리에 떨어진 센의 여권에 걸려 넘어지면서 구두 굽이 부러진다. 센은 동생의 장난으로 짐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센은 아오이의 구두를 고쳐주고 두 사람의 만남이 시작된다. <새 구두를 사야 해>는 모든 분량을 파리에서 촬영한 영화다. 계보를 따지자면 피렌체 배경의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의 뒤를 잇는 것처럼 보인다. 중년이 된 나카야마 미호는 여전히 아름답다.

- 새 구두를 사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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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기타가와 에리코
출연 나카야마 미호, 무카이 오사무, 키리타니 미레이, 아야노 고
개봉 2012 일본
어설프게 일본 멜로 영화의 계보를 훑어봤다. 여기 소개한 영화의 리스트를 통해 첫사랑, 추억, 불치병, 판타지, 해외 로케이션, 소설 원작 등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겠다. 1990년대 중후반 <러브레터>를 시작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 멜로 영화가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후에도 많은 멜로 영화가 개봉했지만 여기 언급할 정도로 크게 흥행하거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지금 30대 중반 이상이라면 아마도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영화들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고 30대 중반 이하라면 2000년대 초반까지의 영화의 제목만 들어보지 않았을까 유추해본다. 기회가 된다면 놓친 영화를 챙겨보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