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이 오기 전, 잊지 말라고 다시 찾아온 영화. 1987년 이후 31년 만에 재개봉하는 <탑건>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파일럿 영화로 회자되고 있다. 이 전설적인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생겼으니 한 번 즐겨보자. 혹시 이미 이 영화의 열성적인 팬이라면, 이 비하인드를 읽으면서 추억을 곱씹어 보고. 참, 2019년 7월 12일에 <탑건>의 후속작 <탑건: 매버릭>이 개봉할 예정이다. 도대체 몇 년 만의 속편인가!

탑건

감독 토니 스콧

출연 톰 크루즈, 켈리 맥길리스

개봉 1986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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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실력을 갖춘 전투기 조종사는 에이스(Ace)라고 불린다. 최고급 명사수를 뜻하는 ‘탑건’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베트남전 이후다. 미군은 베트남전 이후 파일럿들의 항공 실전 경험 부족을 보완하고자 해군 공중전 학교를 설립했다. 이곳 졸업생들을 탑건이라고 불렀는데, 그 호칭이 제목으로 쓰이면서 최고급 파일럿을 이르는 말로 정착했다.

매버릭 역 제안받은 배우 10명

매버릭 역은 여러 배우들을 거쳐 톰 크루즈에게 다다랐다. 패트릭 스웨이지,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니콜라스 케이지, 존 쿠삭, 매튜 브로데릭, 숀 펜, 마이클 J. 폭스, 스콧 바이오, 톰 행크스(!)가 매버릭 역을 제의받았으나 거절했다. 매튜 모딘은 이 영화가 냉전시대 정치를 부추긴단 이유로 거절했다. 존 트라볼타는 수락했으나 당시 자신의 흥행 성적에 비해 너무 높은 출연료를 원해서 역으로 거절당했다.

매튜 모딘은 이후 반전 영화 <풀 메탈 자켓>에 출연했다.
결국 매버릭 역은 톰 크루즈에게 돌아갔다.

찰리 쉰, 짐 캐리, 로브 로우, 케빈 베이컨, 에릭 스톨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출연 제의를 받지 못했으나, 매버릭 역으로 논의됐다. 찰리 쉰은 이후 <탑건>을 패러디한 <못말리는 비행사>의 주연을 맡았다.

<못말리는 비행사>의 찰리 쉰.
아이스맨 역의 발 킬머, 찰리 역의 켈리 맥길리스

발 킬머는 계약상의 의무 때문에 억지로 이 영화에 출연했으나 <탑건>의 덕을 톡톡히 봤다. 그래서 속편 <탑건: 매버릭> 제작 소식에 <탑건> 티셔츠를 입은 인증샷으로 출연 의지를 밝혔다. 찰리 역으로는 브룩 쉴즈(<블루 라군>)나 데브라 윙거(<사관과 신사>)가 출연할 뻔했으나, 얼굴이 덜 알려진 배우를 원한 제작진이 켈리 맥길리스를 캐스팅했다. 알리 쉬디(<조찬 클럽>)도 찰리 역 제안을 받았으나 아무도 전투기 조종사에 대한 영화를 보지 않을 거라며 거절했다. 물론 이후에 이 결정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촬영 당시 제작자 제리 브록하이머(왼쪽)와 톰 크루즈.

제작자 제리 브록하이머는 톰 크루즈가 이 영화를 거절할 것 같아서 해군 측에 요청해 실제 비행기를 태웠다. 비행기를 타고 난 후 톰 크루즈는 그에게 전화해 “할게요. 이 영화 할 거예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대단해요”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아드레날린 중독이었나보다.

<탑건>

톰 크루즈는 <탑건>의 매버릭 역을 위해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도 다른 배우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자신과 라이벌 관계인 아이스맨의 발 킬머와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고, 발 킬머 역시 톰 크루즈에게 친하게 굴지 않았다.

톰 크루즈는 <탑건> 촬영을 위해 오토바이를 배웠다.

<탑건> 촬영 전까지 오토바이를 타본 적이 없는 톰 크루즈는 캘리포니아주의 하우스 오브 모터사이클(House of Motorcycles)에 방문했다. 직원들은 가게 주차장에서(!) 톰 크루즈에게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쳐줬다.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타는 오토바이 가와사키 닌자 900/GPz900R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오토바이였다.

