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2: 정상회담>의 관객이 입을 모아 ‘진주인공’이라고 말하는 배우가 있다. 북한 핵잠수함 백두호의 부함장을 연기하며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인 신정근이 그 주인공.

20년 넘는 세월 동안 연극 무대 위에서 내공을 다진 후, 1997년 <일팔일팔>을 통해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신정근은 지금까지 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제 존재감을 알려왔다. 

“이 배우가 그 배우였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법한, 신정근의 인상 깊은 캐릭터들을 한자리에 모아봤다. 

황산벌(2003) | 김흠순 역
스크린 속 신정근이 돋보이기 시작한 건 코믹 사극 <황산벌>에 출연하고서부터다. 그는 신라의 주축, 김유신(정진영)의 동생 김흠순을 연기하며 감초 캐릭터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신정근은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곳에> <평양성>까지 출연하며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라는 별명을 얻었다. 

거북이 달린다(2009) | 용배 역
형사를 연기한 김윤석과 살인범을 연기한 정경호의 숨 막히는 추격전을 담은 영화 <거북이 달린다>. 신정근은 지질한 형사 필성(김윤석)의 단짝 용배 역으로 출연했다. 색색깔의 츄리닝을 입고 등장하던 용배는 걸쭉한 사투리, 실없는 대사로 관객에게 웃음을 전하며 쫀쫀한 긴장 사이 극의 쉴 틈을 마련했던 캐릭터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충무로의 알아주는 ‘신 스틸러’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여인의 향기(2011) | 노성식 역
신정근은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 출연하며 인지도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여인의 향기>에선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은재(김선아)를 죽기 살기로 괴롭히는 악독한 상사 성식을 연기했다. 당시 신정근은 인터뷰를 통해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 석대현 역
3만정의 얼음을 훔치려는 조선 제일 고수들의 모험담. 충무로 잔뼈 굵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신정근은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열은 나되 소리는 나지 않는 폭탄 제조의 임무를 맡은 석대현을 연기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설정으로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 웃음을 더했던 캐릭터다. 

피노키오(2014~2015) | 최달평
박신혜, 이종석 주연 드라마 <피노키오>에서도 인하(박신혜)의 아버지 최달평을 연기하며 든든한 조연으로 활약했다. 박신혜와는 부녀지간으로 호흡을 맞추며 훈훈함을, 박신혜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이종석과는 상황마다 투닥거리는 앙숙 케미를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대결(2016) | 황노인 역
영화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신정근의 연기 인생에선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대결>의 황 노인이다. 황 노인은 영화사에 길이 남은 <취권>의 빨간 코 스승 소화자(원소전)를 패러디한 캐릭터다. 또래 배우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날렵한 액션 실력이 돋보였던 작품이다. 

미스터 션샤인(2018) | 행랑아범
대체 불가의 존재감. <미스터 션샤인>의 행랑아범은 신정근이 아니고선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다. 일제강점기의 혼란 속에서도 애신(김태리)을 비롯한 고씨 가문의 일원들을 믿음직스럽게 보살폈던 인물. 일본군에게 노출된 의병들을 구하기 위해 제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물 폭탄을 안긴 의미 있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호텔 델루나(2019) | 김선비 역
살아있는 사람만 연기한 건 아니다. 2019년 기준 500살을 맞이한 귀신 캐릭터 김선비도 연기했다. 호텔 델루나의 라운지 바 바텐더이자 최장 근무자인 김 선비는 과거 장원 급제까지 한 인물로, 늘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려하는 귀여운 허세가 돋보이는 캐릭터다. 여러 작품에서 선보여왔던 그의 장기, 따스함과 코믹함을 버무린 연기가 빛났던 캐릭터.

강철비2: 정상회담(2020) | 부함장 역
<강철비2: 정상회담>은 그간 코믹함에 가려졌던 신정근의 무게감과 카리스마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국, 미국, 북한의 리더가 인질로 잡혀있는 백두호의 ‘진짜’ 리더, 부함장은 매사에 무덤덤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동료와 국가를 사랑하고, 그를 위한 옳은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깊은 내면을 지닌 캐릭터다. 미묘한 표정 변화로 변화무쌍한 감정 곡선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배우 신정근의 내공이 빛났던 캐릭터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