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영화란 건 사실 존재하지 않지만, ‘힐링 영화라는 표현을 쓸 때 각자 쉽게 떠올리는 작품 혹은 감독이 있을 겁니다. 에디터의 경우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입니다. 최근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오랜만의 신작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가 개봉한 걸 기념해 힐링 영화의 어머니!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요시노 이발관>
출연 모타이 마사코, 아사노 카즈유키, 이시다 호시, 요네다 료, 사쿠라이 센리
제작연도 2004

아이들의 머리 모양이 다 똑같은 바가지 머리인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이발사 요시노(모타이 마사코)의 작품인데요. 마을의 전통(?)을 도시에서 온 전학생 사카가미(이시다 호시)만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카가미는 바가지 머리로 지내지 않으면 도깨비에게 잡혀간다는 마을의 미신을 보이콧하기 시작합니다. 전통과 새로움의 당연한 마찰은 소소한 해프닝처럼 정리되고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습니다.
소년들의 성장담인 <요시노 이발관>은 훗날 <카모메 식당> <안경>을 탄생시킨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특징들로 가득합니다. 지역색이 날아간 작은 마을이라는 공간, 자신들만의 소박한 규칙들, 현실감 없이 예쁘게 가공된 인물과 배경까지도요. 동화책의 한 페이지 같은 이 세계는 관객에게 먼 나라 어딘가의 낙원처럼 보입니다.

요시노 이발관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모타이 마사코, 아사노 카즈유키, 이시다 호시, 요네다 료, 사쿠라이 센리

개봉 2004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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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카타기리 하이리, 모타이 마사코
제작연도 2006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는 핀란드 헬싱키 한 구석에 조그맣게 카모메 식당을 엽니다. 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를 대표 메뉴로 삼은 일식당입니다. 사치에는 아무나 들어와서 간단하고 편안한 식사를 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파리만 날립니다. 어느날부턴가 하나 둘씩 손님이 늘고, 사치에는 마냥 평화로워 보이던 핀란드 사람들도 일본인과 다르지 않은 보편적인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중임을 알게 됩니다.
예쁘기 그지없으면서도 먹음직스러운 카모메 식당의 요리를 구경하고, 이러쿵저러쿵 세 여자가 떠드는 수다를 감상하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시나몬 롤 등 영화에 등장한 메뉴가 유행하기도 했죠. 동시에 <카모메 식당>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세 여자가 사회적으로 자립하고, 그들끼리 연대하는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스칸디나비아 무드의 어여쁜 주방용품들, 화사한 식탁에서 예쁘게 플레이팅한 밥을 먹는 일 등 조금만 신경 쓰면 금세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적인 로망을 건드리기도 합니다.

카모메 식당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카타기리 하이리

개봉 2006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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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이치카와 미카코, 카세 료
제작연도 2007

타에고(고바야시 사토미)는 휴대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장소를 꿈꿉니다. 남쪽의 바닷가 마을로 떠난 타에고는 머물고 있는 민박집 식구들과 그들의 손님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타에고는 점차 그들처럼 괴이쩍은 아침 체조, 규칙적인 밥 시간, 조용히 사색하는 취미 등에 익숙해집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세계의 조형미가 극에 달한 작품입니다.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조용한 마을, 소박하지만 먹음직스러운 가정식, 할 일 없이 그럭저럭 보내는 시간,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거리를 지키는 예의 바른 이웃까지 모두가 비루하고 지리멸렬한 현실에 치인 현대인들의 이상향입니다. 에디터는 개인사를 캐묻지 않는 이웃이 가장 이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안경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이치카와 미카코, 카세 료

개봉 200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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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렛>
출연 모타이 마사코, 알렉스 하우스, 데이빗 렌달, 타티아나 마슬라니
제작연도 2010

단벌신사 레이(알렉스 하우스)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뜻밖의 가족들과 조우해 한 집에 살게 됩니다. 괴팍한 남매, 일본에서 날아온 수상쩍은 할머니, 그리고 고양이 센세이 때문에 레이의 규칙적인 생활은 엉망진창이 됩니다. 레이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이 사람들이 자신의 친가족이 아닐 거라 굳게 믿고 유전자 감식 의뢰까지 하고 맙니다.
이번엔 캐나다 토론토의 이상한 가족 이야깁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평범한 가정집, 그 중에서도 화장실로 축소됩니다. 생판 남들이 모여 유사가족을 형성하던 전작들과 다르게 <토일렛>은 피로 이어진 가족이 진정한 유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는 할머니는 화장실을 들고날 때마다 푹푹 한숨을 쉬고 남매는 할머니를 만족시키려 노력합니다. 묵묵히 식물처럼 집안에 자리한 할머니는 어느샌가 자신의 기술(?)을 공유하며 남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인물을 연결하는 계기가 되는 음식의 등장(여기선 교자), 세계에 통하는 일본 문화를 강조하는 무드는 전작들과도 비슷합니다.

토일렛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모타이 마사코, 알렉스 하우스, 데이빗 렌달, 타티아나 마슬라니

개봉 2010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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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출연 이치카와 미카코, 쿠사무라 레이코, 미츠이시 켄, 다나카 케이, 야마다 미호
제작연도 2012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는 핀란드의 뚱뚱한 갈매기가 어릴 때 밥을 너무 많이 줘서 죽은 고양이와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고, <토일렛>의 센세이는 조용히 집안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에 드디어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열심히 길고양이를 먹여 살리는 사요코(이치카와 미카코)는 급기야 고양이를 빌려주는 일로 벌어먹고 살게 됩니다. 독거 노인, 기러기 아빠, 사무실의 직장인 등은 고양이의 온기에 기대어 삶의 희망을 찾습니다.
고양이는 사랑입니다.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고양이의 뜨끈한 체온이 얼마나 따스하고 안온한지 모를 겁니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세계는 점차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독한 현대인들을 지금의 도시 안에 불러 모았습니다. 아울러 1인 가구의 삶이 그리 외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합니다. 인물, 공간, 사연까지 모든 것이 현실로 돌아온 이 영화에서 쳐다만 봐도 고양이가 따르는 몸이라는 주인공의 설정 자체가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이치카와 미카코, 쿠사무라 레이코, 미츠이시 켄

개봉 201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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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
출연 이쿠타 토마, 키리타니 켄타, 카키하라 린카
제작연도 2017

무려 5년 만의 신작입니다. 5년 사이에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시선은 더욱 깊고 넓어졌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가자 토모(카키하라 린카)는 익숙하게 외삼촌을 찾아갑니다. 외삼촌은 조심스레 토모에게 새 식구를 들였다고 말합니다. 토모는 외삼촌의 집에서 트랜스젠더 린코(이쿠타 토마)를 만납니다. 다정한 린코는 토모에게 도시락도 싸주고, 잠이 들면 이불을 덮어주며 엄마 노릇을 합니다. 토모는 린코와 같은, 낯선 이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연습하게 됩니다.
현실과 대비돼 그 가공의 아름다움이 돋보였던 전작들과 다르게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는 오기가미 나오코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공생에 관해 말합니다.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아이는 자신과 다른 존재를 더 자연스럽게 품어 안습니다. 앞으로 토모가 자라며 만들고 공유할 세계가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를 편입시킨 오기가미 나오코의 대안 공동체는 더욱 성숙해졌습니다. 현대인의 힐링은 이상 세계로의 도피가 아닌 현실 안에서의 이해와 공존에 더욱 가치가 있음을 설파합니다.


누군가에겐 힐링이 될 오기가미 나오코 세계의 조용함과 소박함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치리만치 조형적인 일본 문화 특유의 갑갑한 나르시시즘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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