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선 때때로 영화인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많은 일이 벌어진다. 얼마 전 개최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향한 따가운 질책이 있었고, 한국에선 김재환 감독이 멀티플렉스를 향한 일침을 가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들은 ‘보이콧‘이란 칼을 꺼내든 걸까. 최근부터 과거까지, 영화인들의 보이콧 사례를 정리했다.
<칠곡 가시나들> 김재환 감독 ∥ CGV-메가박스 보이콧
<칠곡 가시나들>의 개봉을 이틀 앞둔 지난 2월 25일, 다큐멘터리 감독 김재환은 “CGV에서 정한 모욕적인 룰을 거부합니다”라며 CGV에선 <칠곡 가시나들>을 상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문제 삼은 건 상영관 수가 아니었다. 상영관의 절대적인 수가 아닌, 상대적 비율을 지적했다. 같은 날 개봉하는 <어쩌다, 결혼>이 더 많은 ‘예술영화 상영관’을 배정받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또 그는 예매율 기준으로 상영관을 배정해줄 거라는 CGV의 입장과 달리, 이틀 전까지도 <칠곡 가시나들>의 예매창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즉 예매율에 따라 상영관을 더 배정받을 가능성 자체가 전무하다는 지적이었다. 거기에 1일 상영 횟수마저 명확하지 않았다. 그는 비교 대상으로 삼은 <어쩌다, 결혼> 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CGV 상영 거부 입장을 확고히 밝혔다.
이후 <칠곡 가시나들> 측은 27일, 메가박스 상영 또한 거부한다고 밝혔다. 17개 상영관과 하루 평균 1회 상영을 배정받았으나 개봉 당일까지도 예매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칠곡 가시나들>은 멀티플렉스 중 롯데시네마에서만, 그리고 일반 극장과 예술영화 상영관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됐다.
스파이크 리 & 스미스 부부 ∥2016년 아카데미 보이콧
할리우드 영화계의 상징인 아카데미. 아카데미는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들이 투표를 통해 시상하는 상이기에 권위 있는 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막을 올리기도 전에 폭풍에 휘말렸다. 그해 주·조연상 후보에 유색인종 배우가 하나도 없었고, 이를 유색인종 영화인들이 비판했기 때문이다.
먼저 날카로운 직구를 날린 건 스파이크 리 감독이었다. 2016년 1월 19일(한국 시간) “백합처럼 하얀” 아카데미 시상식을 불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 불참이 진행자, 제작자, 심사위원단을 무례하게 대할 생각은 아니라 하면서도 “하지만 어떻게 2년 연속 40명에 후보자에 백인만 있을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흑인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생일에 입장을 밝히며 뜻을 공고히 했다.
제이다 핀켓 스미스도 같은 날 SNS 영상으로 불참 및 비시청 의사를 밝혔다. 그는 “그동안 아카데미에서 유색 인종은 항상 상을 나눠주는데 기꺼이 앞장서 왔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예술적 성과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보이콧에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남편 윌 스미스도 보이콧을 선언했고, 조지 클루니와 마크 러팔로도 인터뷰에서 아카데미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다만 모든 유색인종이 보이콧을 선언하지 않았다. 우피 골드버그는 아카데미의 백인 중심 후보 선정을 비판하면서도 “그렇다고 현장에 가지 않으면 정말 ‘백인 잔치’가 될 것이다. 우리가 모습을 비춰서 목소리를 내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입장을 달리 했다. 케리 워싱턴 역시 아카데미 현장에 참석,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많은 흑인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세일즈맨>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2016 아카데미, 불참에도 수상 성공
2017년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보이콧이 있었다. <세일즈맨>을 연출한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가 시상식 참석을 거부한 것. 당시 미 정부는 반 이민법 행정명령을 시행했고,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후보 지명에도 장문의 성명서를 통해 시상식에 불참하겠노라 전했다.
그는 “미국영화계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대다수가 미국의 광신주의와 극단주의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불참할 의도는 없었다“고 글을 시작했지만, “이 성명서를 통해 미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다른 6개국 시민들 그리고 나의 동포들에게 강행되고 있는 부당한 조건에 대한 비난을 표현하고 현 상황이 국가 간 분열을 일으키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파라디 감독의 불참에도 그해 외국어영화상은 <세일즈맨>이 수상했다. 2012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이란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감독이 다시 한 번 수상에 성공한 뜻깊은 자리였기에 많은 영화인들이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파라디 감독은 아카데미 상 자체를 보이콧한 것은 아니었기에 3개월 후 칸 영화제에서 이 상을 전달받았다.
