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를 돌며 "관객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영화가 뭔가요?" 묻자 대부분 "매니페스토"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돌아왔다. 그럴 수밖에. <매니페스토>는 케이트 블란쳇이 1인 13역을 맡아 일찌감치 화제가 된 영화다. 독보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블루 재스민>, <캐롤> 등을 통해 보여준 완벽한 연기를 떠올린다면 다역을 맡은 그의 연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니페스토>에서 블란쳇은 열세 명을 연기하지만, 열셋의 인생을 보여주진 않는다. 애초 미술관에서 '~주의(~ism)'을 설명하기 위해 기획된 이 작품 속에서 블란쳇의 무기는 코스프레에 더 가깝다. '선언문'이라는 단도직입적인 제목을 단 영화는 교사, 공장 노동자, 안무가, 뉴스앵커, 과학자, 인형술사, 미망인, 노숙자 등으로 분한 블란쳇의 육체를 빌려 '20세기 예술'이라는 주제를 조곤조곤 설명한다. 빼어난 배우의 스펙트럼만큼이나 예술 사조를 설명하려는 딱딱한 의지 역시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