구스 역의 안소니 에드워즈

톰 크루즈를 비롯한 조종사 배역을 맡은 배우들 대부분은 F-14 뒷좌석에 탑승해봤는데, 구스 역의 안소니 에드워즈를 제외하곤 모두 토했다. (그래서 특별히 따봉 사진을 골랐다.) 톰 크루즈는 총 세 번 F-14에 탑승했는데, 첫 운행 때만 토하고 나머지는 무사히 버텼다고. 이 과정을 통해 실제 배우가 탑승한 장면도 촬영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구스 역의 안소니 에드워즈(왼쪽에서 세번째).

앤소니 에드워즈는 이 영화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게 될지 몰랐다. 이 장면을 촬영하는 날, 토니 스콧 감독은 아침에 제리 리 루이스의 노래를 듣다가 이런 장면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초고에서 많은 부분이 변경됐는데, 그중 하나가 적기의 국적이다. 처음에는 북한 전투기로 묘사됐으나 수정을 거친 시나리오와 영화 완성본에는 정확한 국적이 언급되지 않는다.

켈리 맥길리스(왼쪽)와 톰 크루즈

톰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특수 제작된 구두를 신었었는데, 찰리 역의 켈리 맥길리스가 그보다 7cm 가량 컸기 때문이다. 두 배우가 서로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켈리의 키를 낮추기 위해 그가 설 자리 아래를 팠다고.

이 장면은 <탑건> 촬영이 끝난지 5개월 후 재촬영됐다.

비공개 시사회를 본 관객들은 <탑건>의 제작진에게 톰 크루즈와 켈리 맥길리스의 멜로드라마가 적다는 의견을 냈다. 그래서 제작진은 엘리베이터 장면과 베드신을 촬영하기 위해 두 배우를 불렀는데, <탑건> 촬영을 끝낸지 5개월 만이었다. 당시 톰 크루즈는 <컬러 오브 머니>를 촬영하고 있어서 머리가 길었고, 켈리는 다음 작품을 위해 7kg을 감량하고 머리도 염색한 상태였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장면에서 켈리는 모자를 쓰고 연기했다. 자세히 보면 톰 크루즈의 머리 길이도 조금 길다.
   
매버릭, 찰리와 달리 톰 크루즈와 켈리 맥길리스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울프만 역으로 출연한 베리 텁이 촬영 당시 켈리 맥길리스를 좋아했다고 밝혔다.

제스터 역의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제스터 역을 맡은 마이클 아이언사이드는 장교 복장을 한 채 항공모함에서 촬영을 기다리고 있다가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던 선원과 마주쳤다. 선원은 걸음을 멈추고 아이언사이드에게 경례를 했다. 아이언사이드는 그 선원은자신이 배우인지 몰랐던 거 같다고 회상했다.

사운드트랙으로 제작된 곡 대부분의 가사를 쓴 톰 화이트록은 음악감독 조르조 모로더의 스포츠카를 정비하던 기술자였다.


(왼쪽부터) 크리스틴 폭스 / 피트 페티그루 (빨간 원)

<탑건>은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반영했다. 찰리 캐릭터는 제작진이 영화를 준비하러 미라마르 해병대 ㅎ비행장에 갔다가 만난 민간 비행강사 크리스틴 폭스를 모델로 했다. 폭스는 이후 국방부 차관보로 활동하다가 은퇴했는데, 국방부에서 가장 높은 보직을 임명받은 여성으로 기록됐다.
  
매버릭의 본명은 원래 에반이었으나 영화의 기술 고문으로 참여한 조종사 피트 페티그루를 오마주하기 위해 피트 미첼로 정해졌다. 은퇴한 조종사이자 탑건 스쿨의 교관으로 베트남전 당시 미그기를 격추한 경력이 있는 피트는 장교 클럽에서 찰리가 데이트하는 나이 든 남자로 출연했다.

C.J. 히틀리 (빨간 원)

수료식에서 매버릭 뒤에 서있는 선글라스 낀 콧수염남은 F-14 에어쇼를 담당한 실제 조종사이자 탑건 스쿨의 강사인 C.J. 히터 히틀리다. 또 영화에 나오는 사물함 중 ‘TEX’라는 스티커가 붙은 사물함은 탑건 스쿨의 강사이자 미그기 조종사인 윌리엄 스펜스 중위의 콜네임을 반영했다. 항모타격단장 T.J 카시디 제독도 실제 자기 자신으로 출연했다.
    