그동안 아카데미를 보이콧한 영화인들은 적지 않다. 그중 <대부>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말론 브란도는 인디언 여성 사친 리틀페더를 대리 수상자로 보냈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할리우드의 부당한 인디언 대우에 항의하며 수상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밀고자>의 각본가 더들리 니콜스가 “노조 문제를 지배하는 산업조합과 아카데미에 대한 반감”을 이유로, <패튼 대전차 군단>으로 유명한 조지 C. 스콧은 “경쟁을 강요받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이창동 감독∥청룡영화상 장기 보이콧
2000년 이후, 청룡영화상에서 이창동 감독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이창동 감독은 데뷔작 <초록물고기>로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하고 <박하사탕>으로 각본상을 수상했지만 2002년 <오아시스>부터 청룡영화상 후보 지명을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그 의사는 <오아시스>를 지나 <밀양>, <시>, 지난해 <버닝>까지 이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청룡영화상의 주최가 조선일보라는 이유다. 이창동 감독은 진보적인 성향의 감독으로 참여정부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래서 자신의 연출작을 작품상 심사에 출품하지 않는다. 청룡영화상 측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속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노고를 생각해 나머지 후보 심사는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창동 감독은 청룡영화상만이 아니라 대종상에도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아미르 칸∥인도 대표 영화상 필름페어 어워즈 시상식 불참
한국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인도 배우 아미르 칸. 신작 개봉마다 현지 흥행 기록을 경신하는 인기 배우지만, 인도의 어떤 시상식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영화제의 결과에 신뢰를 잃어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아미르 칸은 과거 시상식에 모습을 보였지만 90년대 초 자신의 영화가 수상에 실패하면서 시상식에서 모습을 감췄다. 1989년 <카야맛 세 카야맛 탁>(Qayamat Se Qayamat Tak)으로 필름페어 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나 90년 <라크>(Raakh)부터 96년 <랑길라>(Rangeela)까지 모두 후보 지명만 될 뿐 수상에 실패했다.
그는 “내가 시상식을 신뢰할 수 없으니까, 차라리 멀리 떨어져있는 게 낫다는 게 시상식에 대한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라고 밝혔다. 사실 그뿐만이 아니라 인도의 배우들은 공공연히 필름페어 어워즈의 신빙성을 비판하니, 공신력 있는 상은 아닌 듯하다.
에바 두버네이 감독∥언론의 디즈니 보이콧 동참
여기 참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자신이 연출 중인 영화사에 반기를 든 감독의 이야기다. 전말은 이렇다. 2017년, LA 타임스가 디즈니랜드가 세금 특혜를 받고 있다는 뉴스를 보도했다. 디즈니는 이를 부인하면서 부당한 뉴스를 보도한 LA타임스 기자들을 영화 언론 시사회에 들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디즈니의 공식 입장은 수많은 언론들의 반발을 샀다. 미국 언론사들이 LA타임스 편에서 디즈니 보이콧을 선언했다. 여기서 <셀마>를 연출한 에바 두버네이 감독이 워싱턴포스트 소속 앨리사 로즌버그의 트윗을 공유하며 “영화 기자들이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나 또한 함께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각 지역 비평가협회에서도 디즈니를 비판하자 디즈니는 LA타임스 출입 금지를 철회했다.
재밌는 건 이 사건이 일어난 2017년에 에버 두버네이 감독은 디즈니의 <시간의 주름> 후반작업 중이었다. 서로 피해본 것은 없지만, 작업 중인 사이에 굳이 이런 행동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스파이크 리 감독∥패션 브랜드 구찌, 프라다 보이콧
아카데미 보이콧에 앞장섰던 스파이크 리 감독은 패션 브랜드 구찌, 프라다도 뒤흔들었다. 2018년 말 구찌는 빨간 입술이 그려진 검은 니트 스웨터를 판매했다. 이 터틀넥 스웨터는 얼굴을 가릴 수 있었는데, 입술 부분만 붉게 표시돼있었다.
프라다는 2018년 12월 원숭이 키체인을 공개했다. 이 제품도 입술이 문제였다. 원숭이 특유의 두터운 하관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입을 붉은 색으로 표현했다. 두 제품의 표현 방식은 과거 미국 문화 속 흑인 비하 캐리커처를 연상시켜 많은 이들에게 인종차별이란 질타를 받았다. 두 브랜드는 각기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고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면피용 사과일 뿐이라며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2월 9일, 자신의 SNS로 구찌와 프라다를 보이콧하겠노라 선언하며 그 흐름에 앞장섰다. 그는 구찌와 프라다가 유색인종 디자이너를 고용하기 전까진 결코 프라다와 구찌를 입지 않겠다고 밝혔다.
프라다는 이에 패션계에 유색인종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다양성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아프리카 미술 작가 티에스터 게이츠와 영화감독 에바 두버네이가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켄 로치 감독∥라디오헤드의 이스라엘 공연 보이콧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반세기 가까이 이어졌다. 2000년대에 가자 지구를 둘러싼 전쟁, 폭격들이 이어지면서 BDS운동이 시작됐다. BDS는 보이콧(Boycott)·다이베스트먼트(Divestment)·생션스(Sanctions)의 약자로 이스라엘의 제품을 사거나, 투자하지도 말고 국가 단위에서 제재하자는 저항 운동이다. 이 운동은 켄 로치 감독,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 작가 앨리스 워터를 비롯한 정치, 문화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밴드 라디오헤드가 2017년 이스라엘 텔 아비브에서 콘서트를 연다고 발표했다. BDS 운동 지지자들은 공동 성명서를 발표해 라디오헤드에게 공연 포기를 종용했다. 켄 로치 감독은 ‘인디펜던트’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라디오헤드는 억압받는 이들 편에 설 것인지, 억압자들의 편에 설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는 SNS로 켄 로치에게 반박했다. 그는 “그 국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그 정부를 지지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며 “우리는 트럼프를 신뢰하지 않지만, 미국에서 공연하지 않는가”라고 토로했다. 팔레스타인 운동가들이 공연장에서 시위를 하는 일도 있었으나 라디오헤드는 17일 공연을 성료했다. 공교롭게도 이 논란이 있기 몇 달 전, 톰 요크는 켄 로치와 그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남겼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