매버릭이 반전 비행으로 미그기를 봤다는 일화는 F-14 조종사 스콧 알트만의 일화를 바탕으로 했다. 매버릭의 모든 항공 장면을 구현한 것도 스콧 알트만인데, 그는 이후 NASA의 우주 비행사로 발탁됐다.
    
할리우드에서 항공 스턴트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아트 스콜은 <탑건>의 민간 비행기 장면을 촬영하던 중 사망했다. 카메라를 장착한 비행기가 태평양에 추락한 것. 당시 그에게 마지막으로 온 무전은 “문제가 생겼다. 큰 문제가 생겼다”였는데, 항공기와 그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해 지금까지도 정확한 추락 원인을 밝혀지지 않았다. <탑건>은 엔딩크레딧 마지막에 그를 추모하는 문구를 새겼다.

아트 스콜

<탑건> 공중전 장면

미군은 <탑건>에서 실제 미사일 두 정을 발사하도록 허가했다. 토니 스콧은 실제 미사일 발사를 다양한 각도로 촬영해 여러 장면에서 썼다. 실제 발사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미니어처로 구현됐다.
    
파라마운트는 F-14를 제조하는 그루먼사에 특수카메라 마운트를 개발, 설치해줄 것을 의뢰했다. 그루먼측은 이를 받아들였고, <탑건>에는 F-14 톰캣(Tomcat) 조종사가 보는 실제 시점이 담길 수 있었다.

영화 속 미그-28기

이 영화 속 미그-28은 F-5에 도색을 한 가상 모델이다. 이 미그-28은 촬영 이후에도 탑건 스쿨 프로그램에서 모의실험 공격기로 사용됐다.
    
<탑건>은 미 국방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완성됐다. 실제 미군에서 사용하는 모든 항공기와 항공모함을 촬영하는 대가로 국방부가 파라마운트에서 받은 금액은 180만 달러다. 토니 스콧 감독은 항공모함에서 촬영하던 중 사령관의 모습을 역광으로 담기 위해 비행기를 돌리고자 군 관계자에게 2만 5000달러 수표를 써주기도 했다.
  
<탑건>이 흥행하면서 당시 해군의 신병 수는 500% 증가했다. 해군측은 영화가 흥행하고 있을 때 극장에서 <탑건>을 보고 나온 청년들을 대상으로 징집 홍보 행사를 했다. 파라마운트는 협조해준 해군을 위해 <탑건> 비디오에 해군 홍보 영상을 넣겠다고 했으나, 해군 홍보를 담당한 회사는 <탑건> 자체가 해군 홍보를 충분히 해주고 있다며 거절했다.
    
실제 탑건 스쿨에선 이 영화를 인용하는 직원에게 5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1년 동안 같은 영화를 52번 보는 ‘시네마 52 프로젝트’의 첫 영화로 기록됐다. 이들은 <탑건>에서 톰 크루즈는 469번 눈을 깜빡이고, ‘The’라는 단어는 223번 나오며, 평균적으로 27분 23초마다 존슨(듀크 스트로드)이 커피를 흘린다고 밝혔다.
 

존슨

스포일러 주의!

국방부는 <탑건>에서 해군이 부정적으로 그려지지 않게 대본 수정을 요청했는데, 그중 하나가 구스의 사고다. 원래 구스는 공중 충돌로 사망하나 공중 충돌 사건이 비일비재한 것처럼 보일까 우려해 비상 탈출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걸로 바꿨다. 또 원래 <탑건>의 엔딩은 매버릭이 구스의 묘지에 방문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쿠거 역의 존 스톡웰

원래 쿠거(존 스톡웰)는 항공모함에 착륙하려고 시도하다 사망할 예정이었으나 해군 측이 항공모함 근무자나 전투기 조종사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까 봐 이를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쿠거는 영화에서 비행일을 포기하며 초반부에 퇴장한다.
    
<탑건> 개봉 이후 집필된 속편의 시나리오는 이러했다. 탑건 스쿨의 교관이 된 매버릭은 자기처럼 건방진 여성 파일럿을 자신의 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몇몇 이유에서 제작이 취소됐다. 하나는 진보한 군사기술을 카메라에 담는 걸 국방부가 더 이상 원하지 않은 것, 다른 하나는 톰 크루즈가 이 영화를 원치 않은 데다가 엄청난 금액을 줘야만 출연할 거라고 표명한 것이었다. 결국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은 2018년에야 제작에 착수될 수 있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